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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담도암] 7. 생일상 앞에서 수술 불가 판정

by 포크너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 우리의 생일을 기념하며 주문한 꽃송이

아빠(만 69세)는 10월 28일 월요일, 수술을 위해 은평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이곳에서 사흘 뒤 목요일 수술을 기다리면 된다.


10월 29일 화요일은 내 생일이다. 생일이고 뭐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지만, 그들의 축하에도 수술을 앞둔 아빠 생각에 내 마음은 가라앉았다.


퇴근길,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술 불가… 엄마는 수술 전날 최종 검사에서 수술할 수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며 내게 외과 의사의 말을 녹음한 25분 분량의 음성파일을 보내줬다. 미역국을 끓여놓고 기다리는 아내에게 20분만 늦겠다고 말하고 나는 동네 골목을 왔다 갔다 걸으면서 의사의 말을 들었다.


<진료 내용 요약>

■ (최초 검사한 9월 말 대비) 이번 검사 결과

- 복수 증가

- 종양 진행

- 혈전 발견

- 췌장 쪽 임파선 크기 확장

- 부심 및 대정맥 안까지 종양 침범

- 간경화수치 초과

■ 결론

- 결정적으로 복수 때문에 수술은 무리

- 내과 의사와 상의해 다음 프로세스(항암 치료를 위한 조직검사)를 알려줄 예정


녹음 파일 속 아빠는 의사에게는 “어쩔 수 없죠, 뭐.”라며 담담히 말했고, 진찰실을 나와서는 엄마에게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지.”라고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어째서 수술 이틀 전에야 간경화인 것을 알았고, 취소 판정이 나올 수 있냐며 병원에 대한 원망과 불신을 드러냈다.


003.png 아내가 차려준 나의 생일상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생일상 앞에서 나는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생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곧장 병원으로 갔다. 3층 로비에서 만난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보며 편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나는 아빠에게 “포기하지 말자.”고 얘기했고, 아빠는 “그럼, 포기는 안 해.”라고 답했다.


머릿속으로는 기적을 바라는 염원, 그러면서도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하루하루 소중히 보내야겠다는 자각, 두 마음이 동시에 피어났다.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부부는 희망과 의지를 다짐했다.


다만, “이렇게 될 동안 초음파 검사는 안 해 보셨어요?”란 의사의 질문에 민망한 듯 작은 목소리로 “예.” 한 글자만을 말한 부모님의 대답이 나의 죄책감이 되어 돌아올 것만 같았다.



2024. 10.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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