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10시, 교회에 가야 하는 엄마를 대신해 오늘 아빠(만 69세)의 일일 보호자를 자청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200m를 걸어 은평성모병원에 도착했다. 1층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보호자 팔찌를 받았다. 은평성모병원 규정상 보호자는 단 1명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다.
4인실 문 옆 침대 위에 앉아 아빠는 유튜브를 보며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항암이 다음 주인데 노래가 나오다니 역시 감정에 충실한 경상도 남자답다.
창밖으로 서울소방학교와 앵봉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단풍이 물들인 앵봉산을 바라보며 아빠는 말했다.
"여기가 60년 전 내가 뛰어놀던 능선이야. 저기 소방학교 자리가 물푸레골이고, 나는 롯데마트 자리쯤 살았지."
이제는 은평뉴타운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날 구파발 마을을 아빠는 선명히 기억했다.
점심으로 나온 병원밥을 아빠는 달다고 절반 가까이 남겼다. 나는 남은 아빠의 밥과 제수씨가 챙겨온 죽을 먹었다.
입원 5일, 아빠는 변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속은 아무렇지도 않다. 간호사가 관장약을 가져왔고, 아빠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관장을 했다. 30분 후 아빠는 시원하게 변을 봤다. 대신 힘을 주느라 간의 물혹을 제거하기 위해 배에 꽂은 관으로 피가 역류했다. 간호사는 얼른 조치해 줬다.
식판을 치우고 아빠에게 늘 마시던 커피믹스를 타 주려는데 아빠가 원두만 넣은 블랙커피를 요청한다. 평생 커피믹스만 하루 몇 잔씩 달고 다닌 사람이 블랙을? "병 걸리고 병원에 오니 입맛이 바뀌었네."라고 말하며 아빠는 살짝 웃었다.
일요일 오후 병실은 적막하다. 다른 환자들은 지쳐서 숨만 헐떡이고, 보호자들은 간이침대에서 낮잠을 잔다. 아빠는 유튜브를 보다가 좀 걷고 오겠다며 나갔다. 입원동 17바퀴를 돌면 1시간 좀 넘는데 소화도 되고 운동도 된다고 한다.
나는 혼자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스웨덴의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의 《인생의 의미》란 책을 읽었다. 췌장암을 앓은 저자가 삶을 성찰한 내용으로 아빠의 담도암 소식을 접하고 마음 졸이며 유튜브 여기저기를 찾아보던 중 추천받은 책이다.
아빠가 돌아왔고 우리는 아내가 만들어 준 토스트를 먹었다. “이야, 내가 이 토스트 하나를 다 먹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소화도 안 되고 해서 못 먹었는데 속이 가벼워서 그런가, 이걸 다 먹네. 물혹이랑 변이 싹 빠져서 그런가.” 어느새 아빠는 토스트 하나를 삼키는 것도 기뻐하는 몸이 되었다.
저녁이 되어 엄마가 교회에서 돌아왔고, 아내도 아빠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 왔다. 근처에 사는 작은 할아버지, 작은 할머니, 당숙 내외가 병문안을 왔다. 팔순이 넘은 두 어른은 아빠를 보며 "하이고, 나이 칠순에.. 옛날 같았으면 몰라도 요새는 이른 나이에 큰 병 걸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오후 늦게 친구 세민의 모친상 부고를 받았다. 은평성모병원 바로 근처 은평요양병원 장례식장이다. 아빠에게 항암 잘 받으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나와 아내는 장례식장으로 갔다.
2024. 11.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