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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담도암] 10. 변비에 걸린 불사조

by 포크너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정리할까


11월 1일 금요일, 우리의 정식 신혼집 이사날이다. 결혼 후 5개월간 나의 좁은 집에서 둘이 사느라 아내가 고생 많았다. 그래도 정붙이고 사니 역대급 폭염에 대한 기억과 함께 재미있었던 추억만 남는다.


이사 아저씨들이 아침부터 들이닥쳤다. 아내와 나도 거실 구석에서 이사 과정을 지켜보고, 간식을 챙겼다. 이사한 집은 본가와 지하철로 25분 거리다. 갈아타지 않고 바로 갈 수 있어 심리적으로는 지근거리로 느껴진다.

인부들이 철수하고 아내와 나는 정리를 계속했다. 이튿날 토요일까지 정리를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가 이사하는 동안 아빠(만 69세)도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별 이벤트가 없다.


집 정리에 매진한 사이 막내삼촌이 병원으로 문병을 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아빠의 소식을 알게 되어 삼촌을 통해 10만 원을 보내왔다. 동생네도 병원을 찾았다. 제수씨가 전복죽을 쒀 왔고, 조카 다은이가 3시간 넘게 쉼 없이 돌아다녔다. 다은이 덕분에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고 엄마는 전했다.


아빠는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체중이 늘었다. 53kg으로 들어와서 5일 만에 58kg가 되었다. 먹긴 잘 먹는데 변을 보지 못한다. 변비가 진통제의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배변감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음식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아빠는 의문을 품었다.


잘 있어라, 정든 북한산!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가족 단톡방에 새집 새출발을 알렸다. 아빠는 "새로운 둥지를 틀었으니, 이제 두 사람은 비익조가 되어 저 푸른 하늘로 힘차게 날아가렴아!!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내는 “비익조가 뭔지 몰라서 찾아봤어요. 아버님은 불사조로 함께 날아요."라고 화답했다.


시집오자마자 이런 변을 겪게 해서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특히 오늘처럼 넓은 집으로 이사한 날에는 기분이 좋아야 하거늘 영 기분을 내지 못해서 면목이 없다. 마음 착한 아내는 뭐가 미안하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단지 자신을 이렇게 사랑해주는, 그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는 아버님과 너무 빨리 이런 일을 겪은 게 아쉽다며, 하루하루 소중히 잘 지내보자고 다독였다.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토요일 밤 와인잔을 기울였다.



2024. 11. 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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