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의 담도암] 14.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

by 포크너
pixabay

지난주처럼 일요일 교회 가는 엄마를 대신해 보호자 신청을 했다. 아침 10시 반, 고모와 고모부가 대구에서 올라왔다. 고모는 내 손을 꼭 잡고 “네가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 옆 동네에 사는 작은아버지도 왔다.


“남 서방 오랜만이네.” 환하게 웃는 아빠(만 69세)를 보며 고모는 손수건에 눈시울을 적셨다. 12년 만에 두 번째 암, 그것도 담도암에 걸린 오빠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심정이 오죽 아플까.


고모 내외와 작은아버지는 1시간가량 머문 뒤 자리를 떴다. 고모는 엄마에게 봉투를 내밀었고, 엄마도 고모에게 차비에 보태라며 10만 원을 건넸다.


엄마는 교회에 갔고, 나는 지난주처럼 한적한 병실 구석 간이침대에 누웠다. 첫 항암을 마친 아빠는 생각보다 기력이 쇠한 모습은 아니었다. 목소리도 컸다. 다만 병원밥을 쉽게 삼키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점심 시간 병원 옆에 사는 친구 싸조가 분식을 사왔다. 우리는 지하 2층 휴게실로 가서 배를 채웠다.


싸조를 보내고 올라오니 아빠는 “저기 가서 순두부찌개 좀 사다 줘라. 그건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병원 맞은편 콩나물국밥집의 메뉴를 보니 순두부콩나물이 있다. 순두부가 들어갔으니 맞겠거니 하고 바로 포장해 병원으로 돌아갔다. 아빠는 “이게 아니라 칼칼하니 옛날식 정통 순두부찌개 말이야. 여기에 미식거리게 콩나물이 왜 있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사 오겠다고 했지만 됐다고 했다. 아빠는 순두부와 계란만 건져 먹었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렸다.


식사를 마친 아빠는 잠시 좀 걷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보며 2시간을 보냈다. 병실은 아무리 환경이 깔끔하더라도 그 자체로 우울한 분위기가 흐른다. 게다가 아빠 자리는 창가도 아니다. 오후에 책도 읽고 노트북도 두드리려 챙겨갔지만, 가만히 누워 쇼츠를 보는 것 말곤 아무것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저녁에 아내가 왔다. 아는 생각보다 밝은 시아버지의 모습에 안도했다. 와이프가 사 온 차가운 식혜를 아빠는 맛있게 꿀꺽 삼켰다.


아빠는 창밖 앵봉산을 바라보며 60년 전 이곳에서 뛰어놀던 시절을 얘기했다. 1955생 경북 경주 출생 아빠는 1963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 은평구 녹번동으로 상경했다. 1966년 이곳 은평성모병원 자리인 구파발 물구레골로 와서 유년기를 보냈다. 60년 만에 꼬맹이 시절 뛰어놀던 으로 돌아온 셈이다.


아빠가 교회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이름이 '단비'로 저장되어 있다. 나는 예전부터 '담비'인 줄 알았는데 '단비'였다. 아내가 "그 가뭄의 단비할 때 단비요?"라고 묻자 아빠는 맞다고 했다. 아내는 "그렇게 기다리고 고마운 존재요?"라고 물었고, 이어 "와, 아버님 로맨티스트네요.”라고 말했다. 아빠는 웃으며 “네 시어머니가 저장한 거야.”라고 일축했다.


저녁은 뭐 드실래요? 동태탕, 그리고 롤케이크, 그 있잖아. 다이제스트 과자인데 초콜릿 안 바른 거. 구체적으로 먹고 싶은 걸 말해 주시니 좋다. 아내와 나는 구파발역 찌개마을로 가서 동태탕을 샀다. 편의점에 들러 롤케이과 다이제스트도 샀다.


그 사이 아빠는 항생제를 맞았다. 나는 병실로 올라가 동태탕 포장을 세팅하고, 짐을 챙겨나왔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빠는 동태탕을 잘 드셨다고 한다.


항암은 먹는 것과의 싸움인가 보다. 의사는 설탕이고 당분이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먹을 만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요일 2차 항암제 투입까지 월, 화, 수 사흘 남았다. 기회될 때 많이 먹어야 한다.



2024. 11. 10.(일)



img.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의 담도암] 13. 항암 시작 고열 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