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만 69세)는 항암을 2주 연속 맞았지만 아직 퇴원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항암 부작용은 없지만, 부종이 빠지지 않는다. 다리와 함께 고환도 부었다. 이뇨제를 먹었지만, 그 이뇨제의 영향으로 혈압이 정상인의 절반 수치로 떨어졌다.
11월 16일 토요일, 동생네가 또 병원에 왔다. 벌써 연달아 5번을 주말마다 본 덕분에 2살 다은이는 할아버지를 보고 먼저 와서 껴안았다고 한다.
다시 아빠의 입맛 투쟁이 시작됐다. 병원 밥은 달아서 못 먹겠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만 긴다고 한다. 동생이 비빔냉면을 시켜줬는데 그건 한 그릇 뚝딱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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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일요일, 전날 마신 막걸리의 숙취를 이겨내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걷고 왔다. 2시간 동안 10km를 걸었다. 오늘 내가 병원에 간 사이 처형네가 우리 집에 놀러온다고 해서 서울러 집 정리도 마쳤다. 그 와중에 회사 동기 종욱이의 부친상으로 충주에 갈 일이 생겼다. 아빠 병문안을 마치고 저녁에 차로 다녀오기로 했다.
엄마는 교회에 갔고, 혼자 남은 아빠는 점심으로 비빔냉면을 원했다. 나는 구파발역 롯데몰 면채반에서 비빔냉면을 포장해 왔다. 아빠는 3분의 2를 드셨고, 나는 병원밥을 먹었다. 아빠에게 입맛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노력해서 양껏 드시라고 말했지만, 항암 치료 중인 아빠에겐 입맛 역시 하나의 투쟁이다.
아빠는 복도를 돌고 오겠다며 나갔고, 나는 3주 연속 일요일 오후를 이 무료한 병실에서 보낸다. 창밖 날씨는 쾌청하고, 휴일 병원은 조용하다. 간호사는 내일 아침 퇴원할 수도 있으니 준비하라고 말했다.
아빠는 대뜸 침대 얘기를 한다. 다리와 등 부분이 접히는 이 병원 침대가 너무 편해 퇴원 후 집에도 설치하고 싶은데 엄마가 반대한단다. 아마도 엄마는 아직 집에서 눕지도 않았고, 정 필요하면 나중에 혹시라도 중증 요양등급을 받으면 렌트도 가능한데 벌써 예민하게 침대를 따지는 것도 싫고, 돈 들여서 기존 침대를 버리고 새로 가구를 들이는 번잡스러움도 싫었을 것이다.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서 서운함을 느꼈을 터, 나는 "일단 집에 가서 며칠 지내보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바로 사드리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했다.
알아보니 구매보다는 월정액을 내고 빌는 게 나아 보인다. 월 5만 원에 설치 및 철거비가 7만 원이다. 대여해서 쓰다가 요양등급을 받으면 그대로 이어가도 된다.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는 자식들에게 침대 얘기를 한 것 자체가 부담을 주는 거라고 말했고, 아빠는 "됐어. 그냥 안 쓸래."라며 돌아누웠다.
저녁 늦게 충주로 출발했다. 새 차에 익숙해질 겸 차를 끌고 다녀오기로 했고, 오가는 길이 심심해 아내도 반강제로 동석시켰다. 왕복 5시간 어두운 도로에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주말 상념에서 벗어났다.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 30분이었다. 5시간 후 출근이다.
2024. 11.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