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전 광주 부산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만난 적 있었지
돈을 벌며 박경리 선생의 죽음을 슬퍼한
이과두주 한 잔에 목을 축이며
어쩌면 글쓰기를 포기했었나 몰라
저린 손을 움켜쥐며 헤어졌었지
대전
남간정사 처마 밑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왜 연락이 없었냐는 말에 슬며시 웃고
길어진 그림자로 시를 썼다며
그해 가을 수목원에서 하늘을 보았고
고향의 그림자도 그렇게 길어졌나 몰라
광주
백내장을 조심하라며 건네던 말에
그만 충고하라며 눈을 흘기던 무심함은
어느덧 반백의 세월을 거친 베테랑이 돼
아무런 말을 않고도 잘 지낸다며
이제 그만 연락하라며 전화를 끊었지
이직을 못한 처지를 슬퍼하는 사이
부산
내려올 수는 있겠냐며 대뜸 던진 질문에
전혀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답해서
이른 새벽 KTX에 몸을 실으면 금세 도착해
해동용궁사를 낀 바다를 감상했다며
너도 나도 표현력이 좋다는 칭찬을 내놓으면
어느새 또 봄기운처럼 포근해지는 공기
야광충이 되어 이불을 뒤척이는 사이
내가 너에게 시를 쓰는 동안
# 단정,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