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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단테 Dec 11. 2022

술 대신 친절

알코올 중독자의 네번째 만남


아직도 마트를 가면 술이 전시되어 있는 코너를 보면서 술을 마시는 황홀한 경험을 상상한다. 새롭게 출시된 향긋한 맥주들은 무슨 맛일까? 히비키 17년 산은 오늘 있는가? 스텔라는 가격 할인을 하는가? 아마도 이 버릇은 내가 중독에서 벗어나 20년이 흘러도 계속될 버릇일 듯하다. 눈앞에 전시된 술들을 피하기에는 뛰어난 마케터들이 전시를 너무 잘해놓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은 여러 가지 노력으로 인해 안전장치가 잘 되어있는 트램펄린처럼 적당히 웃으며 즐기고 슬쩍 나올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들이 술을 마시는 행위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앞에서 말한 안전장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는지...

 

알코올 중독자는 자신이 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몸과 마음으로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얼마나 지독한 사랑이길래 다음날 찾아오는 숙취를 알면서도 마시고 또 마시고. 진정한 사랑이 아니면 그걸 그렇게 바보처럼 반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단 한 번에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주 과정에서 '내가 너(알코올)를 이렇게 사랑했는데, 너를 왜 잊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특히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사실은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너무나 많다. 왜 이런 생각으로 빠지게 되는가?


"ㅈ"을 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 사고들을 겪으면서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단주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저는 술 대신 운동을 선택해 보려고요”


"ㅈ"이 단주의 과정 중에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술을 마시며 보내던 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술이 없는 적적한 기분을 채울 수 없었지만 조금씩 참아가고 운동으로 채워가면서 잘 버텨 나갔다. 얼굴도 밝아지고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세상 모든 길이 순탄하지 않은 법인지 운동 중 갈비뼈를 다치면서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갈비뼈가 부러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누워있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아프고 피곤한 상태가 계속되는 너무나 힘든 고통의 시간이다. 그 걸림돌 같은 시간이 찾아오고 술 생각이 다시 많이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운동으로 채웠던 시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로 채워지면서 다시 술 생각이 너무 나더라고요”


시간은 인간이 만든 시계라는 물건에 의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에게 상대적으로 흐르고 있다. 적적하고 위로받고 싶은 순간순간이 모여 아주 긴 터널을 지나는 순간이 아닌 멈춰버린 어두운 공간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들에게는 이 순간들이 가장 위험한 순간들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이걸 왜 참고 있는가? 그러한 질문은 단순히 가볍게 나오는 게 아니라 수없이 겹겹이 쌓인 생각들 속에서 합리화된 질문일 것이다. “ㅈ”은 다행히 그 이후에도 잘 이겨 나가고 있다. 그 질문들을 던지던 긴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원더를 참 좋아한다. 편견에 맞서는 한 아이의 위대한 용기를 그린 영화. 우리들 모두 겹겹이 쌓인 위기와 혼돈의 터널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 영화 원더에서 말하는 주제가 떠오른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알코올 중독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만의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고 지쳐 합리화를 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당신 스스로를 믿고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길 바란다. 당신이 터널 어느 지점에 있건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나 역시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원하는 곳으로 흐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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