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단테 Dec 18. 2022

감각예찬

알코올 중독자의 다섯번째 만남

우리는 대부분 거짓말을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든 작은 거짓말이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필요한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거짓말들이 있다. 보통 술자리에서 생성되는 거짓말이다. 흔히 듣는 군대 거짓말, 젊은 시절 운동 능력에 대한 거짓말, 금전적인 허세 강한 거짓말. 사실 이런 거짓말들은 하는 사람들도 웃기려 하는 거짓들이고 듣는 사람들도 거짓인 것을 알며 그저 웃으며 지나가면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서 추가적인 고통까지 주어야 술자리의 술이 더 맛있어지는 민족 아닌가.-술자리의 창조적 놀이들을 보면 한국사람들은 정말 천재같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다양한 거짓말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알코올 중독자들의 거짓말은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합리화 적인 거짓말들 이어서 저질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점심과 함께한 반주로 인해 낮잠을 자게 되면 힘든 일과를 탓한다. 청소라는 핑계로 세제보다 소주를 사놓고 스스로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숙취로 아침 미팅을 미루면서 다양한 핑계를 대기 위해 목소리만 가다듬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며 들통나도 별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까지 왜곡하고 조작하여 자신의 알코올 생활을 합리화한다.


"ㅇ"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알코올 중독자다. 아주 어려서 알코올 중독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 "ㅇ"의 집에 선물로 미니 피규어 위스키 세트가 들어왔다. 그날 "ㅇ"은 마시던 술이 부족했던 모양인지 피규어에 있는 위스키를 모두 마시고 그 안에 보리차를 채워 넣으며 나에게는 둘만의 비밀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그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고 느낀 모양인지 나는 바로 다른 어른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다음 날 "ㅇ"은 나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고자질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때가 20년도 지난 이야기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과연 나는 왜 "ㅇ"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나는 왜 고자질을 했을까. "ㅇ"은 왜 알코올을 참지 못했을까.라는 다양한 질문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해왔다.


평범한 사람들이 볼 때 "ㅇ"의 행동은 어리석기 짝이 없을 것이다.-나의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은 고민도 그게 뭔 대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알코올 중독이 된 나의 입장에서 "ㅇ"의 끊임없이 술을 찾고 그 과정에서 의미 없는 거짓말들을 했던 것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의 특성 중 하나인 듯싶다. 그 어떤 것에 관해서도 자신의 진정한 느낌을 알지 못하고 술과 관련된 이야기에 과잉 반응이 몸에 배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 틀어지고 나면 수습할 수 없기에 커다란 화와 상대방에 대한 비난만 남는다. 그런 수습 불가능함이 알코올 중독자의 인생이고 알코올 중독자가 만든 혼돈과 거짓말 속에서 희생당하는 것이 가족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술을 마시고 분위기를 좋아하고 그런 자리를 자주 갖게 되면서 자신도 혹시 알코올 의존증이나 알코올 중독자는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술의 양이나 술자리의 횟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의학적으로 내말은 맞지 않을것이지만- 나에 대한 지배를 어떤것에 맡기고 있는지. 나의 감각이 잘 살아 있는지가 어쩌면 알코올 중독 판단 여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여왔다. 감각들을 술에 속이고 마음들을 술에 속여왔다. 나는 괜찮아. 이 정도 보상은 스스로에게 해줘야 해. 자기혐오를 덜어내고 허위로 만들어진 자신감을 얻기 위해 술에 의존하기 위한 다양한 거짓말들. NELL의 A.S라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도 공포음악이 배경인 삶이 살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술을 마시는 자신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다른 모습을 만들고 누가 나를 지배할 것인지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게 나는 알코올 중독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술을 너무 좋아한다. 술과 함께 있으면 나에게 있었던 에너지와 열정이 다시 생기고 방금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들이 몽땅 해결할 수 있을 듯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아침이 찾아오면 그 자신감은 패배감으로 바뀌고 나에게 있었던 감정들은 모두 거짓말이고 나는 해결할 수 있었던 시간에 술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변화할 수 있었지만 그 기회들은 모두 술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젊어서는 신체가 주는 우월감과 남아있는 시간들에 희망을 걸고 극복 가능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듦에 따라 그 우월감은 점차 사라지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더더욱 중독에 빠져든다. 그것들을 깨닫게 되었기에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여기서 멈춘다. 앞으로도 계속 멈추고 싶다. 술과 이별하는 것은 무언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다양한 추억들이 떠오르고 자꾸 합리화하며 찾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난 그만큼 널 사랑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런치박스라는 인도영화가 있다. 인도에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시락을 배달하는 배달원이 있는데 그 배달이 잘못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이다. 남자 주인공이 거울을 바라보며 깨닫게 되는 장면에서 나 스스로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시간은 주저함을 실행에 옮길 용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다시 한번 내 삶을 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할 것들에 대해서 용기를 얻어보았다. 우리에게 있는 감각들이 살아있으면 우리는 언제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술에게 감각을 뺏기지 말자. 당신을 믿으면 용기가 목적지에 당신을 데려다 주리라.





 


이전 07화 술 대신 친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