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의 여러만남
최근에 가족 장례를 치르면서 오랜 시간 내가 정장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이즈도 맞지 않고 여기저기 곰팡이가 보이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는 장소니까 잘 털어서 3일 동안 장례를 치를 준비를 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옷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까. 뜬금없지만 사실 나에게 자격증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 자격증. 남은 하나는 반려동물장례지도사 자격증이다. 베일리 어게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네 다리의 생명체들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아주 나답게 이상한 생각의 흐름대로 반응하게 되어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많은 수의 반려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잘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반려동물의 장례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염습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를 살아생전의 모습과 비슷하게나마 깨끗하고 단정하게 준비를 해준다. 염습이 끝나면 추모실에서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서로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게 된다. 추모의 시간이 끝나면 반려동물을 준비된 장례방법을 통해 유골화 하고 보호자의 선택에 따라서 아이의 유골 안치 방법이 정해진다. 전체적인 장례 절차는 인간의 장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모든 과정은 하루 안에 보통 이루어진다. 그리고 보호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추모를 한다.
“ㅎ”은 아이가 화장로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에게 아이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아이였는지 끊임없이 설명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다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자기를 걱정해서 조용히 누워있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ㅎ”의 아이의 사진을 오랫동안 함께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아이의 장례를 절대 보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되신 분들. 이쪽은 너무나 공감될 때가 많았다. 나 역시 약간의 회피형이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애써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만든 우주에 각자의 행동양식과 언어 방식이라는 게 존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의 못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세상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으니까.
그렇게 많은 장례를 한 해 동안 치러보았지만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특히, 나를 너무나 이뻐해 주었던 가족이 떠난다는 건 많은 후회의 시간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경험이었다. 많은 화환들이 장례식장에 들어왔고 하얀 공간들은 어느새 아름다운 꽃길 같았다. 여기저기 부쩍거리며 술을 마시는 사람은 한 사람을 추억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술에 대한 유혹이 참 많은 3일이었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가족행사, 명절, 연말행사에 다시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말이 새삼 와 닫는 순간들이었다.
장례 마지막날 먼 친척인 "ㄹ"이 왔다. 다른 사람들이 겸손한 옷차림으로 오는 편이라면 "ㄹ"은 화장을 두텁게 하고 무언가 많은 준비를 하고 왔다. 인사를 나누고 국화를 올린 후 "ㄹ"은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자연스럽게 모이게끔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했다.
"이런 순간이 아니면 우리 모든 가족이 모이기 힘들잖아. 우리 다 같이 사진을 찍자. 그리고 기억하자. 가족이 있다는 사실, 이 관계가 있다는 사실"
많은 반려동물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한 번도 내가 겪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장례에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 사진을 찍자는 "ㄹ"의 말에 반감이 들기는커녕 왜 내가 이걸 잊고 살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은 그 사람만을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와 모든 시간을 사랑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남아있는 우리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더 생각하고 충성해야 한다. 3일 동안 한 번도 내가 입었던 정장이 후회되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모여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동안 내 옷과 내 생각이 조금 후회스러웠다. 나는 항상 현재를 즐기고 행복하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일리 어게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아니라 오늘을 행복하게 맞이할 준비였을지도 모르겠다. 베일리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것처럼 말이다.
알코올 중독의 첫 두 달을 지날 때(말도 말자. 정말 힘든 두 달이었다.) "ㅇ"이 선물을 하나 해준 책이 있다. 리처드 칼슨에 "Don't Sweat the Small Stuff". 한국에서는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리처드 칼슨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책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의 행복에 집중하라'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살아있다. 그 살아있는 메시지 중에 한 문장을 꺼내본다.
- 행복에는 감사하고 불행에는 품위를 지키세요-
나는 부끄럽지만 조금 반대로 행동해왔던 것 같다. 행복할 때는 품위 있는 척을 하고 불행할 때는 이 우울과 불안을 빨리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불행에 집착할수록 내 삶은 더 불행해져 갔고 책상 바닥에는 산토리 가쿠빈이 굴러다녔다. 그럴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멀어져 갈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알고 있다. 아무리 고귀한 척 품위 있는척해도 내면에 쌓여있는 불안과 우울은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울하고 불행한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사랑하는 관계들과 나 자신에 집중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안아주고 응원해준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베일리 어게인의 베일리를 안아주는 가족들이 단순히 베일리를 사랑해서 그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만족하고 자신의 마음을 계속 표현하기에 너무 행복해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행복을 응원한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