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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단테 Dec 05. 2022

혼술과 자장면

알코올 중독자가 만난 사람들 세번째

 


병원을 처음 가면 흔하게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던 알코올의존증진단 테스트를 바로 마주하게 된다. 이런 걸 테스트라고 만들었나 싶은 종이.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마시면 멈출 수 있는지. 점수가 높을수록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아래 문항으로 내려갈수록 약간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던 그런 테스트. 그중에서 가장 싫었던 질문은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있는가?"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혼자 마시는 술만큼 나에게 있는 불안과 결핍감을 해결해주는 수단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술을 따를 때 알맞은 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불안감. 혹시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라놓은 술을 남긴다는 것, 누군가 술을 더 권할 때 망설이는 멍청한 눈빛을 해야 하는 것. 술에 대해서 얼마나 잘았는지 떠드는 사람을 존경의 눈빛으로 봐줘야 하는 것.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의 성추행과 섹드립을 웃음으로 넘겨줘야 하는 것. 혼술은 이것들에서 모두 해방될 수 있다. 혼자 마실 때 가장 두려운 건? 술이 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도. 또 사러 나가면 너무 귀찮으니까.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많이 듣던 말이 있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게 가장 위험하다던데..."


내가 듣기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물론 저 말을 하는 사람의 걱정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책임을 질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나에게 있는 허기, 집착, 불안, 끝없는 결핍감을 해결해 줄 것인가?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조용히 잔을 따라 줄 수 있는가? 


20년지기 "ㅈ"을 만났다.

"ㅈ"은 내가 아는 여성 중에 가장 세련되고 멋진 여성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얇은 몸과 매끈한 얼굴. 헛으로 움직이지 않는 제스처,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흡수하는 능력까지. 그래서 많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런 여성이었다. "ㅈ"를 처음 알게 된 건 술자리에서였지만 이제는 우리 둘 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ㅈ"는 더 이상 술에 흥미가 없었고 나는 중독을 인정하고 단주를 하는 중이기에. "ㅈ"와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자장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자장면 비벼주는 사람들이 많았어. 내 허락도 없이 말이야. 너무 싫었어"


"ㅈ" 스스로 자장면을 비비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비비지도 못하면서 배려랍시고 자신의 젓가락으로 "ㅈ"의 자장면을 마음대로 비벼대는 것이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그렇게 하고 뭔가 뿌듯해하며 입꼬리를 실룩 거리는 모습은 모든 정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했다.  나는 너무 이해가 되었다. 물론 그 자장면을 비빈 사람은 배려였을 것이다.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고. 하지만 "ㅈ"가 원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더 이상 배려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나에게 혼술을 걱정한답시고 위험만 이야기하던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확실하게 전달하는 배려는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다. 

영화 김 씨 표류기에서 자장면을 생각해본다. 김 씨 삶의 희망이었던 자장면이 갑자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배달이 오고 김 씨는 그것을 거절하게 된다. 나 역시 그걸 쉽게 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각자의 시선과 처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에게 흔하지만 너무 따뜻한 외식인 자장면 하나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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