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말을 쉽게 탄다는 그런 흔한 거짓말
승마 수업은 점점 무르익어 이제 우리 반은 선생님이 처음에만 잡아주고 스스로 탈 정도로 진행되었다. 센터에는 좁은 공간과 넓은 공간이 있는데 다른 센터와 비교했을 때 넓이가 어떤 수준인지 그런 건 잘 모르지만. 여하튼 이 센터의 넓은 공간에서 탈 때는 그래도 마음의 안정감이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수업이 자꾸 진행되다 보니 더 위축되었다.
“선생님 우리는 왜 넓은 공간 놔두고, 좁은 공간에서 타는 거예요?”
나는 넓은 공간에서 타면 다 같이 편하게 탈 텐데, 왜 우리가 좁은 공간으로 와서 서로 붙어가며 무섭게 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넓은 데서 타다가 말이 마구간으로 가버릴까 봐요. 그럼, 오늘 수업 끝나요.”
“아, 예.”
“말들은 귀소 본능이 있어서 그냥 다 가버려요.”
나는 그 뒤로 공간에 대한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겁을 먹었기 때문에 말 타는 게 그다지 잘 풀리진 않았다. '이래저래 해도 떨어지지만 말자.'는 마음을 먹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타 보려고 노력했다.
“지금 다들 걸음마하시는 정도인데 ‘제가 그러면 안 돼요. 이렇게 해야 해요.’ 해도 와닿지 않는 단계라서요. 걸음마 못하는 아기에게 ‘등은 펴야지. 팔은 앞뒤로 흔들어야지.’ 해 봤자 긴장만 되고 와닿지 않잖아요. 지금 단계에서는 스스로 좀 느껴보시는 게 좋아요.”
선생님은 말 타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다리를 이렇게 굽히셔야 몸이 앞으로 가고요. 주먹은 앞으로 하시고 일어설 때 팔을 아래로 내리고, 앉으실 때 팔을 약간 올려 보세요. 그리고 말고삐는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방향 전환이 안 되니까 말고삐는 최대한 가깝게 잡으시는 거예요."
"오."
멋진 자세에 우리는 박수를 쳤다.
"자 그러면 다들 한 번씩 타볼게요.”
“선생님 말고삐는 새끼손가락 사이에 넣는 거 맞죠?”
말을 탈 때는 채찍도 들고 타기 때문에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영 헷갈린다.
“이렇게 새끼손가락에 고삐를 넣고 새끼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컨트롤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고삐 쥐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수업 시간에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아까 보니까 말을 왼쪽으로 보낼 때는 고삐를 왼쪽으로 당기고 오른쪽으로 보낼 때는 오른쪽으로 당기면 되더라고요. 말을 고삐로 컨트롤하는 거였어요? 승마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섬세하네요?”
“맞죠. 고삐로 아주 살짝살짝 컨트롤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대회 나가면 1위 하시는 분들이 남자지만, 섬세한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인지 여자들이 더 잘 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고삐는 말하고 나하고 연결된 끈인 거네? 한 마디로 통신수단.'
나는 생각을 좀 정리하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아까 수업 시간에 가방 얘기하신 건 뭐예요? 잘 못 알아들었어요.”
“아 그거요? 말을 탈 때는 가방이라고 생각하면 해요. 우리가 좋은 브랜드 등산용 가방을 메면, 끈도 편하고 내 몸에 딱 붙죠? 그렇게 말 등에 딱 붙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몸에 힘을 주고 타게 되면 말 입장에서는 아주 딱딱하게 느낄 거예요. 몸에 힘을 빼면 스펀지처럼 부드럽겠죠?”
“그 말씀은, 제가 지금 등산용 가방인 거죠?”
“그렇죠.”
“그니까 제 몸이 말 등에 끈이 딱 맞는 부드러운 가방처럼 있으란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바로 그거죠.”
그 뒤로 나는 말 등에서 맨 듯 안 맨 듯한 고급 등산 가방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내 생각과는 딴 판으로 제대로 굳은 돌이 되어 갔다. 중요한 건 수업이 진행될수록 달리는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고삐로 말 컨트롤을 더 섬세하게 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중심도 잘 못 잡는 나는 컨트롤은 고사하고 말 등에 앉아 그대로 블랙아웃이 되어버리는 날이 많았다. 말을 타면 말 등에서 몸을 일자로 잘 세우고 피스톤 운동하듯 그대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해줘야 하는데, 허리도 잘 못 펴는 나는 달리는 말에서 그대로 말 목으로 푹푹 쓰러졌다.
"목 끌어안으면 안 돼요. 그러다 떨어져요. 허리를 펴야 해요."
선생님은 내 표정을 보면서 또 소리쳤다.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표정에서 다 보여요. 지금도 나는 못 한다고 생각했잖아? 내가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잘하겠어요? 그렇게 하면 승마 절대 못 해요. 자, 소리 한번 크게 지르고 다시 타봐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 아."
소리를 크게 질러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내 지른 소리는 뒤끝이 무자게 떨렸다.
나는 제대로 쭈구리가 되어 버렸다.
'아니, 관광지에서 승마해 보면, 말 등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말이 그냥 가잖아. 말 등에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해야 말이 가는 거면, 옛날에 말 타고 한양은 어떻게 갔던 거야? 말 등이 먼저 나가기 전에 내 등이 먼저 다 나가 버릴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선생님은 귀신같이 아래쪽에서 보고 있다가 소리를 지르셨다.
"오른쪽 팔 더 벌리고, 오른쪽 팔꿈치 더 벌려요."
"앞사람보다 넓게 타야 해. 앞사람보다 바깥쪽으로 달려요."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말이 서면 뒷사람도 다 멈춰요."
"지금 내 얘기 들리죠? 듣고 있는 거죠? 정신 차려야 해.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돼.”
어느 날부턴가 나는 수업에서 점점 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말 위에 올라가면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찍어준 말 타는 동영상을 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말 위에 앉아있는 것처럼 나왔다.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선생님이 계속 소리를 지르실 만하네.'
수업 동영상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