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바틱은 넓은 의미로 곡예를 말한다. 무대 예술 및 스포츠 경기에 사용되는 신체 움직임으로 기계체조의 텀블링과 각종 무술 및 비보이의 화려한 발차기 조합으로 구성된 테크닉이라 할 수 있다.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 순발력이 요구되며 빠른 속도의 신체 협응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움직임을 배울 수 있다.
어느 날, 책을 좋아하는 연극배우 D 님이 나에게 말 했다.
“용희 님, 혹시 물구나무를 서서 배를 밀어 넣어 본 적이 있나요?”
“물구나무를 서서 배를 밀어 넣는다고요?”
“네. 그냥 서 있을 때는 누군가 ‘배를 집어넣어 보세요.’ 하면 근육을 집어넣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쉽게 되죠.”
“그런데 물구나무를 선 채로 배를 밀어 넣으려고 하면 갑자기 ‘앗 어떻게 하는 거지?’ 하면서 몸을 쓸 줄 모르게 돼요.”
“어머, 진짜 그런가요?”
나는 물구나무를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배를 밀어 넣으려면 어느 근육을 움직여야 하나를 한 참 생각했다.
“제가 전에 어떤 워크숍에서 아크로바틱을 잠깐 배운 적이 있었거든요. 확실히 아크로바틱을 하게 되면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니까 창의성이 좋아져요.”
나는 얼마 전 보았던 <제주 스카이워터쇼>를 떠올렸다. 다양한 무용수들이 나와 저마다의 묘기를 보여주었는데 다들 멋졌지만, 커다란 훌라후프를 던진 다음 그 속으로 들어가 훌라후프랑 같이 돌아가는 멋진 무용수의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다. 힘과 밸런스 그 둘을 다 잡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동작이었다.
“전에 아크로바틱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꽤 멋지고 인상적이었죠. 하긴 얼마 전 길에서 어떤 분을 만났는데 아들이 아크로바틱을 한다고 창의성이 좋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같네요. D 님은 지금 아크로바틱 배우고 계세요?”
“아뇨. 아직은 못하고 있어요. 배워볼까 생각 중인데 요즘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좋아지면 가려고 해요.”
“그래요? 그럼, 제가 먼저 가볼게요!”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나는 가본 적 없고, 해본 적 없는 아크로바틱 세계에 입문했다.
나는 아크로바틱 센터를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처음 센터에 도착한 날은 일반부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만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초등학생도 있었고 성인 남녀도 많았다. 일단 얼떨떨한 마음에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수업은 단체로 진행되지만,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1:1처럼 운영되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백 텀블링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식이다. 전반적으로 센터 사람들은 날아다니고 있었으며, 특히 매트 쪽 혼자서 연습하는 고급 기술 전문가들은 공중 2회전 정도는 쉽게 돌아 착지하고 있었다. 센터의 첫인상은 뭔가 신체 움직임이 자유롭고 힘을 폭발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참관하던 수업이 끝나고 관장님이 나에게 오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관장님. 오늘 처음 구경 왔는데요. 센터에 등록하려고요.”
“네, 좋죠. 평소에 운동하는 게 있으신가요?”
“특별히는 없지만 요가를 좀 했었어요.”
“요가요? 요가는 정적인 운동이고 이 운동은 좀 더 동적인 운동이라 움직임은 좀 다른데... 어쨌든 배우면 누구나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혹시 운동하시려는 목적은 어떤 건가요?”
“어떤 분이 아크로바틱을 하면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창의성이 올라간다고 하길래 한 번 와 봤습니다. 저 같은 몸도 물구나무를 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물구나무는 기본만 배우면 누구나 금방 되실 거예요.”
첫날은 상담만 받고 본격적인 운동은 다음 주부터 하기로 했다. 관장님께서는 신뢰가 가는 눈빛으로 물구나무서기는 금방 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어릴 때 이후로 뛰어논 적이 없었으므로 왠지 어려울 것 같아 반신반의했다.
‘까짓것. 뭐. 그냥 해보는 거야. 못할 것도 없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안 되면 뭐 천천히 해보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래, 뭐 매트도 푹신하게 깔려 있겠다. 다치진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센터에 좀 일찍 도착했는데 관장님이 말을 걸었다.
“회원님 혹시 물구나무 서 보신 적 있으세요?”
“어릴 때 뛰어놀 때요?”
“아, 네. 혹시 너무 빨리 배우지 않으셔도 되죠?”
“네 그럼요. 아주 아주 천천히 가르쳐주세요.”
관장님께서는 내가 진도가 느릴 것을 예고해 주셨고,
배우는 특별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느려도 괜찮았다.
“자, 그러면 먼저 몸을 풀게요. 자 모여 봅시다.”
수업의 시작은 스트레칭으로 시작되었다. 특별히 어려운 동작은 없었고 기본적인 동작들로 몸을 풀었다.
몸을 푼 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관장님은 물구나무서기를 설명해 주셨다.
“물구나무의 기본은 한쪽 다리를 앞으로 구부리고 상체를 자연스럽게 펴는 거예요. 이때 손을 앞쪽으로 짚으면서 시선을 손 사이로 보고 머리를 손 보다 앞쪽에 놓으면 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은 상태에서 시선은 계속 손 가운데 고정하세요. 왼 다리를 구부리고 있다면 오른 다리는 그대로 펴서 차올리면 됩니다. 자, 간단히 해보세요.”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물구나무를 선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혼자서 물구나무를 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잘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바닥 매트가 워낙 푹신하고 탄력성이 좋아 몸이 반동을 받아 위로 확 떠올랐다.
“잘하시는데요.”
'지금 이게 된다고? 이게 왜 되는 거지?'
“그럼, 이번에는 옆 돌기를 해볼게요.”
나는 어린 시절에 옆 돌기를 해보려고 했었지만, 번번이 실패해서 내 몸은 아마 옆 돌기가 잘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옆 돌기는 좀 어색했다. 센터 여자 강사인 <작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옆 돌기 특훈이 시작되었다.
“옆 돌기를 하려면 먼저 공중에서 다리의 위치를 바꾸는 연습부터 해야 해요. 이렇게 손을 매트 위에 짚으면서 오른 다리를 차 올리고 공중에서 발을 바꿔서 내려오는 연습부터 해 볼게요.”
나는 <작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옆 돌기를 열심히 했지만, 되다 안 되다가 반복되었다. 오른쪽 다리를 길게 펴고 옆으로 차올리는 동작이 잘 되지 않았다. 평소 안 쓰던 방향이라 그런 것 같았다.
“저, 물 좀 먹고 올게요.”
물을 먹는 사이 빠르게 백 텀블링이 수업이 시작되었다.
“백 텀블링의 기본은 골반을 뒤로 빼고 앉은 자세에서 골반을 밑으로 잘 내리는 거예요. 우리가 위로 뛰기 위해서는 무릎을 잘 굽혀야 하죠? 이것처럼 골반의 위로 미는 힘으로 백 텀블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때 손은 머리 위로 올리고 손가락의 방향은 서로 마주 보게 합니다.
손바닥이 땅에 닿으면 시선은 손과 손 중앙 바닥을 보시면 되고요. 상체는 최대한 뒤로 활처럼 휘게 만들면 됩니다. 자, 하실 수 있겠죠. 다 같이 한번 해봅시다.”
백 텀블링은 푹신하게 깔린 특별한 매트 위에서 시작되는 데 차례를 기다리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했다. 두려움도 잠시 어차피 배워야 할 동작이면 두려워하기보단 주문을 외우는 게 나았다.
‘못할 것도 없지. 못할 것도 없지. 못할 것도 없지.’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고 관장님께서는 먼저 물구나무를 서보자고 하셨다. 생각보다 물구나무가 잘 되었으므로 관장님은 백 텀블링에 도전해 볼 거냐고 물으셨다.
“네. 해보고 싶어요.”
“그럼, 제가 잡아 드릴 테니까 한번 뒤로 해보시겠어요? 자, 손을 이렇게 위로 올리고 골반을 뒤로 빼고 아래로 내리면 되는데요.”
“관장님 이렇게 하니까 꼭 뒤로 넘어지려는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뒤로 넘어지시면 돼요. 그때 제가 한번 돌려 드릴 건데 손을 바닥에 잘 짚고 시선을 바닥으로 잘 보시면 됩니다.”
“넘어지듯이요. 네 알겠어요. 한번 해볼게요.”
팔을 위로 올리고 뒤로 넘어지는 거야 어렵지 않은 동작이었으니 나는 힘을 빼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때 관장님이 나를 휙 돌리셨는데 그 힘으로 그대로 내 몸이 붕 떠서 뒤로 한 바퀴 돌면서 안전하게 착지했다.
“좋은데요! 정말 잘하셨어요.”
“뭐예요? 지금 된 거예요?”
“네! 된 거예요.”
“야 이게 되네.”
나는 내 몸이 한계를 넘어서 공중으로 휙 돌면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공중에 몸이 떠 있을 때는 시간이 좀 멈춘 듯이 느껴졌고 아크로바틱의 빠른 속도감 덕분에 몇 배나 더 즐거웠다. 몸이 공중에 뜰 때 몸이 허공에 머무는 느낌은 내 몸이 가벼워진 깃털이 되어 펄럭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 참 느낌 좋은데?'
나는 인간의 언어로 이 모든 감정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첫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첫날의 아크로바틱은 잘 되었으나, 두 번째에는 점점 자신의 한계가 느껴졌다. 아직 근육 쓰는 방향이 익숙하지 않았고, 관장님이 쓰라고 한 근육 방향을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물구나무를 선 뒤 그 상태에서 회전해서 떨어질 때는 필요한 자세를 잡는 게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물구나무를 선 채 회전해서 떨어질 때 하늘을 보고 팔을 올리고 허리를 들고 엉덩이는 땅에 붙인 채 왼발을 들어 올려야 되는데, 땅에 닿는 순간 방향 감각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거리는 거였다. 역방향으로 근육을 쓴다는 게, 머리를 좌뇌 우뇌를 번갈아 가면서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래서 아크로바틱이 창의성이 생긴다는 건가 보네.'
나는 막연히 아크로바틱과 창의성의 관계를 그렇게 이해했다.
어쨌든 두 번째 수업부터는 근육이 아직 생성되지 않은 건지 몸이 겁을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몸이 좀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욕심을 부려서 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머리를 비우고 최대한 몸에서 힘을 빼고 힘의 방향대로 흐름을 타자고 생각했다.
세 번째 수업,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시고 오라는 관장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정수기 앞에서 모였다. 아크로바틱이 창의성을 증폭시키는 운동이라 그런지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개성이 넘쳤다.
“헐, 대박. 허리 근육 뭐예요?”
“언제 찍은 거예요?”
<옆 돌기 잘하는 여자분>의 보디프로필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나는 호기심이 돋았다.
“찍은 지 한 3~4년 됐나 봐요.”
<옆 돌기 잘하는 여자분>이 대답했다.
“그럼 고등학교 때예요?”
<백 텀블링 잘하는 남자분>이 물었다.
“아뇨. 아니죠. 그럼, 제가 몇 살이게요?”
“뭐야. 갑자기 족보 꼬일 뻔했잖아요.”
옆에 있던 <작은 선생님>이 말했다.
나도 덩달아 <옆 돌기 잘하는 여자분>의 옆으로 가 사진을 한 번 보았다.
“허리 근육 뭐예요? 이게 가능해요? 헬스 하신 거예요?”
사진을 보고 봇물 터지듯 질문이 쏟아졌다.
사진 속 <옆 돌기 잘하는 여자분>의 복근은 세로 방향 두 줄, 가로 방향 세 줄이 선명했다.
‘원래 이게 가능해?’
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진짜 제대로 한번 운동하고 싶었다.
“헬스는 원래 계속하니까요.”
원래도 이 센터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물구나무서기는 기본이고 앞 돌기, 뒤돌기, 뒤로 공중돌기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저분들은 뭐 하시는 분일까?’ 센터에 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옆 돌기 잘하는 여자분>의 복근을 보고 더더욱 호기심이 돋았다.
수업이 끝나고 물을 마시는 중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디 프로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디 프로필 너무 부럽다.” <작은 선생님>이 말했다.
“보통 여자들은 체지방이 10% 미만으로 잘 안 나와요. 10%대 나오면 잘 나오는 거예요. 저는 10% 미만이긴 하지만.”
<옆 돌기 잘하는 여자분>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10% 대예요. 안 움직이면 살이 오히려 빠지던데. 근육이 빠지면서. 얼마 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2주간 안 움직였더니 다리가 얇아졌어요.” <작은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살이 안 쪄요. 살찌려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백 텀블링 잘하는 남자분>이 말했다.
“살찌는 거요? 그건 쉽죠. 작은데 고칼로리를 많이 먹으면 금방 쪄요. 아니면 탄수화물을 막 먹으면 돼요. 음.. 캐러멜 마키아토 드시고 밥도 드셔보세요.”
내 전문 분야가 나왔다. 달콤하게 살찌는 법.
느닷없는 캐러멜 마키아토 공격에 <백 텀블링 잘하는 남자분>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른 사람들이 그렇듯 아마도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미국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먹으면 제대로 찐다는 말까지 하려다가 그만뒀다.
“여기는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앞 돌기 잘하는 여자분>이 <백 텀블링 잘하는 남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참 궁금했었는데 서로서로 궁금한가 보다. 여기 계신 모든 분 다 뭐 때문에 오신 건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아 저는 결혼할 때 아크로바틱으로 입장하려고요.”
"네?"
순간 깜짝 놀라 내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결혼식에 입장하실 때 옆 돌기로 입장하는 거예요?”
놀라서 내가 물었다.
“그렇죠. 그냥 들어가는 건 재미없잖아요.”
‘아. 그렇구나.’ 역시 이곳은 평범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