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맛집

3. 치킨집에서 칼국수를 판다고요? ‘동방명품치킨’

by 김용희

H 언니와 거문오름을 걷고 나오는데, 배가 고팠다. 거문오름은 정상 코스 1시간, 분화구 코스 1시간 반으로 되어 있는데, 좋은 건 다 분화구 코스에 있어서 무조건 분화구 코스를 보고, 나와야 한다. 오늘 우리 역시 분화구 코스까지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아주 힘들진 않았지만, 두 시간 반 정도 걸으면 뭘 좀 먹어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


원래 이곳에는 꼬막비빔밥이랑 성게비빔밥을 잘하는 상춘재가 있었는데, 얼마 전 아라동으로 다시 이사했다. 나는 상춘재 이사 이후 거문오름 근처에 맛집을 알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다.


"언니, 근처에 맛있는 집 없어요? 저번에 치킨집에서 닭 칼국수 판다던 집 있었잖아요. 거기 여기서 멀어요?"

"아니 안 멀어. 여기서 한 15분? 우리 거기 가볼까? 진짜 맛있는데... "

"언니, 근데 그 집은 왜 치킨집에서 닭 칼국수를 팔아요?"

"그건 나도 몰라. 한 가지 확실한 건 간판은 '동방명품치킨'으로 붙어 있는데, 사람들은 다 칼국수를 먹으러 그 집에 간다는 거지. "

"신기한 집이네요."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치킨집에 도착했다. 메뉴는 단 두 개. 닭곰탕 아니면 닭 칼국수. 가격은 둘 다 7,000원 이었다. 우리는 닭 칼국수를 시켰다. 칼국수를 기다리는 사이, 작은 보리밥과 양념 고추장이 나왔다.


H 언니는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나도 언니를 따라 했다.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보리밥은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애피타이저로 보리밥을 먹고 닭 칼국수를 기다렸다.


이윽고 칼국수가 나왔고, 나는 국물 먼저 한 수저 떠먹었다.


‘뭔데? 이 맛!’


육수를 뭐로 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정말 시원했다. 분명 뭔가 비법이 있는 맛이었다. 이 칼국수는 내 지친 속을 한 번 확 풀어주고 시작했다.


'육수 일단 맘에 들어.'


국수도 기대하면서 먹어보았는데, 면이 굵지도 얇지도 않아 먹기에 편했다. 특히 면의 적당한 쫄깃함이 맘에 들었다. 칼국수는 잘 못 끓이면 면이 다 불어서 국물까지 끈적해져 맛이 없는데, 이 칼국수는 면이 '이제 나 익는다.' 할 때 타이밍 맞춰 불을 딱 꺼버린 듯 전문가의 포스가 제대로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진정 프로의 손길이 느껴지는 음식이 좋다.


처음 들어올 때는 '치킨집은 튀기는 게 전문이니까 삶아서 조리하는 면은 어설프겠지. 뭐.'하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웬걸... 진짜 각 잡고 먹어보니, 나는 이 집 면의 생생함이 좋았고, 지금껏 먹어 본 칼국수 중에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국물과 면 이외에 나머지 음식들은 별 기대 안 하고 먹었는데, 너무 질기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촉촉한 닭고기의 적당한 크기도 마음에 들었고, 전체적으로 느끼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김치가 당길 때 등장해 준 시원한 무 김치와 적당하게 뻣뻣한 배추김치도 좋았다. 무엇보다 난 이집 고추가루가 맛있게 맵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칼국수 국물 밑에 깔려있어서 '이젠 더 이상 감동할 일은 없겠지?' 하고 방심하던 차에 갑자기 나타나 준 적절하게 익은 단호박 조각까지... 단호박이 푹 퍼져있을 거로 생각하고 먹었는데, 깔끔하게 잘 익어 있었고, 이 단호박이 마지막에 이 칼국수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야, 진짜!"

모든 맛의 조화가 완벽했다. 이 칼국수를 끓인 사장님은 진정한 음식 천재였다.


“제대로 맛있어요.”

나는 연신 감탄하며, 맛있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먹었다. 평소 너무 짜다고 생각해서 칼국수 국물은 잘 안 먹는 데, 이 집 육수가 워낙 시원하기도 하고, 너무 졸이지 않은 국물 맛이 시원해서 국물도 끝까지 다 먹어 버렸다.


'여긴 진짜 또 오고 싶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도민들만 아는 찐 도민 맛집'이라고 소개된 블로그 글이 보였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점심을 팔고, 3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치킨을 판다는 것도. 그래서 치킨집에서 칼국수를 파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곳을 나오며, 이런 비밀스러운 맛집을 알게 되어 제주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동방명품치킨>

제주시 봉개동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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