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맛집

10. 비 오는 통창 카페 '블랙이쉬레드'

by 김용희

"하이, 자기야. 내일 <블랙이쉬레드> 갈 거지?"

희 언니의 문자였다.


"가요. 가요."

나는 얼마 전 언니와 돌아오는 수요일에 애월에 있는 <블랙이쉬레드>라는 카페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혹시 날이 좋지 않거나, 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언니를 만날 수 없을 거로 생각했었는 데 언니의 문자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럼 내 차로 가자. 9시 30분에 예전 편의점 있던 자리에서 봅시다."


"좋아요. 언니. 감사해요! 낼 뵈어요."


나는 쾌적하고 예쁜 카페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요즘 날씨 너무 덥지 않아? 어제 37도였어."

아침에 만난 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맞아요. 작년에 비해 너무 빨리 더워진 것 같아요. 어제 저 축축 늘어져 있었어요. 저녁 6시가 되어도 30도였어요."


"자기 그거 알아? 어제 제주시는 37도였는데 서귀포는 27도였대. 한라산에 구름 걸린 것 봤어? 푄 현상 때문에 그래."


오늘 희 언니는 선글라스를 머리에 올리고, 이런 과학 지식까지 뿜어내니까 반할 것 같다.


"어제 한라산이 하루 종일 구름모자 썼던 데요? 저 사진 찍었어요."


나는 언니와 애조로를 달려 애월에 도착했다. 애월로 들어가자마자 파랗던 하늘이 까매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기야, 여기 날씨 왜 이래? 원래 한라산 때문에 제주 북쪽과 남쪽의 날씨가 다른 건 아는 데, 동쪽과 서쪽은 왜 이런 거야? 동쪽 서쪽은 한라산에 걸리는 건 아니잖아?"


"그러게요. 원래 육지에서 놀러 왔을 때는 제주시에 비 오면 서귀포로 내려가서 놀다가 서귀포 비 오면 제주시에 와서 놀았었는데... 동쪽 서쪽은 왜 그렇지? 아? 맞다. 이게 그건가 보네요. 어제 한경면에 사는 작가님 인★에서 봤는데, '제주 서쪽은 오늘 비가 많이 오는 데 동쪽은 폭염이라네요.'라는 글귀를 봤었는데... 지금 이게 그 현상인가 봐요."


우리는 제주의 동쪽과 서쪽의 날씨가 원래 이렇게 스펙터클 하게 다른지 아니면 최근의 기후변화 때문에 그렇게 변한 건지는 모른 채 <블랙이쉬레드>에 도착했다.


"언니, 여기 정말 넓고 좋네요. 멋져요."

나는 건물 외관을 사진 찍으면서 말했다.


"안에는 더 좋아. 근데 오늘 사람이 없다."


"그러게요. 왜 그렇지? 여기 입구 때문에 그런가요? 저 혼자 오면 찾아오기 힘들 것 같은데요?"


나는 오늘 운전을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여서 내려오는 게 어려워 보였다.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지만, 어떤 안내판도 없어서 다음에 혼자 찾아올 수 있을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언니, 언니는 처음에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언니가 애초에 이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어. 나는 인★에서 보고 한번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최근에 친구랑 한번 와 봤던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언니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로비같이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홍차 매대와 카운터가 보였다. 우리는 키오스크로 주문하기로 했다.


"자기는 뭐 마실 거야? 여기 시그니처 메뉴 마셔볼래? 우바밀크티가 여기 대표 메뉴야."


"저 그럼 그거 마실게요."


"난 지난번에 밀크티는 마셔봤으니까, 오늘은 라테 마셔야겠다."


"제가 낼게요."

나는 재빨리 커피를 계산했다.


"그럼 우리 케이크도 먹자. 내가 케이크 살게. 자기 뭐 먹을래?"


"음... 여기는 제주니까 저는 당근케이크요."

나는 제주에선 당근 케이크를 파는 가게가 있으면 꼭 한 번씩 먹어보고 맛을 비교해 본다.


"그럼 나는 초코프레첼."


우리는 사이좋게 계산하고, 카운터로 갔다. 쇼케이스에 담긴 다른 동글동글한 빵들이 먹음직스러웠다.

먼저 2층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있으라는 언니의 말에 나는 카페 2층으로 향했다.


카페 2층은 1층보다 탁 트인 뷰가 더 멋졌다. 통창 하나에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고 패브릭으로 되어 있는 의자가 2개씩 있었다. 널찍하고 시원하고, 테이블 하나당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느 정도 개인적인 공간도 확보되어 좋았다.


"이야. 여기 진짜 멋지다."


나는 언니가 전에 블로그를 보여주면서 좋다고 했던 포토스폿에 앉았다. 얼마 후 언니가 케이크와 음료를 들고 2층으로 왔다.


"여기 진짜 좋지? 여기 혼자 들어와서 하루 종일 책 읽다 가도 좋을 것 같아. 나 저번에 이 자리 앉았었는데 우리 다른 자리도 앉아볼래?"


"좋아요."


우리는 카페를 좀 더 구경하다가 짙은 초록색과 파란색 소파가 놓인 큰 방 같은 공간에 앉기로 했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숲 뷰가 기가 막혔다.


"언니, 여기 그냥 '숲 멍' 때리고 가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소파에 몸을 묻고 뒤로 완전히 기댔다. 나른하니 좋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앉은 까마귀와 눈이 마주쳤다. 까마귀는 꽤 높은 가지에 앉아 있음에도 카페가 2층이라 나랑 눈높이가 같아서 신기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활발한 참새 떼들이 놀러 왔다.


"자기야, 쟤들 좀 봐. 쟤들 참새야? 비 오는 데 친하게 잘 논다."

나는 창 쪽으로 다가가 새들 사진을 찍었다.


"언니, 얘들 참새 아닌 것 같아요. 깃털이 형광 연두색인데요? 얘들 숲에서 자주 보던 애들인데... 참새보다 선도 더 각지고 날렵해요."


보통 참새들은 모양이 동글동글한데 얘들은 참새 사이즈이긴 한데 색도 다르고, 날아다니는 속도도 더 빠르고 몸도 좀 더 날렵해 보였다.


"아... 쟤네 동박새인가?"

우리는 포털 사이트에서 동박새를 검색했다. 형광 연둣빛 참새들이 나왔다.


"맞는 것 같은데요?"

나는 확신 없이 말했다. 내 눈앞에 있는 새는 동박새와 같은 색이긴 한데, 포털사이트에 나온 동박새보다는 좀 더 날렵했다. '숲에서 먹이를 구하느라 분주히 움직인 동박새인가?' 나는 오늘 찍은 사진을 숲에서 만난 <사진작가님>께 보여드리고 나중에 정확한 새 이름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 여기 새 많이 오나 봐요. 아까 저 밑에, 가지에 앉아 있는 까마귀랑 눈 마주쳤어요. 웃기죠?"


"그러네. 여기 높아서 새들하고 눈높이가 맞나 봐."


우리는 음료를 한 모금씩 마시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 왔을 때도 비가 왔었는데, 오늘도 비 온다. 아니 애월이 원래 습기가 없어서 제주에서 살기 좋은 동네라던데 비 자주 오네."


"날이 너무 더워지니까 이렇게 흐린 날씨가 살기 좋은 거 아닐까요?"


언니에게 대답하며 나는 당근케이크도 한 점 먹었다. 달지 않고 맛있었다. 나는 평소 당근케이크에 얹혀 있는 크림치즈와 계피 맛의 조화를 정말 좋아하는 데, 이 케이크는 두 가지 맛이 적당한 비율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케이크 맛있네요."


나는 당근 케이크 위쪽에 꽃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말린 당근도 먹어보았다. 아주 작은 장식이었는데 보통의 당근케이크에는 당근 모양으로 크림이 올려져 있는데, 진짜 당근으로 꽃처럼 장식되어 있어서 맛이 너무 궁금했다. 한번 먹어보니 작은 당근 맛은 쫄깃하니 달콤했다.


'당근만 이렇게 말려 먹어도 맛있겠다.'


나는 머릿속으로 꽃 모양의 과자 같은 당근 칩을 상상했다. 나는 제주 당근을 사랑하는 데, 특히 겨울철에 제주 당근을 먹으면 없던 힘도 솟는 것 같다. 당근이 힘을 솟게 하는 게 신기해서 나의 절친<단호박 친구>에게 혹시 제주에서는 당근을 보약으로 먹냐고 물어보니, 친구는 당근은 당근이라고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겨울철 당근의 불끈 솟는 힘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제주산 당근만 먹고 있다. 내 느낌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약간 제주 당근에 담긴 땅의 힘이 다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언니와 케이크와 초코프레첼을 다 먹고, 둘이 '숲 멍'을 때리다가 카페를 나왔다. 당근케이크와 초코프레첼도 맛있었고, 내가 시킨 밀크티 맛은 너무 떫거나 쓰지 않고 부드러워서 딱 좋았다. 언니에게 물어보니 라테도 맛있었다고 한다.


"자기야, 다음에는 여기 와서 하루 종일 있다 가도 좋겠지?"

카페를 나오면서 언니가 말했다.


"정말요.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 약간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성에 다녀온 기분이에요."

우리는 큰 도로로 올라 애조로를 다시 탔다.


"언니, 여기 뭔데요. 여기로 올라오자마자 비가 안 와요. 오늘 날씨 원래 이렇게 맑았어요? 아까 거기는 비 왔잖아요."


"그러게. 나 지난번에 갔던 날도 비가 왔었는데... 거짓말처럼 여기 도로에 올라오니 비가 그쳤네. <블랙이쉬레드>는 다음에 비 오는 날에 또 가면 좋겠다."


"언니, 그냥 아무 날 가도 계속 <블랙이쉬레드>에만 비가 내리는 거 아니에요?"

언니는 잠시 멀뚱히 내 얼굴을 보더니 "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나는 다음에도 언니와 함께 <블랙이쉬레드>에 가보고 싶었다. 그날도 <블랙이쉬레드>에 비가 내리면 <블랙이쉬레드>는 진짜 그곳에만 비가 내리는 야수가 사는 성이 맞을 것 같다. 다음에 한 번 더 확인해 봐야지.


<블랙이쉬레드>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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