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귤 따러가요.

by 김용희

"혹시 내일 오전에 귤 따러 가실 분 있나요? 조천이에요."


미자 언니의 글에 단톡방이 술렁거렸다. 많은 외지인이 그렇듯 제주살이 7년 차인 나는 그동안 귤 수확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었지만, 좀처럼 체험 기회는 얻지 못했었다.


귤 따기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아르바이트하다가 나무를 상하게 할까 봐 두렵기도 했었고, 돈을 받으면 일정량을 수확해 줘야 한다던데, 할당량만큼 채울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무에 달린 귤을 좀 따보고 싶기도 했었는데... 미자 언니 덕분에 이번에 좋은 체험 기회가 열렸다.


"오, 가고 싶다."


"귤은 달더라고요. 사실 오늘 따왔는데, 맛은 좋아요. 귤은 11 브릭스 정도. 귤 크기는 좀 크고, 주먹 크기요."


"저는 귤 따기 체험 처음이라 맛없어도 고고."


미자 언니의 말에 나와 혜수 언니, 그리고 유진 씨는 다 함께 귤을 따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미자 언니 남편인 김 반장님도 함께.


"언니, 옷은 두껍게 입어야 하려나요? 거기 추워요?"


요즘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해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없다. 특히 밭에서 일하려면 어떤 복장이 좋은 지도 잘 모르겠는 데...


"낼은 날씨 좀 괜찮다고 했어. 오늘 티셔츠에 패딩 조끼만 입고도 괜찮던데, 그래도 좀 도톰히 입고 와. 못 움직이게 많이 입으면 안 되고. 귤은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따. 일단 귤을 담을 큰 가방 하나 가져오고."


패딩 조끼는 없었기에 나는 일단 차에 얇은 옷부터 두꺼운 패딩까지 겉옷 몇 벌을 챙겨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귤을 따려면 귤 가위가 꼭 있어야 한대. 농자재 마트에서 판다는 데, 12,000원."


"언니, 가위 혹시 가는 길에 사실 건가요?"


유진 씨의 질문에 미자 언니가 대답했다.


"귤 가위 필요하신 분 아침에 우리가 같이 사서 갈게요. 후불."


"귤 가위 저요."


"저도요."


결국 우리는 미자 언니 덕분에 우리는 귤 가위를 하나씩 사기로 했다. 사실 요즘 마트에서 귤 한 상자가 만 원이 채 하진 않지만,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귤 가위를 하나 구매하기로 했다.



'귤 가위? 근데 귤 가위는 뭐가 다른 건가?'


나는 가지치기용 전지가위를 보긴 했었는데, 왜 귤을 따러 갈 때는 귤 가위가 필요한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미자 언니가 전해준 귤 가위를 보니 전지가위는 끝이 뾰족하고 긴 반면 귤 가위는 끝이 짧고, 날이 살짝 위쪽으로 올라가 있는 게 특징이었다.


'귤 가위는 뭔가 다르긴 하네?'


귤 따기 체험하러 간다는 내 말을 듣고, 동네 언니들은 내게 귤나무 절대로 상하지 않게 잘 따고 오라고 당부했었는데... 다행히 이 가위로 자르면 귤나무가 상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다들 밭으로 가볼까?"


미자 언니를 따라 우리는 귤밭으로 들어갔다. 인상 좋은 사장님께서는 초보인 우리에게 귤 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요점은 귤 꼭지를 일단 자르고 나서 한 번 더 짧게 잘라줘야 귤이 서로 찔러서 상하게 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하셨다.


농장 안에 빽빽하게 늘어선 귤나무에는 주먹 크기의 동그랗고 탐스러운 주황색 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우와. 미쳤다. 귤 너무 예쁜데? 정말 탐스럽다."


중얼중얼하는 나를 보며 유진 씨가 말했다.


"언니, 사진 찍어 드릴까요?"


"오 좋죠. 유진 씨 사진은 정말 예쁘게 나오잖아요."


유진 씨는 내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언니들 곁으로 갔다. 나는 농장을 두리번거리다가 귤나무 사이로 사라지기로 했다.


"우와, 여기는 완전 그림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 같네."


얼마 전 나는 귤 따기와 관련된 그림책을 읽었었는데, 오늘의 이 풍경은 마치 그 속에 내가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용희 씨, 너무 큰 거 따면 맛이 없고, 좀 작은 거 따야 해."


아름다운 풍경에 잠겨 두리번거리며 들어서는 내게 어느샌가 나타난 김 반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얼만 한 게 작은 거예요?"


"그니까 여기 보면 겉에 이렇게 큰 귤은 맛이 없고, 나무속으로 몸이 이렇게 들어가면 속에 작은 귤이 있잖아. 이 정도 크기."


김 반장님은 내게 적당한 귤의 크기를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 알겠어요. 한 번 따볼게요."


나는 김 반장님이 말씀해 주신 크기의 귤을 따기 위해 귤나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느새 유진 씨는 귤을 좀 딴 뒤 한 알을 까먹고 있는 게 보였다. 옆 나무에서 혜수 언니가 유진 씨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언니, 여기 귤 맛있는데요?"


"유진 씨 여기 봐요."


귤을 먹는 유진 씨를 사진 찍어주며 혜수 언니가 말했다.


"뭐야 뭐야 그렇게 앉아서 먹는 거 너무 웃겨."


나는 혜수언니와 유진 씨를 보다가 일단 김 반장님이 말씀해 주신 귤과 비슷한 크기의 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사실 귤 크기는 아까 봤는데, 그새 얼마만 한 크기의 귤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앞 귤나무에 귤이 너무 많아서 그 귤이 그 귤 같고, 그 귤이 그 귤 같았다.


'음... 아무거나 일단 따.'


나는 그냥 눈에 보이는 귤을 따기로 했다.


가위를 잡고 귤을 하나 따 보는 순간 나뭇가지에서 향긋한 귤 향이 났다.


'뭐야? 귤을 자르면 나무에서도 향이 나는 거야?'


나는 나무에서 이렇게 향긋한 향이 나는 게 참 신기했다.


"귤나무야 안녕. 나 좀 딸께."


나는 귤 향에 흠뻑 취해 열심히 따기 시작했다.


"용희 씨, 한 번 먹어봐. 입에 맞나?"


지나가던 미자 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미자 언니 말대로 나무에서 갓 딴 귤을 조금 먹어보았다. 방금 맡았던 향 때문인지, 아님 이 귤은 원래 맛있는 귤이어서 그런지 향긋하고 싱싱하고 상큼했다.


"맛있어요. 언니"


"응 그렇지? 우리도 집에 가서 먹어보니 아주 맛있더라고."


귤 수확이 신기한 건 따다 보면 사람들이 금방금방 사라진다. 방금 귤을 먹어보라고 말해주던 미자 언니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혼자 남겨진 나는 귤나무와 함께 잠시 시간을 보냈다.


'아니, 근데 이거 너무 많이 따면 나 혼자 옮길 수 있는 거야?'


언니가 큰 가방을 가져오래서 집에 있는 대형 타폴린 백을 가져왔는데, 정신없이 따서 담다 보니 가방이 너무 커서 아무래도 양껏 담으면 옮기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이쯤 해서 차에 있는 핸드 카트를 가져오기로 했다. 왠지 귤이 너무 많으면 혼자 옮기기 힘들 것 같아 어젯밤 차에 접이식 핸드 카트를 하나 실어 두었는데... 역시 이 귤들을 옮기려면 카트가 필요할 것 같다.


'오늘 하늘 참 예쁘다.'


카트를 끌고 귤나무 사이를 걸으니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외국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 했다. 나는 이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귤나무와 하늘, 카트가 나오도록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냥 밭 앞쪽에서 따야겠다.'


카트를 옮기다 보니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귤도 카트도 무거워서 다시 나오기 힘들 것 같다.


혼자 좋아하는 노래를 나지막이 들으며 귤을 따다 보니, 갑자기 내가 지금 따고 있는 귤이 맞는 귤인지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큰 귤은 맛이 없다고 했는데, 작은 귤만 골라 담다 보니 너무 안 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청귤인가?'


나는 레몬 연둣빛이 살짝 감도는 작은 귤을 따서 담았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잠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쉬기로 했다. 지나가던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지치셨어요?"


"아, 그런 건 아니고요. 귤을 봐도 뭐가 맛있는 귤인지 잘 모르겠어요. 큰 귤은 탐스럽고 예쁜데, 맛이 없다고 하시고, 작은 귤은 안 익은 것 같은데... 따다 보니 현실을 깨닫게 돼서요. 레몬 연둣빛 귤은 청귤인가요?"


"요즘엔 청귤 시즌이 아니라, 청귤은 없어요. 그냥 지금까지 안 익은 귤은 안 익은 거예요."


"아... 그렇구나요. 그럼, 제 귤은 괜찮은 귤을 딴 건가요?"


나는 큰 가방에 든 귤을 사장님께 보여드리며 물었다.


"음... 여기 보시면 이런 귤은 아직 안 익은 거고요. 색은 주황색 잘 익은 귤이 맛이 있는데, 작고 위쪽에 주름이 잡힌 게 좋아요. 여기 가방에 보시면... 음... 다 버리시라고 하고 싶은데, 그나마 이 귤요?"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 아무래도 나는 뭔가 잘 못 딴 것 같다.


"잘 따시는 분들은 보시면 귤을 잘 골라요. 저기 바구니 보이시죠? 저분은 좀 따보신 도민분."


사장님이 가리키신 귤 바구니를 살펴보니, 균등하고 작은 크기의 주황 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런 귤은 분명 이 나무들엔 없었는데... 저분은 저런 귤을 어디서 따셨지?


"일단 보시면... 귤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는 귤이 맛이 좋고요. 겉에 있는 이런 큰 귤 말고 나무 안쪽으로 이렇게 들어가시면, 귤이 많아요."


사장님은 내게 직접 귤을 고르는 법을 알려주셨다. 사장님께 배우니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알 듯 모를 듯 알겠지만...


나는 사장님을 따라다니며 사장님께서 알려주시는 귤을 몇 개 땄다. 사람들이 사장님 곁으로 몰려왔다. 친절한 사장님은 직접 귤을 따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셨다.


"사장님, 근데 귤을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시면 사장님은 남는 게 없으시지 않아요?"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씩 따가면 사장님이 남는 게 있으실지 진심 궁금해져 사장님께 여쭈었다.


"뭐, 일단은 제가 수확할 만큼은 이미 수확했고요. 저도 외지인인데, 제주 와서 보니까 의외로 사람들이 귤을 쉽게 먹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밭을 개방해서 가족들끼리 좀 나눠 드시라고 하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근데 동네 언니들이 그러는 데 귤을 함부로 막 따면 나무도 상할 거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저는 귤 가위를 가져오시라고 하고 있어요. 귤 가위로 하면 일부러 푹 찌르지만 않으면 귤나무가 상하진 않아서요."


"좋은 일 하시네요. 사장님. 이렇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져가서 잘 먹을 께요."


나는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용희 씨, 이제 가야 해. 12시부터는 사장님 점심 식사 하셔야 한대."


"아, 그래요?"


미자 언니의 말에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식사하시고 오후에 또 오셔도 돼요. 1시 30분부터 다시 개방하거든요."


시간이 되어 떠나는 우리에게 미안했는지 사장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나는 사장님께 거듭 꾸벅 인사하고 소중한 핸드 카트를 꼭 끌고 밭을 나왔다.


"용희 씨 재밌었지?"


"네, 언니. 정말 재밌었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또 와도 돼."


"언니, 좋아요. 너무 재밌었어요. 귤을 선별하지 않고 그냥 막 따버리라고 하시면 더 금방 땄을 텐데. 어떤 귤을 따야 하는지 몰라 오래 걸렸지, 뭐예요?"


"귤 따러 와서 용희 씨는 왜 공부를 하고 있니?"


글쎄? 나는 왜 귤을 따러 와서 좋은 귤을 선별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을까? 아마 나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사람이려나?


"언니, 정말 재밌었죠? 저는 조금만 필요하지만, 언니 주려고 많이 땄어요."


유진 씨는 내게 유진 씨가 딴 귤의 절반을 주었다. 동그랗고 예쁜 귤이 유진 씨와 닮았다. 깊어가는 가을. 제주의 한 귤밭에서 우리는 소중한 추억과 우정 한 자락을 함께 또 쌓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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