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럼, 외승 하러 가볼까요?

by 김용희

"우리 오늘 H 승마장 맞죠?"


수요일 오후 4시 16분. 나는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응. 수업 20분 전에 오라는 거 봤지?"


"오잉? 못 봤는데요? 그런 게 있었어요? 헐, 빨리 갈게요."


미자 언니는 단톡방에 외승을 나가기로 한 H 승마장에서 보낸 문자를 첨부해 주었다. 오늘 오후 5시에 외승이 있으며 현재 승마장 근처 기온은 14도로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는 않지만, 오늘 일몰 시각이 5시 43분이라 쌀쌀할 수 있으니 바람막이를 준비해 오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오늘은 외승 첫날이라 서류 작성을 하기 위해 수업 시작 20분 전까지 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반소매에 바람막이 하나를 챙겨서 출발하던 차였는데, 지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없을 것 같고 부디 오늘은 날이 많이 춥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H 승마장은 집에서 가까워 나는 시간에 맞춰 승마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희 씨, 빨리 왔네?"


주차하는 데 미자 언니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네, 날아왔더니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응, 잘했어. 오늘 혜수 씨는 일이 있어서 못 온대. 용희 씨랑 우리랑 유진 씨네 부부 이렇게 다섯이 탈 것 같아.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오늘 혜수 언니가 못 온다니 조금 아쉬웠지만, 외승은 오늘만 나가는 게 아니라서 다음 주에 또 같이 타면 될 거로 생각했다.


이곳 H 승마장은 한라산으로 올라가는 주요 동선에 위치해 있어서 그간 주변을 지나다니면서 외관을 많이 봐왔었는데... 어떤 곳일지 궁금하던 차에 처음 들어가 본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스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말의 얼굴도 편안해 보였고, 영양상태도 좋아 보였다. 평소 쉽게 보지 못했던 귀하게 생각했던 백마도 두 마리나 있었다. 신기한 건 백마의 말 갈퀴와 꼬리도 예쁘게 땋아져 있어서 사람처럼 느껴진단 거였다.


"우와 말도 멋있는데, 갈퀴도 이렇게 땋으니 신기하고 멋지네요. 백마도 두 마리나 있네요. 넘 멋지다."


사진을 찍으며 들어가는 데, 이미정 선생님이 인사하셨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말들 멋있죠? 백마는 저희 승마장에서 태어난 말들이에요. 일단 다들 오셨으면 시작하기 전에 서류작성부터 하도록 할게요."


승마는 낙마 사고가 잦아서 레저 상해 보험을 꼭 들어야 하는데, 나는 전에 축협에서 일 년짜리 보험을 들었던 터라 뜻밖에 이런 이벤트가 있어도 걱정 없이 마음이 좀 든든한 것 같았다. 물론 보험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승마장에서 일정 비용을 받고 보험을 들어주신다고도 한다.


그렇게 다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이미정 선생님께서 개인에게 말을 배정해 주셨다. 어떤 기준을 배정해 주시는지는 불확실했으나, 아마 관상을 기준으로 배정해 주시는 것 같다.


나는 쥬디라는 말을 배정받았는데, 흑갈색의 멋진 한라마였다. 선생님 세 분이 나오셔서 우리 일행이 준비하는 걸 도와주셨다. 말을 준비시키시면서 짬짬이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일단 내리막에서는 몸을 좀 뒤로 젖혀 주시고요, 오르막에서는 앞으로 좀 숙여 주시는 게 말이 달리기 좋아요. 그리고 꼬리뼈를 안장에 딱 붙여 주시고요, 가슴은 펴시고요. 골반을 안장에 밀착해 주세요. 맞아요. 아주 잘하셨어요. 그리고 말이 앞으로 갈 때는 허벅지로 움직임을 느끼시면서 골반을 살짝씩 움직여 주시고요."


여러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한 명씩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까 그동안 몰랐던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 모두 준비되셨으면 다들 출발하겠습니다. 쥬디가 가장 앞에서 달릴게요."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쥬디가 이곳의 서열 1위라 맨 앞에서 달린다고 했다. 이미정 선생님께서 우리의 선두에서 달리시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사장님께서는 우리를 쫓아 산길을 걸으시면서 말 타는 법을 조곤조곤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셨다. 혹시나 뒤쪽에서 달리시는 분들이 말에서 떨어질까 봐 세세히 신경 써주시는 눈치였다.


나는 이 상황이 지금 너무 고마웠다. 승마장에서 이렇게 세세하게 배려받으며 말을 탄다는 점이 놀랍고 사장님과 선생님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평소 걸어 다니던 오름을 말 타고 뛴다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과거시대에 장군이 되면 이런 느낌이 들까?


나는 오늘 수업에서 가장 앞에서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미정 선생님의 움직임과 말 타는 자세를 보고 배웠다. 움직임이 가볍고 말과 함께 호흡하는 게 정말 멋져 보였다. 우리는 가끔 궁금한 걸 묻기도 하고 대화도 하며 산을 달렸다.


"여기 팀은 지금 같이 승마를 배우고 계신 건가요?"


말을 타고 가면서 이미정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네, 전에 저희가 입문반이었는데요. 지금은 초급반이고요. 유진 씨와 도진 씨는 지금은 같이 못 하지만 지난 학기에는 같이 했었고요."


"아, 그래요. 거기는 입문반도 있군요."


"네."


"그럼 용희 선생님은 얼마나 타세요?"


"얼마랄 것도 없고요. 저는 잘 못 타요. 그냥 앉아 있는 수준이랄까요? 사실 궁금한 게 보통 말을 얼마나 타면 잘 타게 되나요?"


"음... 저는 말 탄 지 15년 되었는데요. 사실 말은 자주 탈수록 잘 타요. 그냥 많이 타야 해요."


"아, 그렇군요."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감각으로 타는 거니까. 그 감각이 열릴 때까지 자주 접촉해야 하는 건 아닐지 싶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자주 달리고 싶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과 산과 편백나무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바다도 보였다. 일몰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오름은 노을과 바다 편백나무와 억새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여기가 혹시 천국인가?'


나는 말을 타고 달리며 잠시 가을을 만끽하기로 했다. 우리 센터에서 말을 탈 때는 말이 물기도 하고 차기도 하고 그래서 무섭기도 했는데, 오늘 만난 쥬디는 성격이 온순하고 능력치가 좋아서 인지 내 마음에 무한한 안정감을 주었다.


'말과 사람도 궁합이 있나?'


서로의 마음이 잘 맞으면 울퉁불퉁한 산길도 잘 갈 수 있나 보다. 어쨌든 쥬디 덕분에 나는 멋진 가을과 오름을 물씬 즐겼다.


"끝내기 전에 실내 마장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아볼까요?"


외승이 끝나고 이미정 선생님은 우리를 실내 마장으로 안내해 주셨다. 나는 산에서 쥬디와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왠지 실내 마장에서는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뛰어보겠습니다."


이미정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쥬디가 달렸다. 나도 쥬디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지고, 말과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 진짜 멋지다.'


우리는 마장을 두 바퀴 돈 뒤 수업을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어떠셨어요?"


사장님의 말씀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정말 재밌고 좋았어요."


"넘넘 감사해요."


H 승마장을 나오면서 미자 언니가 말했다.


"우리 센터 말 들은 공무원 마인드가 있는데, 여기 말들은 뭔가 서비스 마인드를 갖춘 것 같아."


"말들이 사장님 마음씨 닮은 것 아닐까요? 승마장 분위기가 좋아서 인지 다들 온순해요. “


"저도 진짜 재밌었어요."


옆에 있던 유진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다음 주도 정말 기대된다."


우리는 다음 주 수요일 또 다른 외승을 기약하며, 우리의 첫 번째 외승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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