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말과 교감했던 게 과연 맞을까?

by 김용희

외승이 끝난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는 수업이 진행되는 승마 아카데미에 모였다. 우리 수업은 오후 2시인데 보통 앞 타임 수업이 없어서 1시 30분쯤 모여 자신이 배정받은 말을 미리 준비시키곤 한다.


"저는 대한이 할게요."


마구간 칠판에는 당일 우리 반에 배정된 말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칠판에 쓰인 말의 이름을 보면서 혜수 언니가 말했다.


"대한이 착해요."


옆에 있던 연재 언니가 혜수 언니에게 말했다. 연재 언니는 지난 학기에 계절학기 수업을 들어서 우리보다 센터 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럼, 나는 누구 하지?"


오늘은 동지의 컨디션이 안 좋은지, 동지 이름은 칠판에 없고, 나는 처서랑은 너무 안 맞아서 어떤 말로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저는 청명이 할게요."


그렇게 나는 좀 착해 보이는 말의 이름을 외친 후 청명이의 방으로 향했다.


"꺅~"


건너편 마방에서 대한이를 준비시키던 혜수 언니가 소리쳤다.


"대한이가 탈출했어요."


준비하던 대한이가 마방을 탈출해서 마장 쪽으로 달리자,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 혜수 언니가 대한이를 쫓아 나갔다. 그때 마침 차에서 내리시던 <오늘의 선생님>이 대한이 앞에 섰다.


"무슨 일이에요?"


"대한이가 탈출했어요."


<오늘의 선생님>은 혜수 언니에게 목줄을 받아서 대한이의 목에 목걸이 걸듯이 씌운 후 대한이를 달래서 마방으로 들여보내셨다.


"아니, 오늘 대한이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 저를 보자마자 달려 나갔어요."


"원래 대한이 착한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네요."


옆에 있던 손연재 언니가 말했다. 나는 다시 청명이의 방으로 가서 마방굴레를 씌운 후 청명이를 데리고 나왔다. 청명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나를 따라 수장대로 왔다. 동지는 조금 자기 마음대로 하는 어린아이 같은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청명이는 약간 어른스러운 말 같다.


나는 청명이를 준비시키기 위해 마방굴레를 풀고, 고삐를 채우려 했다. 청명이의 왼쪽 귀가 살짝 앞뒤로 움직였다.


"왜? 놀랐어?"


나는 청명이에게 다시 고삐를 보여준 후에 말했다.


"우리 이거 쓸 거야. 놀라지 마."


나는 내가 왜 말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나도 잘 몰랐지만... 어쨌든 청명이의 어른스러움과 듬직한 태도 덕분에 나도 모르게 다음에 우리가 뭘 할건지에 대해서 계속 말을 해주었다.


"이제 이거. 다리에 보호대도 차자."


청명이는 내 말을 알아듣는 듯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신기해서 계속 대화하듯이 장난삼아 말을 걸었다. 다음으로 나는 말 등에 패드를 깔고 안장을 올린 후 복대를 채웠다. 보통 복대를 채울 때는 함부로 휙 당겨서 올려버리면 말이 많이 놀라기 때문에 갑자기 물기도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대를 올리는 일이 가장 조심이 접근해야 하는 일 같다. 어쨌든 나는 청명이가 놀라지 않게 복대를 조심스럽게 올려준 후 등자 길이를 맞췄다.


등자는 말 안장 밑에 달린 발 받침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통은 자기 다리 길이에 맞게 조절해서 탄다. 등자 길이는 말 위에 앉았을 때 복숭아뼈까지 닿으면 맞다고 하는데 말을 타기 전에는 이 길이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보통 자신의 팔 길이만큼 등자 길이를 설정한다. 말 안장 양쪽에 달린 등자를 같은 길이로 맞추고 나면 말의 앞쪽 정중앙에 서서 등자 길이의 균형을 살핀다.


나는 왼쪽과 오른쪽 등자가 같은 길이로 되었는지를 보기 위해 청명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청명이가 차렷하고 바르게 섰다.


"청명아, 방금 나 등자 길이 잘 맞추라고 차렷해 준 거야?"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우연인지, 아니면 청명이가 정말 나를 위해서 차렷해 준 건지 너무도 헷갈렸지만, 청명이가 나와 눈을 맞춘 후 차렷 자세를 취한 거라 그냥 청명이가 나를 위해서 차렷해 준 거로 믿기로 했다.


"대한이가 또 탈출했어요."


옆 쪽으로 대한이가 또 마장 쪽으로 탈출했다. 선생님과 일부 사람들이 대한이를 다시 데려오는 게 보였다.


"아, 대한이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갑자기 무섭네요."


혜수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한이 원래 착한데, 오늘 이상하네요."


손연재 언니가 내게 말했다. 나는 혜수 언니가 대한이를 수장대에 옮긴 후 준비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연재 언니에게 물었다.


"혹시, 청명이는 어떤 말이에요?"


"청명이는 안 달려요."


"네?"


"청명이는 되게 안 가요. 매우 센서티브하고 시크한 스타일이에요. 센터에서는 명마라고 하던데, 보통 등에 타면 그냥 가만히 있어요."


"진짜예요? 헐, 큰일 났다."


나는 원래 못 달리긴 하지만, 오늘도 못 달리는 걸까? 나는 청명이를 바라보았다. 청명이는 나를 보며 지금하고 있는 대화를 듣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준비시키는 동안 청명이와 내가 교감이 잘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마음 한편에는 어쩌면 오늘은 청명이가 좀 달려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되고 우리는 마장으로 말과 함께 입장했다.


"악! 저 물렸어요."


뒤에서 대한이의 복대를 조이던 혜수 언니가 소리쳤다. 마장으로 들어가면 보통 안장과 연결된 복대를 다시 조이게 되는 데 이때 확 잡아당기면 말에게 물릴 수 있기에 나는 선생님을 기다리는 편이다. 하지만 말을 다룰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조이고 혼자 말을 타기도 한다.


"헐, 언니 괜찮아요?"


나는 청명이를 잡고 있었기에 언니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가까이에서 언니의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언니가 보여준 상처는 멍도 들고 좀 깊어 보였다. 선생님이 오셔서 언니의 상처를 확인하고 혜수 언니가 먼저 기승했다. 나는 차례를 기다리다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말에 올랐다. 내 오른쪽 등자를 맞춰주던 선생님이 갑자기 미자 언니에게 가시며 소리쳤다.


"아니, 복대를 왜 위에다 했어요? 이렇게 하면 말에서 떨어져요."


왼쪽 등자 길이를 채 맞추지 못한 나와 청명이는 그냥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청명이는 나를 바라보며 지금 달리는 건지 확인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미동하지 않자, 청명이도 그냥 그 자리에서 서서 사인을 기다렸다. 미자 언니의 준비를 마친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나의 왼쪽 등자를 맞춰주시자, 이번에는 청명이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명이가 알아서 가네?'


나는 그냥 청명이를 타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원래 말을 탈 때는 스쾃하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여야 하는데, 나는 어차피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말이 너무 빨리 달리는 걸 원치 않는다. 정말 신기한 것은 청명이가 내 마음과 움직이는 속도까지 모두 아는 듯이 그냥 나에 맞춰서 움직여 주었다.


"청명이 지금 잘하고 있어요."


밑에서 <오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청명이와 함께 조심조심 마장을 돌아다니며 방향 전환도 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수업이 끝나고 <오늘의 선생님>이 수강생 한 명 한 명 피드백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말하고 사람하고 궁합이 있어요. 원래 청명이는 안 가요. 시크해서 아무나 못 타요."


나는 내가 청명이를 타긴 했지만, 이 상황이 좀 얼떨떨했다.


"저는 어때요?"


김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마이웨이로 처서를 잘 콘트롤하시던데, 처서는 좀 세게 해야 되는 부분도 있어요."


"맞아요. 저는 처서 절대 못 타요."


나도 옆에서 한마디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청명이의 볼을 쓰다듬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고 했다. 청명이는 아쉬운 듯 마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확실히 나는 청명이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오늘 느낀 이런 감정이 말과 교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혼자 착각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에 청명이를 다시 만나면 내가 청명이와 진짜로 교감이 되는지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아바타 영화에서 아크란과 교감하는 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센터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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