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말이 포카리스웨트를 먹어요?

by 김용희

"별이 감당되시겠어요?"


금요일 승마 수업을 준비하면서 <오늘의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센터에서 별이를 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평소 센터 사람들이 별이가 순하고 잘 달리는 말이라고 해서 궁금하긴 했었는데... 말이 너무 크고 무섭단 생각에 내게 익숙한 말들만 타보다 보니 별이를 알아갈 시간은 별로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요즘 외승을 하면서 온순한 말들과도 교류하다 보니, 조금씩 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어서 오늘은 별이와 한 번 함께해 보기로 했다.


"용희 씨, 별이는 커."


안장과 복대를 가지러 지나가는 나를 보며 김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오늘 만나게 된 별이는 경주마인 서러브레드로 센터의 한라마 삼총사인 동지, 소만이, 처서보다는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서러브레드는 한라마 보다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더 좋고, 한 번에 쭉쭉 달려 나가서 속력은 빠르지만, 안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요?"


나는 동지를 준비시키시는 김 반장님을 보며 물었다.


"응. 그래서 아마 복대도 더 큰 거 해야 할 거야."


"아, 그렇군요"


나는 김 반장님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창고로 가서 안장과 복대 그리고 별이의 고삐를 챙겨왔다.


'잉, 고삐가 좀 더럽네.'


<오늘의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사람도 입에 뭐가 들어갈 때 더러우면 싫듯이 말들도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장갑을 벗고, 수돗가에 가서 고삐를 최대한 깨끗이 씻어주었다. 별이가 고개를 돌려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응, 이거 고삐 좀 씻어줄게."


요즘 한라산에 눈이 내려 주변 공기가 꽤 차갑다 보니, 수돗가에서 말고삐를 씻는 게 좀 춥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별이를 위해 고삐를 깨끗하게 씻어준다는 것이 뭔가 보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별이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만.


"다 됐다."


나는 별이에게 깨끗해진 고삐를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고삐를 고리에 걸고, 별이 곁으로 다가갔다.


'고삐를 먼저 채워야 하나, 안장을 먼저 올려야 하나.'


원래 고삐를 먼저 채워야 복대로 마르팅 게일이라는 끈을 연결해서 고삐를 고정하는 데, 오늘 내가 가져온 복대에는 고리가 달려있어서 언제든 고삐와 연결할 수 있었으므로 장안 순서는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혹시 승마 매너에 안장을 절대 먼저 올리면 안 된다는 항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처음 보는 말에게 다짜고짜 고삐를 채우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친해질 겸 안장을 먼저 올려보기로 했다.


"별이야, 빗겨 줄게."


나는 안장을 얹기 전 솔을 들어 별이를 빗질했다. 혹시 그냥 안장을 올렸다가 등에 지푸라기라도 들어 있으면 왠지 별이가 아플 것 같았기 때문에 등을 먼저 깨끗하게 해주기로 했다.


"빗질한다."


나는 별이 눈에 솔을 한 번 보여주고, 등으로 솔을 가져가 살살 빗질하기 시작했다. 별이를 만지다 보니, 별이는 세게 빗질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특히 목을 팍팍 빗기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솔을 최대한 작고 자극이 없는 것으로 골라 살짝만 빗질해 주다가 목 근처 부위는 내 손바닥으로 살살 털어주었다.


"다 됐다."


나는 별이를 보고 말했다.


"이제 패드랑 안장 올릴 거야."


별이가 사람 말을 못 알아들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패드를 먼저 별이에게 보여주고, 등에 올렸다. 확실히 별이의 등은 동지의 등 보다 크고 길었다. 나는 복대를 채울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안장도 올렸다.


"별이야, 이제 복대 할 거야."


나는 별이의 왼편에 서서 안장 밑 고리에 복대를 걸었다. 복대를 별이의 배 쪽에 대니, 별이는 복대의 차가운 느낌이 싫어서 인지 왠지 싫어하는 눈치였다.


"별이야, 이거 세게 안 당길게. 조금만 걸어놓을 거야."


나는 별이에게 말하고, 별이 오른편으로 다가가 복대를 반대쪽 안장 고리에 끼우려고 했다. 그때 다가닥 다가닥. 별이는 복대가 싫은 지 오른쪽 발을 두 번 굴렀다. 별이는 덩치가 커서 발을 구르니 꽤 위협적이었다.


'강제로 하면 별이가 오른발로 찰 것 같은데?'


나는 왼쪽으로 가서 복대를 살펴보고 혼자서 오른쪽으로 복대를 보낼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잘 못하면 밟힐 것 같은데?'


나는 별이의 왼쪽에 갔다 오른쪽에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두세 번 같은 행동을 반복해 보다가 혼자서는 복대 채우기가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연재 언니"


나는 수장대 옆 칸에서 태양이를 준비시키던 연재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침 말 안장을 가지러 창고로 가던 언니는 잠시 별이의 왼편으로 와서 복대를 내게 전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고삐를 채울 차례. 별이가 이미 오른발을 굴러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므로 고삐는 좀 더 조심히 채우기로 했다. 하지만 별이의 목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오? 이거 키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쉽지 않겠는걸?'


나는 키가 작은 기수들은 평소 고삐를 어떻게 채우는지 자못 궁금했지만 수업 시작 전에 준비를 마쳐야 해서 일단은 최대한 별이에게 부탁을 해서 고삐를 채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별이의 얼굴을 끌어 안았다. 다행히 별이는 고집 센 성격이 아니여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고삐를 채울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고삐를 채웠네요."


지나가던 <오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나도 내가 어떻게 고삐를 채울 수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별이가 고삐를 차 준 것 같다.


"이제 들어 가세요."


우리는 말과 함께 마장으로 들어갔다. 마장 앞에서 혜수 언니가 소만이와 씨름하고 있었다. 오늘 혜수 언니는 이 구역의 악동 소만이를 타기로 했나 보다.


"아니, 센터에 오면 꼭 야생마 길들이기 같다니까요."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오늘 운이 좋아서 별이를 타기로 했지만...


마장에 들어서자 우리는 하나둘 말에 올랐다. <오늘의 선생님>은 별이를 타게 된 내가 제일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별이의 등에 오르니 확실히 높았지만 그래도 안정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별이는 빨리 달려 나가는 특징이 있는 말이었는데 내가 걱정되셨던 선생님은 별이가 달리기 시작하자 아래쪽에서 소리치셨다.


"별이, 별이는 오른손은 손잡이 잡으시고요. 왼손으로만 고삐 주고 달릴게요."


나는 말에게 달리라는 신호를 주는 법을 아직 잘 알지는 못해서 일단 별이가 앞으로 세게 달려 나갈 때를 대비해서 오른손은 안장 앞쪽에 달린 손잡이를 꼭 잡고 있기로 했다.


'말에게 신호를 주는 법을 제대로 좀 배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말에게 달리라는 신호를 주는 법이 있는 것 같은 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다리, 무릎, 그리고 허벅지 순서로 신호를 전달하는 법이 있다는 데... 오늘은 그냥 떨어지지 않게 버티고 지금 마장에 들어와 있는 네 마리의 다른 말들과 부딪히지 않게만 타기로 했다.


확실히 별이는 잘 달리는 말이었다. 내가 주는 신호가 헷갈려서 별이가 능력대로 세게 달려 나가지는 못했지만... 내가 말에게 보내는 신호를 모르는 까닭에 제대로 된 신호를 줄 수 없는 게 속상했다. 나는 외승할 때 배운 대로 말의 배를 왼발과 오른발로 번갈아 가며 톡톡 쳐보았다. 외승할 때 배운 바로는 이렇게 말의 배를 왼발과 오른발로 번갈아 가마 톡톡 치는 것은 말에게 앞말과 붙어달라는 신호라고 했다. 그러니까 조금 달려보라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시험 삼아 살짝만 건드렸는데도 별이는 그 신호를 예민하게 알아듣는 눈치였다.


'별이 엄청 기민하고 똑똑하다.'


나는 아직 신호를 제대로 모르는 내가 잘못된 신호를 줘서 별이가 혹시나 빨리 달려 나갈까 봐 더 이상 별이의 배를 톡톡 건드리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냥 별이가 달려 나가면 속보 자세를 제대로 잡아보는 데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별이와 함께하니 1시간도 어느덧 훌쩍 지나갔다.


"오늘 잘 하셨어요."


수업이 끝나고 내게 <오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실 저는 오늘 별이를 제일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아무 문제 없이 잘 타셨어요."


아마 선생님께서는 나름대로 해보려고 했던 걸 좋게 봐주시는듯 했다. 말에서 내려서 나는 별이의 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용희 씨 옆에 가면 말들이 다 온순해지는 것 같아요."


마장에서 나오는 데 연재언니가 말했다.


'글쎄, 진짜 그럴까?'


선생님도 별이를 걱정하셨다고 했고, 연재 언니도 말이 온순해졌다고 하니 갑자기 나는 원래 별이의 성격이 궁금해졌다. 센터의 말들과 친숙한 연재 언니에게 다가가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어수선했던 바람에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아쉽게도 제대로 물어보진 못했다.


잠시 후 연재 언니는 오늘 탔던 태양이를 수장대에 데려다 놓은 후 가방에서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한 봉지 꺼내서 세숫대야에 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향긋한 포카리스웨트 냄새가 풍겨왔다. 오늘 열심히 운동한 별이도 나도 갑자기 포카리스웨트가 먹고 싶어져 연재 언니가 있는 수돗가를 쳐다보았다.


"언니, 그거 포카리스웨트예요? 포카리스웨트를 말에게 줘도 되나요?"


한창 포카리스웨트를 타느라 분주한 연재 언니에게 내가 물었다.


"네, 말들은 땀을 많이 흘리니까 잘 먹어요. 센터에 갖고 올 때 페트병에 들은 건 무거우니까 이렇게 가루를 갖고 다니다가 수업이 끝나고 물에 타서 말에게 주면 돼요."


"아, 그렇군요."


역시 말은 땀을 많이 흘리니까 포카리스웨트를 먹는구나. 왠지 뭔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땀을 흘리고 나니 나도 이렇게 포카리스웨트가 먹고 싶은데 나를 태우고 달려준 별이는 얼마나 더 먹고 싶을까?


"언니, 혹시 한 봉지 더 있어요?"


나는 언니에게 한 봉지 빌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물었다.


"아... 이거밖에 없는데..."


"아, 그렇죠."


나는 아쉬운 대로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떠서 별이에게 주었다. 혹시 목이 너무 마르면 맹물도 맛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별이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곧장 입맛을 다셨다.


"별이야, 이건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주지 못해서 왠지 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별이를 마방으로 보내면서 다음에 올 때는 꼭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준비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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