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말에게 포카리 스웨트를 줘 봤어요.

by 김용희

결국 나는 포카리 스웨트를 한 상자 샀다. 마침 한 상자에 총 5봉지가 들어 있어서 수업에 참여한 모든 말에게 한 봉지씩 타 주면 참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말이 진짜 포카리 스웨트를 잘 먹으려나? 혹시 포카리 스웨트 먹였다가 단체로 배탈 나는 건 아니겠지?'


나는 혹시나 임의로 막 먹였다가 말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연재 언니가 옆에서 먹이는 걸 봤으니 포카리 스웨트를 주는 건 별 탈은 없을 것 같았다.


'수업 끝나고 선생님께 허락받고 먹이면 괜찮을 거야. 선생님은 전문가이시니까.'


말을 위해 뭔가를 챙겨가는 게 처음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말에게 포카리 스웨트를 준다는 게 너무 어색해서 그런지 어쩐지 왠지 걱정이 앞섰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포카리 스웨트 한 상자를 들고, 센터로 향했다.

"용희 씨, 왔어?"


센터에 먼저 와 있던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이 나를 반겼다.


"네, 언니. 언니 저 포카리 스웨트 들고 왔는데 이따가 수업 끝나고 한 봉지씩 먹일까요?"


"그래. 그러자."


미자 언니의 긍정적인 반응에 약간의 용기가 생기는 듯했다. 우리는 함께 마구간으로 가서 칠판에 배정된 말을 확인했다.


"아직 말 배정이 안 됐나 보네?"


"그러게요."


오늘은 웬일인지 우리 반에 배정된 말이 없다. 언니와 칠판을 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혜수 언니가 센터에 도착했다.


"아직 말 배정 안됐어요?"


혜수 언니의 말에 김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냥 내가 하지 뭐."


"그래도 되요?"

"될 것 같은데? 이쪽에 보면 다친 말, 아픈 말, 컨디션 안 좋은 말. 이렇게 쓰여 있잖아? 그러면 그 말 빼고 타면 되지. 자, 내가 적을게. 다들 누구 탈 거야?"


"지금 반장님 선생님 놀이 하신다."


옆에서 혜수 언니가 웃으면서 반장님을 놀렸다.


"자, 말 이름을 이렇게 칸에 맞춰서 쓰면 되잖아. 소만이, 동지, 대한이, 별이 이렇게 타면 될 것 같은데? 다들 정해. 누구 탈거야?"


"난 동지."


미자 언니가 먼저 말했다.


"그럼, 소만이는 누가 탈래?"


"저는 소만이 무서워서 못 탈 것 같아요."


"저번에 소만이 탔는데, 막 로데오 하던데요?"


나와 혜수 언니의 대답에 김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내가 소만이 탈게."


"오. 완전 대박."


우리는 지난 시간 소만이의 무서움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이 구역의 악동 소만이를 흔쾌히 타신다는 김 반장님이 대단해 보였다.


"그럼 저는 대한이 탈게요."


"대한이 착해."


내 말에 김 반장님이 대답하셨다.


"그럼 저는 별이요. 저는 별이랑 잘 맞아요."


그렇게 혜수 언니는 별이, 나는 대한이, 김 반장님은 소만이, 미자 언니는 동지를 타기로 했다. 지난 수업에서 별이에게 포카리 스웨트를 주지 못해서 자못 미안했었는데 오늘 함께 수업에 듣는 말이 다 같이 포카리 스웨트를 먹을 수 있게 돼서 기뻤다.


"그래도 말을 아직 꺼내진 말고, 일단 선생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


잠시 기다리자는 미자 언니의 말에 우리는 수장대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생님께서 오시고 별다른 말씀이 없으신 관계로 우리는 아까 배정한 말을 그대로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대한아, 안녕?"


나는 지난번에 대한이가 탈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마방 문을 조금만 열고 몸으로 문틈을 막은 채로 대한이를 쓰다듬었다. 나에게 이런 기지와 여유가 생기다니, 아마 나도 이젠 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오늘은 실내 마장에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어서요, 야외에서 탈게요."


"와, 좋아요."


오늘은 신기하게도 겨울이지만 날씨가 봄처럼 따뜻하다. 실내 마장은 지붕이 있어서 들어가면 조금 컴컴하게 느껴지는 데, 오늘같이 햇살 좋은 날 밖에서 말을 탄다니 정말 좋을 것 같다. 특히 야외 경기장은 꽤 가까이에 바다가 보여 운동장 끝으로 돌면 마치 바닷가를 달리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승마경기 구경할 때 이 운동장에서 말을 달리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오늘 한 번 경험해 보겠네?'


밖으로 나간다고 하니 왠지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대한아, 가자. 우리 밖에서 탄대."


나는 대한에게 말했다. 평소 대한이는 운동장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 대한이 몸에 흙먼지가 뒤덮여 있는 걸로 봐서 오늘 어쩌면 나가서 놀았을지도 모를 것 같다. 나는 혹시 대한이가 흥분해서 운동장으로 달려갈까 봐 고삐를 단단히 잡고 대한이와 함께 걸었다. 착한 대한이는 천천히 나를 잘 따라왔다. 나는 대한이의 목을 쓰다듬은 다음 조심조심 걸었다.


운동장에 도착하니 역시 바다가 보이는 게 정말 멋졌다. 센터가 고지대에 있다 보니, 운동장에서도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운동장에서 바다를 보는 건 난생처음인 것 같다.


"대한아, 저기 바다야. 너 바다 가봤어?"


나는 대한이가 어쩌면 바닷가를 달려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대한에게 말을 걸었다. 대한이는 정말 바다를 가본 건지 아닌지 바다 풍경에 대한 반응이 별로 없었지만, 대신 내가 무슨 말을 할때 마다 왼쪽 귀와 오른쪽 귀를 번갈아 가며 쫑긋거렸다. 나는 대한이의 귀가 너무 귀여워서 손으로 뾱뾱 만져주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대한이의 등에 올랐다.


대한이는 센터의 다른 말보다 순하고 얌전한 편이다. 나는 대한이와 함께 살살 움직이며 최대한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운동장 끝으로 말을 몰았다.


"대한아, 바다야. 바다. 너 바다 본 적 있어? 대한아 저기 바다야."


대한이는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왼쪽 귀를 뒤로 돌리고, 오른쪽 귀를 뒤로 돌렸다. 나는 대한이 반응이 재미있어서 대한이에게 말을 걸며 조심조심 움직였다. 탁 트인 경치가 평화롭고 아름다워서인지,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평보로 한 바퀴 도세요."


나는 천천히 대한이와 운동장을 돌았다. 소만이와 별이는 어느새 운동장 한 바퀴를 돈 뒤 먼저 달리고 있었고, 동지도 별이 뒤를 졸졸 따라서 뛰는 바람에 갑자기 세 마리의 말이 한꺼번에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대한아, 우리는 뒤에서 가자."


나는 소만이와 별이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무리에서 나와 대한이와 천천히 움직였다. 대한이 역시도 얌전한 스타일이라 그런지 다른 말이 옆에 오면 살짝 서거나 피하는 스타일 이었다. 나는 오늘은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고, 대한이와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이 좋아서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대한이는 고삐를 너무 뒤로 당기면 싫어하는 스타일이어서 고삐를 최대한 많이 주고 뒤로 잡아당기지 않고 좀 여유롭게 있었더니 대한이도 나도 편안해지는 함께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소만이는 머리를 털고, 다리를 들어 올리고 했다. 그래도 김 반장님은 나폴레옹처럼 소만이를 잘 컨트롤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나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김 반장님이 그냥 신기하기만 했다.


"소만이 조마 돌려 드릴게요."


김 반장님의 컨트롤에도 소만이가 계속 머리를 흔들자, 선생님은 조마를 돌려주신다고 했다. 선생님은 소만이를 운동장 한가운데로 데리고 가셔서 긴 줄을 고삐에 연결한 뒤 원의 중심에 서시고, 말을 선생님 주변으로 빠르게 달리게 했다. 운동장을 마음껏 달릴 수 있게 되자 소만이의 속도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빨랐다.


"이야, 소만이 정말 멋지다."


날쌔게 달리는 소만이를 보고 있자니 오늘은 이 구역의 악동 소만이가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 같다. 바람을 따라 물결처럼 휘날리는 소만이의 갈퀴와 꼬리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민첩한 다리를 보고 있자니 오늘따라 소만이가 좀 멋져 보인다. 소만이의 달리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돌아오셨다.


"말을 천천히 걷게 하시고, 잠시 무릎을 조금만 펴서 일어서서 버티면서 가보세요."


나는 걸어가는 말 위에서 일어서는 게 가능할지 좀 궁금해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잘 일어서지 못했지만, 그냥 버티면서 일어서니까 곧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되네?'


야외에서 걸어가는 말 위에 버티고 서 있자니, 내가 마치 서커스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었다.


'이거 참 새롭네?'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나의 말에 대한 공포심은 어느새 다 사라진 것만 같다.


"용희 선생님. 완전히 다 일어서지는 마시고요. 다리를 조금 굽히셔서 공중에서 버티세요."


나는 선생님께서 어떤 자세로 버티는 걸 원하시는 지 선생님의 지시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오늘 움직이는 말 위에서 일어서서 한 참 버텨 본 걸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을 마칠게요."


나는 오늘 나를 잘 태워준 대한이를 많이 쓰다듬었다. 대한이와 함께 수장대로 돌아오며 열심히 나를 태워준 대한이에게 포카리 스웨트를 줄 수 있다는 기쁨에 오늘 처음으로 포카리 스웨트를 가져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포카리 스웨트를 한 봉지씩 나눠 가진 뒤 물에 타서 말에게 주었다. 함께 나눠 먹으니 기쁨이 두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대한이도 포카리 스웨트를 좋아하는지 어느 새 허겁지겁 먹어버렸다.


"얘들 정말 좋아하는 데? 다들 잘 먹네."


멀리서 김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었다. 나는 아쉬워하는 대한이를 위해 세숫대야에 남아있는 포카리 스웨트를 헹궈서 어떻게든 남은 걸 끝까지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세 번쯤 했을 때 물이 거의 맹물이 되자 그제야 대한이는 마시는 걸 멈췄다.


"확실히 맹물보다는 포카리 스웨트가 좋은 가보네? 맹물은 안 먹네."


옆에서 지켜보던 미자 언니가 말했다.


"그런가 봐요."


나는 미자 언니에게 대답한 뒤 대한이를 마방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대한아 잘자."


나는 대한이를 쓰다듬은 뒤 마방 문을 닫았다. 동지도 소만이도 별이도 오늘 다들 좋은 밤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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