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팀의 외승 마지막 날이다. 나는 언니들과 함께 마지막 외승을 나갈 생각으로 미리 잡혀 있던 외승 예약 날짜를 변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오전에 강습을 받고 오후에 외승을 나가게 되어 하루에 두 번 말을 타게 되었다. 하지만 아침에는 말 등에서 제대로 앉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별 다른 체력 소모가 없었기에 마음의 부담은 없었다.
'승마장에 가서 말을 한 번 타보면 오늘 아침에 배운 게 응용이 되려나?'
나는 오늘 아침 배운 대로 몸이 따라줄지 무척 궁금한 채로 승마장에 도착했다. 전에 잠시 다녔던 헬스장 관장님의 말씀대로 오늘 제대로 머슬앤마인드 커넥션이 되면 좋으련만. 특히 그동안 따로 놀던 발목이 몸의 다른 부분들과 좀 합체되면서 몸과 마음도 합체되면 좋겠다.
"용희 씨, 왔어?"
승마장에 들어 서는 데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이 마구간 앞에 사이좋게 서 계시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차에서 내리는 데 미자 언니가 물었다.
"용희 씨, 아침에 강습 어땠어? 여기 사람 많아?"
"확실히 세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한 열분 정도 같이 했던 것 같고요. 기초 자세를 다시 배웠는데 전 좋았어요."
"그랬구나."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하희숙 선생님이 우리를 보며 인사하셨다.
"오늘 외승은 3학년 여자아이도 함께 나갈 건데요. 아직 오지 않아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겠어요?"
우리가 잠시 어린 친구를 기다리는 사이 김 반장님이 내게 물었다.
"용희 씨, 그래서 오늘 많이 배웠어?"
"발목을 잘 못 써서 오늘 발목 쓰는 걸 배웠어요."
나는 아침에 배웠던 자세를 생각하며 대답했다. 옆에 있던 미자 언니는 하희숙 선생님께 말했다.
"저희는 오늘이 마지막인데 따뜻한 봄에 올게요."
나는 연재 언니에게 계절학기를 물어보면서 미자 언니에게도 계절학기나 H 승마장에 같이 가는 게 어떤지 한 번 물어봤었는데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은 겨울은 춥고 봄에 하신다고 했다. 아무래도 승마장이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만큼 겨울이 추운 건 사실이기도 하니까.
"봄에 잘 타시려면 겨울에 연습하시면 좋죠. 지금부터 연습하면 봄에는 날아다닐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에 내게 꽂혔다. 나는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땅에서 말 타는 자세를 취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희숙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정확한 자세로 말을 타게 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말과 내가 하나가 되면서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말도 힘이 들지 않고, 나도 힘이 들지 않으며 진짜 서로 하나가 된 듯한 그런 느낌.
"그런 날이 제게 올까요?"
나는 희숙 선생님께 물었다.
"그럼요. 가능하죠."
이윽고 3학년 친구가 도착하고, 나는 쥬디와 함께 야외로 나왔다. 오늘 혜수 언니는 일정이 있어서 우리보다 1시간 일찍 외승에 나갔다고 했고, 나는 3학년 친구가 같이 있어서 눈치 없이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의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쥬디, 안녕? 아침에 만나고 또 만나니까 좋다."
이쯤 되면 쥬디도 빙긋 웃어줄 만한데, 쥬디는 이 승마장의 서열 1위 말답게 아주 근엄한 표정이었다. 아마 말은 개와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종족인가 보다. 개였으면 이쯤 만났으면 벌써 애교를 떨었을 텐데 쥬디에게서는 어딘지 모를 비장함과 큰일을 앞둔 직장인의 프로페셔널 함이 느껴졌다.
"원래 오늘은 B 코스로 갈 예정이었는데,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숲 사이로 들어갈게요."
앨리샤를 탄 하희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앨리샤는 소리에 예민해서 노루도 무서워하고 바람 부는 날도 무서워한다고 하는 데 아마 훈련 차원에서 선생님이 오늘 타고 나가시나 보다. 제주의 바람은 워낙 강하고 매섭지, 숲으로 들어간다는 말에 나는 별다른 걱정이 되지 않았다. 쥬디는 바람 소리에 그리 예민하지도 않고, 앞에 뭐가 나타나도 쥬디가 다 알아서 해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쥬디는 뒤쪽으로 누군가 다른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본능적인 뒷 발차기 대신 알아서 몸을 90도 틀어서 길을 비켜주기도 했었다. 나도 그 상황을 보고도 지금 이런 게 가능한지 믿기지 않았었지만, 쥬디는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인 생각이 가능한 말인 것 같다.
아침에 쥬디랑 호흡을 좀 맞춰서 그런지 바람이 불어도 꽤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억새 사이를 헤치고 편백 숲으로 들어갔다.
"저기 노루가 있네요. 뿔이 달렸어요. 보이시죠?"
앞쪽에서 하희정 선생님이 소리치셨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뿔이 달린 노루가 먹이를 먹고 있는 게 보였다.
"근데 왜 이리 까매?"
뒤에서 백마인 알렉스를 타고 계시던 김 반장님이 소리치셨다.
"엉덩이는 하얘요."
앞에서 하희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노루가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 채 편백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내가 지금 제주에서 말 타고 있는 게 맞나?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황홀해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쥬디, 고마워.'
나는 괜스레 쥬디의 목을 쓰다듬었다. 업무에 집중 중인 쥬디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쿨한 쥬디.
"자, 다들 준비되셨나요? 지금 부터 산길을 속보로 뛸 거예요."
오르막에 도착해서 우리는 오와 열을 다시 정비하고, 속보를 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자, 갑니다."
선생님이 가장 앞에 서시고, 어린 친구, 미자 언니, 나 그리고 김 반장님 순서로 줄을 맞춰 산길을 달렸다. 나는 온 신경을 최대한 발뒤꿈치에 가져가서 몸을 뒤쪽으로 최대한 젖히려고 노력했다. 오르막을 달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구부려줘야 하는데, 어차피 몸이 구부러져 있으므로 발꿈치를 밑으로 내리도록 신경만 잘 쓰면 평지보다 무게 중심을 잡기가 더 수월한 것 같았다.
발꿈치를 밑으로 내리니 지난번보다 확실히 쥬디가 좀 편안해하는 눈치다. 나 역시도 몸에 힘이 좀 덜 들어가고, 적은 힘으로 달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쥬디를 타고 한양에도 가겠는데?'
평소 나는 말을 탈 때 힘이 너무 많이 들어서, 과거 시대에는 대체 어떻게 말을 타고 한양에 갔던 건지 의문이 많았었는데 정확한 자세로 타면 사람도 말도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신기했다. 아마도 물체가 이동할 때 이동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움직임을 모든 흐름에 맡기면 움직이는 말 위에서도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인가?'
나는 산을 달리다 문득 신라시대 천마도에 왜 말의 다리 부분이 구름처럼 되어 있는 건지 알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사료에는 그 말이 신성한 동물이라 죽은 사람을 하늘로 사람을 데려간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아마도 나는 말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가 되어 말을 달리면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천마도로 표현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말을 더 잘 탈 수 있게 되어 진정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면 어떤 걸 알 수 있을까? 나는 승마에 대해 점점 많은 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