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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Mar 30. 2024

30. 외승 나가자는 그런 흔한 약속

"용희 씨는 오늘 쥬디 타세요."


두성이와의 공중 부양 로데오 사건 이후로 선생님께서는 내가 너무 얼어붙어 버릴 것을 염려하셨는지, 내게 익숙한 쥬디를 배정해 주셨다. 나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예쁘장한 하프링거 보다 한라마인 쥬디가 좋다. 쥬디는 나랑 체고가 잘 맞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까칠하다고 하던데 나랑은 성격도 잘 맞아서 편안하다. 나는 쥬디의 방 앞에 서서 쥬디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쥬디야, 우리 말 타러 가자."


말해놓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아참, 네가 말이지."


말에게 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쥬디가 편해서 나도 모르게 친구인 줄 알았다.


"쌤, 쥬디가 말인데, 제가 쥬디 보고 말 타러 가재요."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쥬디를 데리고 마구간 밖으로 나오니 밖은 어느새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한 봄이 와 있었다.


"쥬디야, 이젠 봄이다. 다음에 우리 외승 나가면 풀이나 실컷 뜯어먹자."


쥬디는 내 말을 알아듣는지, 귀를 쫑긋거렸다. 외승은 말을 타고 마장 밖 야외에서 달리는 것을 말하는 데, 제주도는 농촌관광 승마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외승'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외승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참여비의 60%를 도에서 지원하는 데, 제주에는 약 9개 승마장이 외승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 승마장도 그중 하나이다.


작년 가을에 나는 제주도에 외승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쥬디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쥬디는 다른 말 보다 더 예민한 감각을 지녀서 그런지, 신선한 풀을 좋아하고, 풀도 아무거나 먹지 않고 일정 길이로 자라난 풀만 뜯어먹는다. 쥬디와 함께 노루손이 오름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비밀의 숲으로 간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쥬디는 때 묻지 않은 신선한 풀을 마음껏 뜯어먹었다. 나도 숲 풍경에 취해 쥬디가 맛있는 풀을 마음껏 뜯어먹게 그냥 두었었고, 올해도 혹시 노루손이 오름으로 들어가는 때가 있으면 쥬디에게 풀을 마음껏 먹여줄 참이다.


"용희 씨, 외승 안 해?"


강습 때 같이 말을 타는 부부 중 부인분이 내게 말을 걸으셨다.


"외승요? 하려고 하긴 했는데...."


나는 미자 언니네와 혜수 언니랑 같이 타려고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미자 언니네는 요즘 바빠졌다고 하고, 혜수 언니도 뭔가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용희 씨는 지금 매일 타고 싶을 때인데, 몸이 근질근질할 걸요?"


지나가시던 미정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맞죠. 완전 매일 타고 싶어요."


나는 우리 승마장에 정착한 뒤로는 말들의 서비스 마인드 덕분에 많이 안정되어 말 공포증은 많이 극복했고, 최근에 내가 오른 발목을 제대로 못 쓴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생활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오른 발목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자세도 어느 정도 교정되었다.


"그럼, 우리랑 타. 우리 둘만 외승 나가면 선생님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부부 분의 데이트를 방해하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함께 나가면 재밌을 것 같고 나보다 워낙 잘 타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배울 점도 많을 걸로 생각되었다.


"끼워주시면 저도 신청할게요."


그렇게 나는 올해도 외승 프로그램에 등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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