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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Mar 15. 2024

29. 말 타고 날아갈 뻔한 날

“용희 씨 오늘은 두성이 타세요."


두성이는 수말로 암말인 쥬디와 달리 달려 나가는 힘이 세고 겅중겅중 뛰기 때문에 타는 사람이 반동을 크게 줘야 하는 말이다.


“두성이 좀 힘드시긴 할 건데, 용희 씨가 탈 수 있을 거예요.”


이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골반이 틀어져서 쥬디가 자꾸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인지, 아니면 새로운 말을 타면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어서 인지 어쨌든 나는 오늘 두성이를 타게 되었다.


“두성아, 안녕?”


마방으로 가서 인사하는 데 두성이가 내 손에 왼쪽 뺨을 갖다 댔다. 내가 경험해 본 말들은 강아지와는 달리 옆에 가도 시크하게 풀만 먹었었는데, 두성이는 대형 강아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첫인상처럼 두성이 성격도 강아지 같아야 할 텐데...


“선생님, 쥬디는 불러도 아는 척 안 하는 데, 두성이는 뺨도 갖다 대주네요.”


“쥬디가 안 해줬어요?”


“네.”


쥬디는 내가 만만한지, 아니면 출근이 싫어서 인지 옆에 가면 먹이통에 엤는 건초를 더 집중해서 먹는다. 조금 기다렸다가 데려가야지 하고 기다리면 더더 열심히 먹고 당기기엔 좀 미안해서 가만히 서 있으면 더더더 깊이 얼굴을 박고 먹는다. 그러다 내가 “선생님!”하면 갑자기 고개를 딱 들고 선생님을 힐끗 쳐다본 후 나를 따라온다. 확실히 말들은 사람에 따라 행동이 다른 것 같다. 두성이는 부디 오늘 내 말을 잘 들아줘야 할 텐데...


“두성아, 가자. “


나는 두성이를 데리고 마장으로 갔다. 마장으로 가는 길에 풀을 보고도 뜯어먹을 생각을 안 하는 걸로 봐선 두성이는 예민한 성격은 아닌 것 같고, 두성이랑 쥬디랑 누가 서열이 더 높냐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잘 모른다고 하셨다. 쥬디와 두성이는 암말과 수말로 굳이 서로 서열을 겨루지 않는다고 하던데 두성이는 힘이 세고, 쥬디는 그냥 세다고 하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럼, 준비 운동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두성이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두성이는 확실히 안정감이 있고, 왼쪽으로 목이 꺾이거나 펜스에 몸을 부딪히거나 하는 쏠림 현상은 없어서 좋았다.


“자, 몸 다 푸셨으면 이제 경속보 해볼게요. 용희 씨, 두성이는 좀 길게 타세요. “


두성이는 겅중겅중 뛰는 타입의 말로 여기서 길게 타라는 말은 앉았다 일어설 때 서서 버티는 시간이 다른 말보다 길어야 한다는 말이다.


두세 바퀴 돌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허벅지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쥬디를 탈 때보다 공중에서 조금 더 버티고 앉으니 두성이가 쥬디보다 빨리 달리는 느낌이다.


“용희 씨, 괜찮죠?”


밑에서 선생님이 소리치셨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몸은 이미 땀범벅이 되었고, 오늘 진짜 제대로운동하는 느낌이 든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니 승마 1시간이 마라톤 2시간 열량을 소모한다던데... 두성이를 타보니 그게 진짜였나 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말과 달리는 박자를 맞춰 보려고 말의 오른 다리가 뒤로 갈 때 일어섰다. 원래 노련하신 분들은 이렇게 안 하신다고 하던데... 나는 일어서려다가 말의 움직임을 놓치는 일이 잦아 말의 다리를 보고 일어서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알아냈다. 어쩌다 보니 두성이와 합이 맞았는지 갑자기 두성이가 더 빨라졌다.


“헐”


이 느낌 마치 말 여러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느낌이다. 두성이는 역시 강아지가 아니고 말이었다.  


'두성아, 우리 이렇게 한양까지도 달리겠다.'


달리면서 두성이 한테 텔레파시를 보냈다. 두성이가 느끼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기수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느끼니까 아마 내 마음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내가 두 번째 순서로 달리는데 두성이가 워낙 잘 달리니까 옆에서 달리시는 분도 더 빨라지셨다. 두성이를 타고 과거시대에 한양에 간다면 바로 이런 기분일까? 나는 두성이를 잘 몰랐지만 같이 달리다 보니 두성이는 고삐를 당기는 걸 무척 싫어하고, 느슨하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은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길 원했다.


"용희 시, 고삐 텐션 유지하세요."


"두성이가 세게 당기면 싫어하는데요?"


"무슨 소리예요. 얘들도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거니까요. 자신감 있게 해요."


선생님 말을 듣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긴 여기는 말이 직장인 출퇴근 하듯 일을 하고 있으니, 서비스업 종사자가 맞는 표현 같다. 잠시 웃으며 말을 타다 보니, 선생님께서는 내 표정을 보시곤 말 뒷다리에서 실려오는 힘을 그대로 받아 쫀득하게 일어날 수 있으면 힘을 빼고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잘은 모르겠지만 안장 가장 뒤쪽에서 하체 반동을 크게 주니까 말의 뒷다리 힘과 나의 에너지가 합해져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빨라졌고, 마음은 왠지 모르게 시원해졌다. 그렇게 말 타고 달리기가 익숙해질 때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번에는 회전 방향을 오른쪽으로 해볼게요.”


보통 우리가 운동장을 뛰면 왼쪽 방향으로 뛰는 데, 말을 탈 때도 대게는 왼쪽 방향으로 달린다. 그렇게 달리면 왼쪽 다리를 지지대로 삼아 골반을 살짝 왼쪽방향으로 틀고, 어깨도 왼쪽을 더 뒤로 하면서 시선도 왼쪽방향을 보고 달린다. 이렇게 하면 내가 몸을 살짝만 돌려줘도 말이 알아서 좌측에 시선을 두고 왼쪽방향으로 돌게 되는데, 하지만 오른쪽 방향은 우리가 평소에 달리지 않는 방향이다 보니,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해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중요한 말의 뒷다리 반동을 받아 내가 일어서는 타이밍을 못 잡게 되는 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특히 나는 오른쪽 발목을 쓰기 때문에 중심축도 무너져 있고, 반동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큰일이네. 나 아직 두성이랑 서로 익숙하지 않은 사이인데, 반동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아마 내가 못할 걸로 지레 포기하고, 말등에 앉아서 달리는 좌속보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두성이 등에서 통통 튕기면 튕길수록 두성이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두성이는 처음에 두성이가 뛰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일어서 박자 맞춰 일어서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으면 자극돼서 더 빨리 달린다고 한다.


어쨌든 오른쪽으로 달릴 때, 나는 말의 반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말아야 할 때 일어서는 등의 이상한 습관이 들지 않기 위해 일단은 일어서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고, 그냥 두성이에게 몸을 맡기고 통통 거리면서 있었다.


"자, 그러면 이제는 S자 연습을 해보도록 할게요."


제일 앞에서 달리시는 분이 오른쪽으로 회전하다가 트랙의 중간쯤에서 우회전해서 트랙 가운데 편백나무 숲을 가로질렀다. 나도 따라 달려들어갔다. 그러다 내가 그만 고삐를 세게 당겨버렸는지 두성이가 머리를 털면서 갑자기 로데오를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손잡이를 잡고 카우보이처럼 몇 번 버티고,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용희 씨, 괜찮아요?"


놀란 이미정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나는 두성이의 다리가 꺾인 줄 알고, 두성이가 괜찮은지를 물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말은 끄떡없다고 하셔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용희 씨, 펜스에 너무 붙어서 들어가니까 말이 놀래서 그래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서서히 우회전을 돌았어야 하는 데 갑자기 확 꺾다 보니 두성이가 놀랐다고 하셨다.


"앉는 자세를 절대 앞으로 숙이지 말고, 회전해서 방향을 바꿀 때도 엉치뼈를 안장에 붙이고 절대 자기 중심점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이미정 선생님께서 당부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매일 뵙는 부부 분들이 내게 다가오셨다.   


"그래도 잘 버텼어요." 부인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제가 오늘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좀 자만한 것 같아요. 두성이는 세게 당기는 걸 싫어하는 데..."


내 말을 듣고 남편 분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원래 승마가 오래 걸려요. 오늘은 돼도 내일은 안 될 수도 있고... 잘 되는 날을 점차 늘려가면 돼요."


"네."


나는 어차피 선수가 될 게 아니니, 마음을 비우고 타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조금 신중했어도 되는 데, 나 자신에게 일희일비하는 성격이 있는 건 아닐지 반성하게 되었다. 말을 타다 보면 평소 자신의 성격이 다 나오게 된다고 하던데 나 역시도 의식하지 못했던 나를 새로 발견하게 되어가는 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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