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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Apr 04. 2024

31. 구보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부인분이 말씀하셨다. 


"외승 나가면, 구보도 한다고.... 나는 아직도 구보가 무서워서 너무 빨리 달리면 손잡이를 잡을 때도 있어."


"구보요?" 


구보는 승마에서 분당 320m 정도를 달리는 것으로, 3박자 걸음걸이라고 하는 데, 구보할 때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어서 뚜렷한 3박자로 구성된다고 한다. 말이 오른쪽으로 구보한다면 왼쪽 뒷다리, 왼쪽 앞다리와 오른쪽 뒷다리를 함께, 오른쪽 앞다리, 정지상태 순서로 움직인다고 하며, 구보할 때는 말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균형을 잃지 않도록 고삐를 적절한 길이로 잡아야 한다. 몸을 너무 앞쪽이나 뒤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다리를 안장 위쪽으로 조이지 않게 주의하며 안장 깊게 내려앉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아직 허리를 펴고 안장 중앙 깊숙이 앉아 골반의 균형을 맞추어 무릎 안쪽을 말에 밀착시키는 기좌도 잘되지 않고, 말의 다리는 4개인데 말을 달릴 때 2박자만 느껴지는...그러니까 말머리와 앞다리 두 개 그리고 내 몸까지만 느껴지는 상태라, 구보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뭐, 안장에 손잡이가 있으니까 무서우면 대충 잡고 버티면 되지 않을까...? 



  

"용희 씨, 오늘 날씨 좋지?" 


부부 분들과 함께하는 첫 외승은 유채꽃이 활짝 피고 따스한 햇살이 밝게 비추는 어느 화창한 금요일에 시작되었다. 


"네, 어제까지만 해도 비 오고 추웠는데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아니, 요즘에는 한 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다니까요."


지나가시던 미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용희 씨, 용희 씨는 오늘 스타 타시고요. 부인분은 쥬디, 남편분은 두성이 탈게요." 


스타는 우리 승마장에 가장 모범생 말로, 수말이 면도 섬세하고 잘 달리면서도 고집이 없는 그야말로 모범생 스타급 말이다. 


"쌤, 스타는 성격이 어때요?" 


"아휴, 쥬디보다 훨씬 낫죠."


나는 쥬디가 좋은데, 쥬디의 예민함으로 인해 옆에 있는 말 친구들에게 뒷발차기를 자주 시전해서 승마장에서 쥬디의 평판은 별로 좋진 않다. 늙으면 친구 한 명은 있어야 한다며 친구들한테 잘해주라고 쥬디한테 누누이 말했건만, 쥬디에게는 말귀의 경읽기였나 보다.  


"아니, 스타 근무 스타일 말고요. 실제 성격이요." 


"실제 성격이요? 음..."


스타는 워낙 모범생이어서 별다른 특징이나 나쁜 버릇이 없다. 사실 나도 스타는 몇 번 타보았는데 특별히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아주 안전하게 잘 달려서 아이들 외승 체험에는 늘 에이스로 출동하는 말이다. 


나는 스타를 마구간에서 데리고 나와 내 다리 길이에 맞게 등자 길이를 맞췄다. 말에 올라서 나는 양쪽 발을 등자에 끼우고 일어서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이상하게 늘 왼쪽 다리가 길고 오른 다리가 짧은 것처럼 느껴지는 데, 실제로 나를 보면 그 반대라고 한다. 


"용희 씨. 어때요? 아직도 왼쪽이 긴 것 같아요?" 


"네." 


뭔가 골반의 균형이 안 맞는 건지 요즘 나는 왼쪽 다리가 길게 느껴지고, 뒤에서 보면 내 몸이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다고 한다. 말 등에 앉았을 때 골반 균형이 무너져 있으면 나처럼 어느 한쪽에만 체중을 싣기도 하고, 엉덩이뼈가 말 등에 닿는 느낌이 없다고 하며, 이러한 현상은 주로 척추 불균형 때문에 일어난다.    


"자, 출발합니다." 


미정 선생님이 내 등자를 다시 맞춰주시고, 우린 하희숙 선생님을 따라 외승을 나갔다. 부부 분들은 십 년 넘게 말을 타신 관계로 내가 스타를 타고 선생님 뒤 두 번째로 달리고, 부인분이 쥬디를 타고 세 번째, 남편분이 두성이를 타고 마지막에 달리기로 했다. 


"유채꽃 정말 예쁘지 않아요? 작년에 씨앗을 뿌렸는데, 겨울에 비가 많이 와서 많이 쓸려 내려가기도 했고, 키가 좀 작지만 그래도 예쁘죠?" 


"네." 


희숙 선생님 말씀에 승마장을 돌아보니, 언덕 전체가 노란색으로 덮여있어서 아름다웠다. 입구 쪽 해가 잘 드는 곳에 뿌려진 유채는 제법 키도 커졌는데, 여기 언덕 유채들도 지금도 예쁘지만 조금 더 크면 더 멋질 것 같다. 


"햇빛을 더 받고 나면 유채꽃 키가 더 크진 않나요?" 


"글쎄요. 개화하면 쉽진 않을걸요."


나는 유채꽃 키가 좀 아쉽기는 했지만 노랗게 물든 언덕이 예뻐서 잠시 감상에 젖었다. 올해 우리 승마장은 편백 나무도 더 심고 포토존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큰 부지를 어떻게 사장님까지 세 분이서 다 관리하는지...다들 정말 부지런하신가 보다. 


우리는 유채꽃밭을 지나, 99곡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급수가 잘 되는지 동백꽃이 유난히 촉촉하고 탱탱했다. 


"이렇게 예쁜 동백꽃은 근래 처음이네요." 


"예쁘죠?" 


한참 평보로 산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풀숲에서 꿩이 날아올랐다.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꿩 때문에 흠칫 놀라서 스타는 잠시 멈칫하다가 쿵덕쿵덕거렸다. 


"꿩이네."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날아가는 꿩을 보며 말했다. 


"용희 씨, 많이 늘었네요. 전 같으면 무서워했을 텐데." 


"그런가요?"


생각해 보면 겨울이 지나면서 무서움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우리 승마장에 온 뒤로 나는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한 순한 말들 덕분인지, 아니면 안장에 달린 손잡이 때문인지, 승마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자, 그러면 이제 구보 한 번 해볼게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구보. 


"용희 씨는 한 손 고삐 잡으시고요. 한 손은 손잡이 잡으시고, 뒤로 푹 앉으시면 돼요."


선생님의 지시에 스타가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무념무상으로 손잡이를 꼭 쥐었다. 지금 내가 잘 달리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분당 320m를 간다니, 그 속도감이 엄청났다. 


"용희 씨, 잘하고 있어요." 


희숙 선생님은 구보를 하시면서 상체는 뒤로 돌아 달리는 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셨다.


'승마 지도사가 되려면 저 정도는 타야 하나보다.' 


나는 선생님을 보면서 아득해져 가는 내 정신을 잡으려 노력했다. 내 몸은 놀이공원에서 우주 전투기를 탄 것처럼 앞으로 붕붕 날았고, 내 머리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데 몸만 앞으로 나가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용희 씨, 괜찮았어요?" 


구보가 끝나고 희숙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네. 좋았어요."  


집에 돌아와서 나는 희숙 선생님이 보내주신 동영상을 받았다. 말 달릴 때는 15분쯤 구보로 달린 것 같았는데, 실제는 15초 밖에 되지 않는 신기했다. 역시 말은 엄청 빠른가 보다.  


"수고하셨어요. 바람이 많이 불어 구보할 때 살짝 걱정했는데, 잘해주셨어요. 영상 보면 팔이 많이 흔들리는 게 보이는 데요. 평보와 속보할 때 집중해서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될 때가 와요. 긴장하니까 상체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처음인데 이 정도면 잘하셨어요."


선생님 칭찬에 뭔가 좀 뿌듯함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무릎부터 허리까지 정확히 앉을 수 있으면 더 잘 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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