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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Apr 06. 2024

32. 구보를 또 해보겠습니다.

우리 승마장은 선생님이 두 분이셔서 수강생들은 수업시간까지는 어떤 선생님께 배우게 될지 미리 알진 못한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워낙 베테랑이시고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셔서 편안하고 두 수업의 질이 다르다거나 하는 것은 없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정 선생님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셔서 수업 시간이나 외승 때 적절한 음악을 틀어주시곤 한다. 미정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예전에는 직접 노래를 불러주시기도 했었다는 데, 요즘에는 음원으로 대체하고 계신다고 했고, 나는 과연 수강생들의 신청곡을 받아주실지가 궁금해서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보았다.


"쌤, 수업 시간에 주크박스에 노래 신청해도 돼요?" 


"넹 ㅎ" 


나는 나름대로 고민해서 승마 박자에 맞는 곡 8곡을 신청했다. 선생님께서는 한꺼번에는 안되지만 참고해 주신다고 했고, 나는 되는 것만 틀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드디어 두 번째 외승날이 되었다. 나는 지난주에 구보했었기 때문에 이번 주에 또 하게 될지가 궁금했고, 어떤 선생님과 외승을 나가게 되는 지도 궁금했다. 


"외승 때마다 날씨가 아주 맑네요." 


나의 말에 부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러게. 그제는 비 오고, 어제는 흐리더니 오늘은 아주 맑네." 


"다들 복을 많이 지으셔서 외승 때마다 날이 맑은 가 봐요." 


우리를 맞이하시며 마구간 앞에서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어느 코스로 가실래요? 오늘도 B 코스예요?" 


우리 승마장은 체험할 수 있는 코스가 두 개인데, A 코스는 노루손이 오름으로 가서 편백숲을 체험하는 것이고, B코스는 아흔아홉 골을 보면서 걸쇠오름 쪽으로 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A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편백숲을 굽이굽이 돌아볼 수 있어서 편안하고, B 코스는 오르막이 있고 빠른 속도로 뛸 수 있어서 재미있다. 


"둘 다 재밌죠." 


나는 어느 코스로 가든 크게 상관은 없고 A 코스로 가도 가장 위쪽에서는 오르막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어서 재밌기에 별 상관은 없었다. 


"A 코스도 가장 꼭대기에서는 위쪽으로 쭉 달리는 것. 그것도 재밌죠." 


나는 위쪽을 가리키면서 손을 위로 쭉 뺐다. 


"용희 씨, 손가락 위로 쭉 하면서 몸이 또 따라오네. 다리는 땅에 붙이고, 몸을 따로따로 한번 써봐요." 


나는 선생님 말씀에 다리를 바닥에 딱 붙이고, 손을 위로 향하게 한 뒤, 손가락만 쭉 뻗어 보았다. 어깨가 손가락을 따라 올라갔다. 몸의 각각 다른 부위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으면 말을 잘 타게 되는 걸까?


"오늘은 스타, 쥬디, 두성이 나가면 되겠네요." 


지난번 외승 때처럼 나는 스타를 배정받았다. 스타는 워낙 배테랑 말이니까 혹시 오늘 구보를 또 하게 되어도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안장을 고정하는 복대를 조이고 등자를 맞추고 있는데, 뒤에서 미정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희 씨, 다른 분들이 오늘 용희 씨가 고르는 코스로 간대요. 용희 씨는 A 코스 간댔죠?" 


그렇게 우리는 미정 선생님과 함께 A 코스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흔아홉 골 쪽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아마 내가 코스 이름을 잘 못 알았나 보다 하고, 나는 어느 쪽으로 가든 큰 상관이 없었으므로 마장 가득 핀 유채꽃을 보며 선생님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을 올랐다. 


"용희 씨, 오늘은 용희 씨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줄게요." 


선생님께서는 어제 내가 문자로 신청한 듀스의 사랑 두려움을 틀어주셨다. 참 이상한 게 어딘가에 음악을 신청했을 때 내가 신청한 음악이 나오면 마치 내가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데, 말 위에 올라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아, 노래 너무 좋네요." 


노래를 들으며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구간에 접어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벚꽃 나무를 건드리시며 말씀하셨다. 


"올해는 너무 바빠서 꽃구경도 못  했는데, 오늘 이렇게 나오니까 좋네요. 올해 첫 벚꽃이에요." 


선생님이 벚꽃 나무를 톡 하고 건드리자 선생님의 손 끝에서 꽃잎이 날아와 내 앞으로 떨어졌다.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친구들과 소풍 갈 때의 느낌이 들었다. 순간 타로의 sun 카드가 왜 그런 그림으로 그려지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말 등에 올라와 있고, 태양은 따스하고 포근하며, 좋아하는 음악까지 들으니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자, 그러면 먼저  경속보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승마에서 속보는 분당 220m를 움직이는 빠른 걸음걸이를 말하는 것으로 말의 대각선상 두 다리가 동시에 움직여 2박자로 진행되는 보법이다. 속보에는 말 위에 지긋이 앉아서 타는 좌속보와 리듬에 따라 엉덩이를 들어주는 경속보로 나뉘는 데, 나는 골반이 살짝 앞으로 굽어져서 경속보는 좌속보 보다는 조금 더 쉬운 것 같고 오늘은 스타랑 나오게 되어 스타가 워낙 잘 달리니까 밖에서 달려도 딱히 두렵진 않았다. 경속보로 살짝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제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자, 그러면 이제 구보를 해보겠습니다. 용희 씨 하체 딱 버티고 뒤로 누워요." 


나는 지난번에 희숙 선생님과 구보를 해보기는 했지만, 오늘도 구보할 거란 생각은 못 했었는 데... 일단 무서우니까 고삐를 한 손에 잡고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았다. 내 마음은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스타는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달려 나간다. 머리는 오늘도 내 몸은 우주 전투기 타는 느낌이 들면서 큰 파도를 넘실넘실 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용희 씨, 뒤로 더 누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미정 선생님께서 구보를 하면서 뒤를 돌아서 내게 승마를 가르쳐 주고 계셨다. 나는 정신도 없고 무섭고 해서 손잡이를 꼭 잡고 뒤로 몸을 젖혔다. 빨리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앞으로 굽히는 것도 아니고 뒤로 젖히는 건 사실 좀 무서운 느낌이 들긴 한다.  


"워. 워. 이제 평보 할게요. 용희 씨, 어땠어?" 


"무서운데, 재밌어요. 말을 타다 보니까 천마도의 말 다리가 왜 그렇게 그려져 있는지 알 것도 같네요." 


"하하. 용희 씨, 이번에는 고삐 잡고 달려봐요." 


"네?" 


진짜 큰일났다. 나는 진짜로 아직 고삐만 잡고 구보를 할 마음의 준비는 안 되었는데... 


"쌤, 안 돼요. 손잡이 잡으면 안 될까요?" 


이제는 정말 퇴로도 없고, 말에서 내릴 수도 없고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안 돼요. 한번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아아, 쌤 저는 못할 것 같아요." 


난리 났다. 손잡이 잡고도 무서운데 고삐만 잡고 구보라니. 


"그럼 한 손은 고삐 잡고, 한 손은 안장 뒤쪽을 잡아요." 


선생님의 말씀에 뒤에 계시던 부인 분이 말씀하셨다. 


"그게 더 무서울걸." 


그러니까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 안장을 잡는다는 건 말은 앞으로 가는 데 나는 달리는 말을 타고 옆으로 간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내 마음도 슬슬 체념하기 시작한 것 같다. 


"쌤, 그냥 고삐 잡고 한 번 해볼게요."


"그래요. 고삐 잡는 게 더 안 무서워요."


앞에서 선생님이 달려 나가시고, 스타가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 느낌으로 달려 나갔다. 마음으로는 수도 없이 '할 수 있다.'를 외치고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용희 씨, 버텨. 뒤로 더 누워. 눕고 버텨. 뒤꿈치 밑으로 내려." 


이쯤 되니, 내 다리가 내 다린지, 말 다리가 내 다린지. 나는 최대한 스타에게 하체를 밀착하고 상체를 뒤로 젖히고 고삐를 놓치지 않게 엄지손가락으로 꽉 쥐었다. 정상 가까이에 다다라 선생님께서는 말을 멈추셨다. 


"용희 씨, 어땠어? 고삐만 잡는 게 덜 무섭지?"


"네. 신기하게도 고삐를 잡는 게 덜 무서운데요"  


"그러니까. 말 속도를 내가 고삐로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고삐를 잡는 게 더 안 무서운 거예요."


이런 게 그런 건가? 무대에 서는 걸 상상하면 무지 무서운데, 막상 무대에 서서 공연하면 덜 무서운 그런 거? 어쩌면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면서 상상 속에서 무서워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막상 부딪히면 그렇게 최악은 아닌데 말이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달리기에 덜 무서운 것도 같고요." 


바람이 불면 저항 때문에 더 무서운데 바람이 덜 부니까 조금 나은 것도 같다는 생각에 나는 한마디 했다. 


"나는 오늘 바람이 많이 불었어도 용희 씨 구보하라고 시켰을 거야. 비가 와도 마찬가지고... 비가오든 눈이 오든 매일 더 나은 내가 되면 되는 거예요." 


나는 평소에도 미정 선생님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선생님이 유독 더 듬직하고 멋져 보인다. 선생님은 자꾸만 안주하려고 멈칫거리는 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주시니까 말이다.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바퀴 돌아서 내려가 볼까요?"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노래도 듣고, 벚꽃 옆에서 사진도 찍고, 꿩도 만났다. 한껏 자라난 풀 때문인지 모범생 스타까지 풀을 뜯어 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한창 멋진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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