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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Apr 12. 2024

33. 오늘, 고사리 따러 가요?

"즐거운 주말 보내고들 있죠? 고사리가 슬슬 나오네. 다음주 쯤 고사리 회동 한번 할까요?"


단톡방에 미자 언니의 메시지였다. 작년 겨울부터 우리는 올봄 함께 고사리를 따러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평일도 좋고, 쉬는 날이면 선거 날도 좋고 어때요?" 


"선거 날 좋아요." 


혜수 언니의 답변에 미자 언니가 말했다.  


"유진 씨네 얘기 들어보고 정해요. 일찍 만나야 해요." 


"언니, 일찍 만나야 하면 승마장에 강습하는 지 한 번 여쭤보고 말씀드릴게요. 어찌 되는지 모르겠네요. 안되면 오후에 합류할게요."


수목 오전에 강습이 있는 우리 승마장은 추석과 설날만 쉬고, 다른 날은 모두 연다던데 선거 날은 어찌 되는 지 모르겠다. 


"고사리는 오후엔 다 따가서 없어요. 다른 날로 잡든가 다시 얘기 해요. 우리는 화수목금 다 괜찮아요." 


미자 언니의 말에 승마장에 확인해 보니, 선거날에도 강습이 있다고 했다. 


"언니 저는 화요일에는 아침부터 괜찮고요. 선거 날은 승마장 강습 있대서요. 만나게 되면 12시쯤 합류할게요." 


나의 말에 미자 언니가 말했다. 


"우린 다 괜찮으니, 혜수랑 유진 씨네 시간 편한 대로 해요." 


"언니, 저희는 선거 날 만나면 도진 오빠도 함께 갈 수 있고요. 다른 날 만나면 저만 갈 수 있어요." 


결국 우리는 모든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선거 날 12시에 만나기로 했다. 


"12시면 점심시간인데, 점심 어떨까요? 옹기 밥상에서 같이 만나서 점심 먹고 움직일까요?"


옹기밥상은 도민들에게 인기 많은 맛집으로 옥돔구이, 오징어볶음, 흑돼지 수육, 돌솥밥을 한 상에 먹을 수 있고, 중요한 건 아주아주 맛있는 1인 1 옥돔구이가 제공되는 찐 맛집인데, 가격도 합리적이다. 


"언니, 예약해야 하면 제가 할까요?" 


유진 씨의 말에 미자 언니가 말했다. 


"예약 안 될 거예요. 기다려야 하면 살짝 기다리지, 뭐."


전에 옹기밥상에 갔다가 사장님께 여쭤보니, 예약은 11시 30분까지 올 수 있으신 분들만 미리 받고, 그 이후부터는 대기했다가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가격이 좋다 보니 관광객과 도민 모두에게 인기가 많아 항상 대기하는 편이다.




드디어 선거 날이 되어 나는 오전 6시에 일찌감치 투표하고, 승마장에 갔다가 옹기밥상으로 갔다. 미자 언니가 고사리는 아침부터 따야 한다고 했기에, 오늘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진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록 셔츠에 핑크 재킷에 나팔바지를 입었다. 봄이 맞이하여 새로 장만한 하얀색 스니커즈도 신었다. 그야말로 소중한 봄나들이 복장으로 옹기밥상에 갔다.


약속 시간은 12시 였는 데, 나는 10분 일찍 도착해서 사장님께 번호표를 받았다. 3번 테이블이 입장했다는 데 우리는 11번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좋은 날이기에 마당에 나와 나는 햇볕을 쬐면서 언니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마당에 설치된 테이블에는 고사리 복장을 한 할머니들도 계셨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할머니들께서는 벌써 고사리를 다 따시고, 식사하러 오셨나 보네?' 


나는 제주어가 좋아서 할머니들이 앉아 계신 의자 뒤쪽에 앉아 햇볕을 쬐기로 했다. 비록 할머니들의 대화는 하나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냥 듣고 있으니 정감 있고 좋았다. 


"용희, 왔네?"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이 도착했다. 


"우리는 오늘 산 타려고 등산화 신고 왔지." 


미자 언니의 말에 놀라서 내가 물었다. 


"언니, 오늘 고사리 따는 거예요?"


"응? 우리 오늘 따러 가기로 했잖아?" 


단톡방 대화에서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나? 난 왜 오늘 밥만 먹고 헤어진다고 생각했지? 


"언니들!" 


뒤 이어 유진씨네가 도착했다. 


"언니, 우리는 오늘 고사리 따러 가려고 가장 지저분해져도 되는 옷을 입고 왔어요." 


"용희는 오늘 고사리 따는 줄 몰랐대."


미자 언니의 말에 유진씨와 도진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새 신발에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왔지, 뭐예요?"


이윽고 혜수 언니가 도착했다. 역시 패셔니스타 혜수 언니는 하얀색 재킷을 입고 왔다. 언니 덕분에 핑크 재킷을 입은 나도 묘한 위로가 되는 듯했다. 작년 겨울부터 고사리 탐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던 나는 토시와 장화, 앞치마는 꼭 구비하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시기를 놓쳤고...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고사리를 딸 수 있게 무조건 신발 하나는 차 트렁크에 실어 놓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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