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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Apr 16. 2024

34. 본격적으로 고사리를 따보겠습니다.

이번 고사리 탐험은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함께 하기로 했던 이벤트였다. 


"우리 봄에는 고사리 따러 가자. 우리 동네에 고사리 많거든." 


미자 언니의 말에 내가 말했다. 


"좋아요. 복장은 오일장에 가서 단체로 맞추면 어때요?"


"좋지. 오일장에는 없는 게 없다고..."


김 반장님의 말에 웃으며 내가 다시 물었다. 


"장화랑 토시도 있으면 좋죠? 차라리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살까요?" 


"그거 입으면 아마도 동네 할머니들이 다 따라오실걸? 고사리 꾼인 줄 알고." 


그렇게 야심 차게 고사리 복장을 꿈꿨던 나였건만. 오늘처럼 이렇게 곱게 차려입고 살포시 고사리를 따게 될 줄이야... 얼마 전 지나가다 유심히 살펴본 세일 장화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거라도 사서 차에 실어 두었으면 오늘 참 좋았을 텐데... 사실 제주에 살면서 본격 고사리 사냥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어설픈 내 솜씨를 내 옷차림이 대변하는 듯도 싶었다. 



옹기밥상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본격 고사리 사냥에 나섰다. 


"언니, 주소는 어디로 가면 돼요?" 


식당을 나서며 내가 미자 언니에게 물었다. 


"주소는 잘 모르겠고, 우리 따라오면 돼. 오늘 우리는 혜수 차 타고 왔으니까 혜수 차를 따라와."


그렇게 혜수 언니가 앞장서고 내가 중간 유진 씨와 도진 씨 차가 마지막으로 해서 우리는 산길을 달렸다. 언니들 따라서는 길을 찾을 수 있겠지만, 혼자서는 다시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굽은 산길을 달려 길이 끊긴 산 한구석에 차를 댔다. 김 반장님이 내리셔서 수신호를 보내주셨다. 아마 이래서 매년 고사리 따는 장소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 헤매도 모두 다 잘 모르겠나 보다. 


"용희, 고사리 봉투 챙겨." 


"고사리 봉투요? 고사리 봉투가 뭐예요?"


"고사리 담을 봉투. 비닐봉지면 돼."  


내 차에 비닐봉지가 있었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차 트렁크를 열었다. 차 트렁크에는 원터치 자동 텐트부터 튜브, 귤 가위, 승마 조끼, 안전 헬멧, 챕스 등 놀이에 필요한 잡다하고 일관성 없는 장비들이 많았지만, 이만하면 있을 법도 한데 하필 고사리 딸 때 쓸만한 신발이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나는 트렁크 속에서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하얀 모자를 발견했다.


'아니, 이 상황에 모자라도 있는 게 어디야? 하마터면 이 땡볕에 모자 없이 고사리 딸 뻔했네.'


나는 하얗고 짱짱한 모자를 주신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주최 측에 감사하며, 스노클링 장비가 들어 있던 비닐봉지를 뒤집어 탁탁 털었다. 승마할 때 쓰는 공구용 장갑도 챙겼다. 처음 승마를 시작할 때 선생님께서 승마 장갑은 잃어버리기 쉬우니, 반 코팅 장갑을 사라고 하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 용희. 그래도 고사리 담아갈 비닐은 있네? 비닐봉지만 있으면 되지, 뭐."


김 반장님은 고사리 따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옆으로 맨 크로스 가방끈에 비닐봉지를 벌린 채로 달아놓으셨는데, 그 봉지를 탁탁 치며 이제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듯 말씀하셨다. 김 반장님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담에는 언제 어디서든 고사리 딸 수 있게 신발은 무조건 챙겨놓아야겠어요." 


그렇게 내 차를 만능 장비가 실린 차로 만들 결심을 하는 찰나, 혜수 언니가 말했다. 


"우리 여기서 단체 사진 찍고 갈까요?" 


혜수 언니의 말에 미자 언니는 뿌리던 계피로 만든 천연 모기 퇴치제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 이따가는 찍기 어려우니 다 같이 여기서 먼저 찍고 가자고."


그렇게 우리는 산속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가을에는 귤 따고, 봄에는 고사리 따고 이렇게 함께 하는 우리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고사리만 보면서 다니다 보면 서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잘 붙어 있어야 한다고!" 


김 반장님의 말에 우리는 한 줄로 서서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에는 찔레나무가 많아 가시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가시를 서로 잡아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아침에 한 차례 따 간 건가? 아님 아직 우리 동네는 고사리가 작은 건가? 잘 안 보이는데?" 


의욕이 불타오르는 미자 언니의 말에 김 반장님이 말했다. 


"고사리는 고사리 친구 시체 옆에 많다고. 여기 봐 여기 있잖아." 


고사리는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로 뿌리로 번식한다고 하는 데, 김 반장님 말씀대로 덤불 속 말라버린 작년에 자랐던 고사리 옆을 자세히 보니, 올해 자라난 새 고사리가 있었다. 


"그리고 고사리는 한 개가 있으면 그 옆을 잘 봐야 해. 친구랑 형제들이 많이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김 반장님의 가르침을 따라 고사리를 찾기 시작했다. 본격 고사리 따기가 처음인 나는 뭐가 덤불인지 뭐가 고사리인지 사실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김 반장님이 말씀하신 고사리 시체도 사실 풀과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아무거나 보이는 걸 따자.' 


그렇게 나는 고사리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을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고사리는 너무 밑에 까지 따면 맛없어서 못 먹고, 적당히 똑똑 끊어지는 데까지 따야 한다고. 그리고 좀 통통한 걸 따야 해. 다 펴버린 건 따면 안 되고, 안 핀 걸 따야 하고." 


고사리는 억세 지면 뜯지 말라고 하는 데, 잎이 피지 않고 끝부분이 동그랗게 말려 있는 어린 고사리는 괜찮다고 한다. 특히 4월의 이른 봄 제주 고사리는 독성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이 기간에 따는 고사리는 먹기에 괜찮다고 해서 인지, 4월은 산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본격 고사리 사냥에 나선다. 


나는 어떤 고사리가 좋은 고사리 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아서 마른 고사리, 통통한 고사리, 키 큰 고사리, 어린 고사리, 잘 자란 고사리 가릴 것 없이 아무 고사리나 보이는 대로 땄다. 그래도 혹시 고사리를 먹다가 죽을 까봐 잎이 핀 고사리는 따지 않았다. 


찔레나무 가시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고사리를 따는 데, 저 멀리 혜수 언니가 왼손에 고사리를 꽃다발처럼 꼭 쥐고 가지런히 고사리를 따고 있는 게 보였다. 혜수 언니처럼 저렇게 소중하게 따야 되는 걸까? 나는 작은 고사리, 큰 고사리, 통통한 고사리, 마른 고사리들이 두서없이 담겨있는 내 비닐봉지를 바라보며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고사리에 진심이네요?" 


"그럼요. 고사리 스파게티에 넣어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스파게티요?" 


"네. 그냥 삶고 물에 담가 놓았다가 스파게티 할 때 넣어 먹으면 맛있어요. 남은 건 냉동하고요." 


나는 고사리 요리를 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손질할 지도 까마득하여, 다 뜯고 나면 미자 언니에게 주고 갈 생각이었는데 혜수 언니가 말한 고사리 스파게티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용희, 많이 땄어?"


고사리 스파게티를 잠시 생각하고 있는 데 지나가던 김 반장님이 내게 말했다. 

"네, 많이 따긴 했는데요. 이게 잘 딴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딴 고사리를 보던 김 반장님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데? 잘 땄네?"


김 반장님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나는 용기가 좀 나는 듯했다. 


"올해는 고사리 장마가 오지 않네? 한 번 비 오고 나면 고사리가 쑥쑥 올라오는 데..."

미자 언니의 말에 혜수 언니가 답했다. 


"우리 비 온 뒤에 번개로 또 만나요. 비 오고 나면 통통한 고사리가 올라오잖아요."


옆에서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도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저 그때는 제대로 입고 올게요." 


잠시 언니들과 말하며 고사리를 뜯으려 손을 뻗는 순간 접어 올린 핑크 재킷 소매 사이로 질긴 건초가 파고들었다. 


"아야." 


웬만하면 잘 참는 나이지만 너무 아파서 자세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긁힌 상처가 꽤 컸다. 깜짝 놀라서 나는 재킷을 모두 내리고, 단추를 잠갔다. 이래서 할머니들께서 토시를 꼭 하고 고사리를 따시나 보다 싶었다. 


'무슨 일이든 역시 장비가 중요하단 말이야.' 


옆을 살펴보니, 김 반장님은 이미 간이 호미 같은 작은 도구를 들고 계시는 게 보였다.


"김 반장님, 그 건 뭐 할 때 쓰는 거예요?"


"응. 이건 이렇게 덤불을 좀 제거할 때 쓰는 거라고." 


역시 인간은 도구를 써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잠시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사리는 왠지 덤불 사이에 더 많은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고사리 지옥인가요? 고사리가 계속 보이니까 따는 걸 멈출 수 없네요." 

본격 고사리를 따기 시작하니 고사리만 보였고 몸은 로봇처럼 고사리를 따고 봉지에 넣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내 봉지는 어느새 고사리로 반 정도가 차버렸다. 대체 제주에 고사리가 얼마나 많은 걸까? 같은 초보가 이렇게 짧은 작업으로 이렇게 많은 고사리를 있고, 산에 오는 거의 모든 사람이 봄에는 고사리를 따고 있는데도 여름 들판에는 고사리가 가득하게 되는 게 정말 신기하다. 


'고사리야, 나랑 같이 갈까? 어차피 너 여름에 활짝 펴도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도 못하는 데...' 


나는 어차피 활짝 펴도 환영받지 못하는 여름 고사리를 생각하며 지금 모든 사람들이 반가워하는 봄 고사리를 좀 더 찾기로 했다. 뒤 쪽에서 미자 언니의 말이 들렸다.  


"고사리가 얼만 줄 알아? 농협에서 수매하는 가격을 살펴봤는데 삶은 고사리는 1kg 당 7천 원이고, 말린 고사리는 1kg 당 8만 원이라고." 


곧이어 김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마대에 고사리 넣고 이고 다니시는 거라고. 하루 제대로 따면 10만 원도 버신다더라고." 


"그 정도 따시면 할머니 10만 원은 꼭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나는 머리에 고사리 자루를 이고 다니는 씩씩한 제주 할머니들을 생각하면서 답했다. 


"반장님, 제 고사리 이 정도 양이면 얼마예요?" 


내가 벌린 봉투를 살펴보시던 김 반장님은 말씀하셨다. 


"한 1kg는 될 것 같은데? 7천 원." 


"우와. 그렇게나 많이 돼요?" 


잠시 1~2시간 딴 건데 7천 원이나 되다니... 나는 뿌듯해하며 김 반장님을 바라보았다. 


"고사리 너무 많이 따면 뒤처리가 어려워. 삶고 물에 담가놓았다가 말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냥 말리면 곰팡이도 많이 피고 그래서 건조기로 말려야 해. 그리고 지금은 양이 많아 보여도 고사리는 말리면 1/10로 줄어. 고사리 100kg 따면 말린 고사리가 10kg 나온다고."


"우리 집은 베란다가 넓어서 그냥 말려도 잘 마르더라고요." 


옆을 지나가던 유진 씨가 김 반장님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 집은 잘 안되던데?"


우리 집도 왠지 말리는 건 안 될듯하다. 나는 어차피 미자 언니네 고사리를 드리고 올 예정이었으므로 마음을 비우고 보이는 대로 고사리를 따기로 했다. 


"이제 그만 가자. 이 정도면 많이 땄잖아? 힘들기도 하고." 


그만 가자는 김 반장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산을 내려오는 길은 고사리가 더 많이 보였다. 


"반장님. 가자고 하시니까 고사리가 더 많이 보여요. 이것 참 이상해요. 보석을 찾은 것처럼 따는 걸 멈출 수가 없네요? 이러다가 오늘 밤 저 고사리 꿈꿀 것 같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보이는 고사리를 계속 담았다. 역시 이렇게 보석을 찾는 듯한 즐거움이 4월 제주에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 나와 고사리를 따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여기 말고 다른 데도 가보자." 


미자 언니의 말에 김 반장님이 말했다. 


"또 가자고? 이제 그만 따자." 


"아니야, 커피 한 잔 마시고 저쪽 위쪽에도 가보자. 거기가 더 많을지도 몰라." 


그렇게 우리는 미자 언니의 말을 따라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에너지를 충전한 뒤 2차로 고사리를 더 따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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