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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Jun 12. 2024

38. 말 타러 몽골 가는 꿈

"용희 씨, 자 커피."


오늘도 열정적으로 강습을 마치고, 커피 마시러 사무실로 들어서는 데 미정 선생님께서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시곤 커피를 건넸다.


"감사해요. 쌤."


"어때요? 용희 씨. 요즘 실력 많이 는 것 같죠? 여기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엄청 늘었지."


"네. 저 처음하고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었죠."


외승하러 이곳 승마장에 처음 와서 나랑 잘 맞는 말 쥬디를 만나고, 예민하지만 순하고 착한 쥬디와 함께 안정감을 느끼며 정착한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답했다.  


"용희 씨, 잘하고 있어."


그렇게 벤치에 앉아 미정 선생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멀리서 희숙 선생님과 아침에 같이 승마하는 회원분 한 분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같이 커피 한잔하세요."


미정 선생님의 초대로 그렇게 우리 넷은 어승생악이 잘 보이는 승마장 사무실 앞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이곳 승마장은 뷰가 좋아서 벤치에 앉아 있으면 어승생악과 99곡이 보이고, 그 옆으로 백록담이 보인다. 그 앞에서 한적하게 마시는 커피라니 명상을 따로 안 해도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말 오래 타셨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미정 선생님 옆에 앉으신 회원분께 말을 걸었다.


"아마 한 14년 탔을걸요?"


그분은 강습 때마다 오시지는 않고, 시간 되실 때마다 가끔 나오셔서 말을 타시는 데 우리 승마장 개업할 때부터 초창기 멤버셨다고 했다.


"요즘 용희 씨가 두려움을 탈피하고 즐거움을 알게 돼서 요즘은 많이 물어본다니까요."


미정 선생님이 회원분께 말씀하시곤 내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용희 씨, 그렇게 선배들한테 자꾸 물어봐요. 그래야 많이 배우지."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회원분께 말했다.


"저는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처음 1년 정도는 '왜 안 되지? 안 되지?' 하며 보내다가 요즘 조금 알 것도 같고요.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겠기도 하고요."


애매한 말을 건네는 내게 회원분이 물었다.


"승마는 원래 오래 걸려요. 어떤 말을 타도 자신이 있으려면 한 500번은 타봐야 할 걸요?"


"500번이면, 한 5년 정도 타야 하는 건가요?"


"열심히 타면 그 정도면 되겠죠."


TV에서 보던 승마는 기수가 워낙 잘 타서인지 자전거 타듯이 타는 법을 한 번 배우면 쉬울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막상 경험하는 승마는 산 넘어 산이다.


"구보 해봤어요?"


회원분이 내게 물었다.


"요즘에 외승나가서, 두 번 정도 해봤어요."


"구보 잘 돼요?"


"잘은 모르겠고, 선생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내 대답을 듣고 미정 선생님이 말씀했다.


"용희 씨, 나중에 말 등에 앉아서 타는 좌속보만 잘 되면 구보도 더 잘 될 거예요. 지금은 무섭다고 생각될 순 있는데 골반만 자기 자리에 잘 앉혀놓으면 절대 안 떨어져."


우리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회원분이 말씀하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단축구보 해봐요. 나는 구보는 그냥 앉아만 있는 듯 해서 재미없고, 단축구보가 재밌던데."


"단축구보가 뭐예요?"


구보에는 '단축구보', '보통구보', '신장()구보'의 3종이 있는데, 보통구보는 1분에 320m를 가는 속도로 달리는 것이고, 신장 구보는 경주할 때 선수들이 타는 것으로 1분에 420m 속도로 달린다고 한다. 여기서 단축구보란 보통구보 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으로 흔히 말하는 말의 걸음걸이인 '따가닥 따가닥'의 정확히 3박자를 맞춰서 타는 것이라고 했다.   


"단축구보는 리듬에 맞춰서 탈 수 있어서 확실히 말 타는 느낌이 나거든요."


나는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구보할 때 무섭지 않고 다리 길이가 달라지지 않길 바라지만 고수들의 세계는 뭔가 다른 게 있나 보다 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 놓기로 하고 이것저것 여쭤보기로 했다.


"쌤, 혹시 유튜브 같은 데 보면요, 안장 빼고 맨몸으로 구보하는 동영상 많이 있잖아요? 계속 타면 그것도 가능해요?"


나는 얼마 전 해변에서 어떤 여인이 안장 빼고, 고삐 빼고 맨몸으로 말 타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 데 너무 멋져서 나도 오래 타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거는 일단 말이 준비되어야 해요. 자기 말이어서 상당 기간 훈련이 되어있어야 하고요. 아마 그분도 우리 승마장 와서 안장 빼고 타라고 하면 안 될 거예요."


"그래요?"


"용희 씨, 그럴 거면 아예 유니콘 타고 99곡을 날아서 우리 승마장에 도착하는 꿈을 꾸는 건 어때?"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진짜 마음은 그 정도를 꿈꾼다니까요. 몸이 안 돼서 그렇지."


"그래도 꿈을 꾼다는 건 좋은 거지. 자신만의 비전을 갖는다는 거니까."


"진짜 날듯이 타면 얼마나 멋질까요? 우리는 해변에는 안 가요? 아니면 성지순례 가듯이 포스터 붙이고 원정 승마 갈 사람들 모집해서 단체로 몽골로 가면 어때요?"


이런저런 말을 꺼내는 내게 옆에 계시던 희숙 선생님이 말했다.


"해변에 가는 건 이미 다 해봤죠. 전에는 외승을 바다로도 갔거든요. 다 같이 해변에서 릴레이 경주도 하고, 재밌었는데..."


"사람들 막 일부러 물어 빠지고 떨어지고 아주 재밌었죠. 모래라서 다치지도 않으니까 경기가 과열되가지고. 그러다 쉬는 시간에 바닷가에 말뚝 박아서 말을 놓고 잠깐 어디 다녀왔는데 말들이 다 없어져서 찾으러 다니기도 했었다니까요. 생각해 보니 재밌었던 기억도 많네."


미정 선생님의 말씀에 선생님들은 잠시 추억에 젖으시는 눈치셨다.


"그러고 보니, 전 아직도 몽골에 못 가봤네요."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전 10년 전에 한 번 가봤는데, 거기는 종대로 말을 달리는 게 아니라 횡대로 뛰더라고요."


회원분이 말씀하셨다.


"저기, 횡대로 뛴다는 말씀은..."


놀란 내가 묻자, 친절한 회원분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거기는 벌판이 넓잖아요. 그러니까 전체가 가로로 한 줄로 쫙 서서 한 번에 달려가는 거죠."


보통 안전상의 이유로 종대로 서서 첫 번째 말의 리드에 맞춰 전체가 달리는 데 몽골에서는 영화에서 보는 전쟁의 한 장면처럼 다 같이 횡대로 서서 달리나 보다.  


"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요. 그러다 낙오하면 그다음 스폿 까지는 무조건 알아서 가야 해."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놀란 내가 되물었다.


"말이 가요."


모르는 길을 말만 믿고 가야 한다고? 정말 눈앞이 깜깜해지는 이야기이다.

 

"몽골 사람들은 시력이 좋잖아요. 5km까지 보인다고 하니까. 보고 있다가 너무 뒤처지면 지름길로 해서 찾으러 와주는 거지."


"그래도 찾으러 와주신다니, 천만다행이네요. 제가 어디선가 들었는데, 몽골에 가면 5시간 동안 달린다면서요?"


"용희 씨, 말이 5시간 달리면 너무 힘들어서 안 돼요."


옆에 있던 희숙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요?"


"내가 갔을 땐 하루에 한 10km씩 달렸는데... 그건 초보자에겐 너무 힘들고, 일행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집하면 힘들면 일행이랑 잘 이야기해서 적절히 조절해서 달리면 돼요. 근데 토끼 굴은 조심해야 돼. 중간중간 수풀에 가려서 안 보이거든."


"용희 씨, 토끼 굴 밟으면 말 넘어가."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 토끼 굴이 있다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말이 알아서 다 피하긴 하지."


승마는 완전 말만 믿고 가는 운동인 건가? 말7 기3 이라던 덜커덩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혹시 몽골에 가면 말 배정은 정말 잘 받아야겠다.


"용희 씨, 거기서 다치면 헬기도 없고 그러면 다친 채로 말 타야 해. 어쨌든 치료받으려면..."


미정 선생님 말씀에 내가 답했다.


"다쳤는데 어떻게 말을 계속 타요? 아니, 그 정도면 원정 승마 아니고, 전지훈련 아닌가요? 기병대 전지훈련."


승마는 정말 신세계인가? 나는 지금 어떤 세계로 발을 들어 놓은 걸까?


"어쨌든 거기 가려면 준비 많이 해서 가야 해. 좌속보 잘해야 하고, 서서도 탈 수 있어야 하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거기 가면 게르에서 자요? 먹을 거는 양젖 먹고 며칠 동안 말만 달리는 건 아니죠?"


"게르에서 자는 건 맞지만, 이제는 한국 음식도 많다던데..."


 왠지 몽골에 가서 게르에서 자면 하늘에서 별똥별도 떨어질 같고, 말과 우정도 나눌 있을 것만 같다. 토끼 굴이랑 길을 잃는 건 무섭긴 하지만 몽골 음식을 먹고 게르에서 자면서 10km 타는 색다른 경험이 궁금하긴 하다. 과연 많은 내가 그런 경험을 수 있을까?


"용희 씨, 벌써 마음은 몽골에 가 있구먼."


"기왕 말을 타고 있으니, 언젠가 한 번 가봐도 좋겠죠."


"열심히 타다 보면 그런 날도 오겠지, 뭐."


그렇게 우리는 어승생악이 보이는 승마장 한편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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