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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May 28. 2024

37. 고사리 탐험대 번외 편: 고사리 삶기

"용아, 그거 뭔데?"


고사리를 들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데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버지가 물으셨다.


"고사리인데요. 방금 숲에서 따왔어요."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가 들어갈 만큼 큰 비닐봉지를 벌려 그 속에 든 고사리를 아버지께 보여드리며 내가 말했다.


"으아."


고사리를 살펴보시던 아버지는 고사리 양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셨다.


"처음 딴 건 같이 따러 갔던 언니네 드리고, 이건 두 번째 갔을 때 딴 건데... 이게 오늘 제가 딴 양에 반 정도 돼요. 저는 고사리 따러 처음 간 건데도 엄청 많이 땄어요."


"우와. 제주도는 확실히 고사리가 많나 보네."


"네. 들판에 삐쭉 나와 있어서 고사리 따기도 쉽고, 양도 많아요. 요즘에 보면 길가 곳곳에 고사리 따는 사람이 가득한데 여름 되면 들판에 활짝 핀 고사리들이 가득하거든요. 제주에 고사리가 얼마나 많은지, 그 많은 사람들이 따도 따도 들판을 다 덮을 만큼 가득하다고요."


나는 신나서 아버지께 고사리 얘기를 했다.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제주엔 확실히 고사리가 많긴 많나 보다."


"네. 고사리 꺾을 때 똑똑 소리가 나게 부러지는 데 그게 좀 재밌거든요. 근데 아빠 고사리 좋아해요?"


"아니."


"음... 그, 그렇죠."


아빠가 나물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는 걸 알긴 했지만 고사리도 안 좋아하신다는 건 몰랐네. 사실 육지에서는 고사리를 많이 먹진 않긴 하지. 아빠가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하면 이 많은 고사리를 내가 다 먹어야 하는데... 이 많은 걸 혼자 어찌 먹을지?


고민하며 나는 고사리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는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근데 그거 삶을 줄은 아니?"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하는지 제가 다 알아 왔다니까요."


큰 소리는 쳤지만 사실 고사리 삶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시작할지 좀 막막하긴 하다.  


"아빠가 뭐 좀 도와줄까?"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와서 고사리를 씻기 시작하셨다. 아버지께서 고사리를 깨끗하게 씻는 사이 나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아까 김 반장님께 배운 고사리 삶는 법을 내가 잘 기억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음... 그러니까 물을 끓인 다음에 고사리를 넣고, 10분 데치고 꺼내서 물에 하루 정도 담가 놓고 몇 시간마다 중간에 물을 갈아주란 말이지?'


나는 시금치는 많이 데쳐봐서 고사리도 뭐 그렇게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가장 큰 냄비를 꺼내서 물을 팔팔 끓이고 아버지가 씻어주신 고사리를 넣고 10분 타이머를 설정했다.


"어떻게 하는 거래?"


옆에 있던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이렇게 10분 데치고요. 하루 동안 담가 놓고 중간에 물을 갈아주면 독성이 빠진대요."


"아 그렇구나. 이따가 물에 담가 놓으면 아빠도 지나가다 생각나면 중간에 깨끗한 물로 갈아줄게."


고사리가 끓는 물에 데쳐지는 사이 나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면서 절친 자리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오야. 왜?"


"언니, 혹시 고사리 드실래요?"


"웬 고사리?"


"제가 산에 가서 고사리 따왔거든요."


"아휴, 우리 강생이 햇볕 뜨거운데 또 어디를 그렇게 빨빨거리고 다녀왔냐? 근데 그건 먹을 수 있는 고사리는 맞지?"


역시 모자리나 언니는 모든 면에서 신중하다. 


"저도 고사리는 처음 따봤는데, 말 타는 언니들이랑 같이 땄으니까 먹을 수 있는 건 맞을 거예요. 많이 따서 반은 같이 간 언니네 드리고 반만 가져왔는데도 엄청 많아요. 다 못 먹을 것 같아요."


"고사리는 먹다 보면 금방 먹어. 제주 고사리는 약으로 쓰이니까 나중에 부모님도 좀 챙겨드리고 하면 되지."


"근데 양이 너무 많아서요. 아빠 계시는데 고사리 많이 안 드신다고 하고 저 혼자는 다 먹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 근데 거기 뱀은 안 나왔어?"


"다행히 뱀은 안 나왔죠."


제주 토박이인 모자리나 언니는 뱀이 싫어서 산에는 잘 안 가고, 언니가 자주 가는 고사리 명소가 있는데 거기는 백 고사리가 가득하다고 했다.


"백 고사리요?"


"응. 백 고사리."


"고사리도 종류가 많고 다 다른가 봐요."


"나도 잘은 모르겠는 데 우리 아버지께 갖다 드리니까 '백고사리 따왔네?' 하시 던걸? 어쩐지 다른 고사리보다 거기 고사리가 더 맛있더라."


역시 미식가인 모자리나 언니는 음식 맛을 잘 안다.


"언니, 그럼 일반 고사리는 안드세요?"


나는 조심스레 언니에게 물었다.


"먹지. 왜 안 먹어? 고사리는 따기 힘들어서 못 먹는 거지."


"언니, 그러면 지금 고사리 데치고 있는데요. 물에 담갔다가 내일 이 시간 쯤에 갖다 드릴게요."


"오야. 고마워!"


그렇게 나는 고사리를 데치고 찬물에 담가 여러 번 헹군 뒤 다음 날 모자리나 언니에게 가져다주었다.


잠시 후 걸려 온 언니의 전화.


"야이, 그래도 고사리 잘 땄다이. 고사리 통통하니 먹을 만한데?"


"언니, 그래 봬도 그 고사리가 할머니들이 가시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숲에서 따온 거라고요. 혼자 찾아가라면 못찾는..."


나는 괜스레 언니에게 으스대며 말했다.


"아니, 근데 들춰보니 갓 고개를 든 새싹도 있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고민스러웠던 그 부분.


"언니, 어차피 여름 들판에 한가득 피면 아무도 반기지 않을 텐데, 그 아이 봄 나물이 되는 낫지 않나요?"


"음... 그건 고사리의 의견도 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니?"


봄 고사리는 약이라던데 낚시할 땐 작은 물고기는 놔주는 게 예의라던데 고사리는 뭐가 맞을까? 나는 내가 고사리에게 너무 잔인했던 건 아닌지 하고 고사리를 다시 따러가는 그 날까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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