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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May 24. 2024

36. 고사리 탐험대: 최후의 원정

"아니, 이제 그만 따지, 뭘 또 가?"


카페를 나오는데 뒤에서 미자 언니에게 투정 부리시는 김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미자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아까 거기는 고사리가 너무 작았잖아. 지난번에 할머니들이 따시던 숲으로 가면 아까보다 고사리가 더 많을 거야."


미자 언니네 부부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고사리 사냥을 나서는 할머니 행렬을 발견하고 고사리가 많은 곳을 알아냈다고 했고 2차 원정은 통통한 고사리가 많을 것 같은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자, 그러면 이제 다들 타세요."


혜수 언니의 말에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혜수 언니의 차가 선두에 서고, 내가 두 번째, 그리고 유진 씨 도진 씨네가 가장 마지막으로 달렸다. 우리는 미자 언니네 집 앞을 지나 아까 갔던 산의 반대쪽으로 차를 몰았는 데, 혜수 언니를 무심코 따라가다 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고 있었고, 언니들 빼고 나 혼자 찾아오려면 절대 못 찾을 것 같은 그런 곳을 한참 달려서 우리는 산담이 둘린 무덤을 지나 드디어 길 끝에 멈춰 섰다.


'여기 나중에 차 돌려서 나갈 수 있는 건가?'


전체적으로 길이 좁아 약간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언니들이랑 김 반장님, 유진 씨 도진 씨가 있으니 차가 좀 어디에 빠져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하며 부랴부랴 비닐봉지와 장갑을 챙겨서 차에서 내렸다.


"이쪽 길로 들어가면 돼."


차에서 내리자, 미자 언니가 내게 말했다. 언니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고사리 탐험대의 최후 원정 장소다운 진정한 야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말했지? 통통한 고사리는 이런 데 있다고."


씩씩하게 안내하는 미자 언니를 따라 우리는 숲으로 들어갔다. 너른 들판이 펼쳐진 야산으로 들어가니 찔레 가시와 덤불들이 군데군데 있고 얼마 전 자연 발아한 듯한 이름 모를 작은 침엽수 묘목이 돋아나 있는 게 보였다. 


'강인한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땅인데?' 


생생한 봄의 기운을 느끼며 우리는 숲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야트막한 산은 생각보다 수풀이 우거져 있지 않아서 이제 막 돋아나서 둥글게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서 있는 고사리 머리가 잘 보였다.


"오, 여기가 아까 거기보다 고사리가 잘 보여요."

 

"거봐. 거봐. 내가 여기가 더 낫댔지?"

 

신난 미자 언니의 말에 무뚝뚝하게 김 반장님이 답했다.  


"너무 많이 따가면 집에 가서 일거리가 늘어나니까 그렇지. 따가서 손질하는 게 더 일이야."


"고사리 손질은 어떻게 해요?"


미자 언니랑 김 반장님의 대화를 듣다가 불현듯 내가 물었다. 김 반장님은 나를 힐끗 보시더니 고사리 전문가다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고사리는 물에 하루 담갔다가 끓는 물에 10분 데쳐서 다시 물에 하루 담가놓는 게 좋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냥 물에 10분 데쳐서 물에 하루 담갔더니 괜찮던데..."


"저는 20분 데쳤는데..." 


옆에 있던 도진 씨가 말했다. 


"20분 데치면 너무 물러지지 않아?" 


김 반장님이 도진 씨에게 물었다. 


"워낙 양이 많아서인지 전 괜찮던데요? 그리고 고사리가 독이 있다고 하니까 왠지 많이 끓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 저도 여기서 딴 거는 집에 가서 한 번 손질해서 먹어볼까 봐요." 


2차 원정에서 딴 고사리도 김 반장님께 드리면 양이 너무 많아져서 반장님이 손질하시기 너무 부담스러우실 것 같고, 보약이라는 제주의 봄 고사리 맛도 자못 궁금하여 한마디 했다. 내 말에 멀리서 고사리를 뜯고 있던 혜수 언니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용희 씨, 꼭 먹어봐요. 봄 고사리는 정말 맛있다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고사리를 채취해 나갔다. 앞에서 김 반장님이 따시는 걸 뒤따라 가면서 따는 데도 남아 있는 고사리는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느새 유진 씨가 옆에 다가와 고사리를 따며 내게 물었다. 


"언니,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앞에 언니들이 이미 다 따고 갔는데도 여기저기에 아직도 고사리가 많이 남아 있잖아요? 자기 복은 자기가 찾는다더니, 고사리 따는 게 꼭 그렇지 않아요?" 


내 맘이 바로 그 맘이다. 어떻게 앞에서 잘 따는 사람들이 다 따 갔는데도 내가 딸 고사리가 남아 있는 건지... 눈앞에 펼쳐진 고사리가 너무도 신기해서 혹시 내가 따는 게 먹을 수 있는 고사리가 맞나? 앞에 분들이 왜 이 고사리를 따가지 않은 걸까? 내 눈앞에 보이는 좋은 고사리들이 진짜 좋은 것인지, 잠시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마는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딸 수 있는 고사리는 곳곳에 많았고, 보물찾기처럼 내가 잘 찾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요. 자기 복은 자기가 찾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유진 씨와 비슷하게 느꼈어요." 


잠시 유진 씨와 공감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김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굽혔다 폈다, 허리 아파 죽겠네? 고사리 따는 건 정말 노동이라고." 


참 이상하게도 좋은 고사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몸이 자동 반사하는 관계로 동작은 멈출 수가 없다.


"언니,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몸은 아파 죽겠는데, 계속 따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요. 저도 지금 유진 씨랑 대화를 하면서도 눈으로는 자꾸만 자꾸만 고사리만 찾고 손으로는 계속 따고 있어요."    


"맞아요, 언니. 그렇게 습관이 정말 무서운 거라고요." 


 "아니, 올해는 아직 고사리 장마가 안 온 건가요? 원래 비 한번 오고 나면 고사리가 쑥쑥 자라잖아요. 아직 내 눈에는 작은 것 같은데... 우리 비 온 뒤 다음 날에 번개로 한 번 더 만나서 따요." 


혜수 언니도 눈으로는 고사리를 계속 쫓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바로 그때 눈앞에 갓 피어난 작은 새싹 고사리가 보였다. 


'아... 얘를 따야 해? 말아야 해?' 


어린 고사리를 보고 잠시 고뇌가 밀려와 고민하는 사이 아무도 관심이 없는 여름 숲에 드넓게 펼쳐진 여름 고사리밭이 떠올랐다. 


'그래, 고사리야. 이렇게 있다가 여름에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고사리로 피느니 너는 나와 함께 가자.' 


잠시 생각하며 고사리를 꺾었다. 우리는 한 시간여 동안 산기슭을 타고 고사리를 채집했고 꽤 많은 양의 고사리를 땄다. 


"자, 이제 다들 슬슬 내려가자고." 


 김 반장님의 말에 우리는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돌아가자는 말을 들으니, 고사리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언니,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내려가자고 하니까 고사리가 더 잘 보이는 거요?" 


유진 씨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진짜 신기해요. 가야 할 시간이 되니 고사리가 더 많고 더 잘 보이고. 따는 것도 멈출 수가 없네요." 


산 위에서 내려오면서 고사리를 내려다보아서인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삐죽 올라온 고사리들이 더 많이 보였고, 고사리는 또 하나가 보이면 그 옆에 친구들이 주르륵 있어서 고사리를 채집하는 손이 점점 빨라지는 듯했다. 그렇게 유진 씨와 나는 정신없이 고사리를 따고 있었는데, 멀리서 도진 씨가 유진 씨에게 소리쳤다. 


"여보, 이제 가야 해. 빨리 내려와." 


 도진 씨의 말에 우리는 고사리 채집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사실 하산 하면서도 끝까지 고사리가 보이면 자꾸만 자꾸만 따게 되었다. 


"언니, 고사리 따기 재밌지 않아요? 똑똑 따는 손맛이 아주 좋다고요.


"네. 재밌었어요. 이것도 자꾸 하다 보니 멈출 수가 없네요."


나는 고사리를 따는 게 너무 재밌어서 집에서 고사리 손질을 할 분량이 계속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하고, 자꾸만 자꾸만 고사리를 땄다. 이윽고 우리는 산 입구에 차를 주차해 놓은 곳에 다시 모였다.  


"자자, 다들 여기다 자기가 고사리를 내려놔 봐. 우리 기념사진 찍자." 


미자 언니의 말에 우리는 각자의 고사리 봉지를 내려놓았다. 


"이야. 이렇게 많아? 다들 많이 땄네." 


김 반장님이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우리가 모은 양은 장터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많은 양이었다. 유진 씨와 나는 핸드폰을 들고 고사리 봉지와 우리의 손 등을 사진 찍었다. 우리의 추억이 한 장 더 늘어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인사하고 한 명씩 조심히 차를 돌려 산길을 빠져나왔다. 혜수 언니는 가장 위쪽에서 후진으로, 나는 중간에서, 도진 씨는 아래쪽에서 살며시 돌렸는데 서로 대화하지 않아도 알아서 배려하는 모습이 든든하기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내려오는 길가에 잔뜩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내가 지금 행복한 봄, 제주에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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