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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Jul 08. 2024

45. 얼떨결에 잘 타버린 두성이

그렇게 나는 아버지께 특훈을 받고 승마 수업으로 갔다.


'오늘은 잘 될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제식훈련이 효과가 있을지 벌써 두근두근한다.


"용희 씨는 오늘 두성이 탈게요."


지난번 두성이를 타고 로데오를 한 뒤로, 두성이는 참 오랜만에 만났다. 아마 오늘 내게 두성이를 배정해 주신 미정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좌골로 말의 걸음걸이를 느끼는 방법을 알려주실 것 같고, 걸음걸이가 성큼성큼 해서 반동이 큰 두성이랑 함께하면 골반을 안장에 잘 붙이지 못하는 나라도 오늘 말의 걸음걸이를 잘 느낄 수 있게 될 것만 같다.


"두성아, 가자."


역시나 두성이는 이제 일할 시간이라는 건 잘 알지만 내 말이 안 들리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두성이는 서열에 아주 민감한데, 내가 가면 먹이통에서 머리를 절대 빼지 않고, 미정 선생님이 오시면 차렷 하고, 사장님이 오시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눈을 밑으로 깔면서 지시를 기다리는 듯 다소곳이 있다.


사장님은 천사 같고 젠틀하신 분인데도 두성이는 사장님이란 것을 어떻게 아는 걸까? 두성이를 보고 있으면 흡사 정장을 잘 차려입은 회사원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승마장에서 말을 직급으로 나누어 본다면 장기 근속하면서 믿을만하고 성실하게 전체 매출 증진에 힘쓰는 스타가 전무, 그리고 스타와 함께 영업계의 삼총사로 버텨주는 쥬디와 두성이가 상무쯤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회사 생활 잘하고 있는 두성이를 무섭게 대하고 싶진 않아서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마장으로 향했다.


"두성아, 너 잘 지냈지?"


나는 괜스레 두성이의 볼을 쓰담쓰담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두성이도 내가 싫지 않은 눈치다. 나는 등자 길이를 맞추고, 말 등에 올랐다.


"두성아, 잘 부탁해."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숙여서 두성이와 눈을 맞췄다. 두성이는 귀를 쫑긋 거리다가 곁눈질로 나를 힐끗 보았다.


"자, 그럼 수업 시작할게요."


우리는 열을 맞추고 평보로 한 바퀴 돌아준 뒤 좌경속보를 했다. 사람들은 두성이가 반동이 커서 탈 때 많이 움직여야 해서 힘들다고 하던데, 나는 특별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오늘은 왼쪽으로 돌 때는 두성이 오른 다리가 나갈 때 박자를 맞추어 일어서는 것만 신경 쓰기로 했다.


"용희 씨는 제 앞으로 와서 제가 '둘둘 하나'하면 다리를 바꾸어서 두성이 왼다리가 나갈 때 일어나면서 달려보세요."


'드디어 왔구나. 운명의 시간이...'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생님의 신호를 기다렸다.


"자, 용희 씨. 이제 반동 바꿔보세요. 둘둘 하나."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뭔가 했지만, 성공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성이가 계속 달려서 선생님이 서 계신 곳 반대편 직선 트랙으로 들어갔을 때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용희 씨, 지금 둘둘 하나. 반동 바꿔요."


나는 아버지와 함께 훈련할 때 배운 대로 다리를 제자리에서 두 번 뛰고 두성이 왼발이 나갈 때 일어서며 말을 탔다.


"선생님, 저 된 거예요?"


한다고 하긴 했는 데, 자세가 넘  편한걸 보니 불길하다.


"안 됐어. 용희 씨. 이쪽으로 왔을 때 다시 바꿔봐요."

 

미정 쌤은 어떻게 반대편 트랙에서 내가 다리를 어떻게 하고 달리는 지를 아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연습했는 데도 이게 왜 안 되는 걸까?


어느새 두성이가 선생님 가까이 접근했다.


"용희 씨, 반동 바꿔봐요. 둘둘 하나. 왼다리 나갈 때 일어서요."


나는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최대한 해보았다. 된 건 지 아닌 지 가물거렸지만 그냥 어쩌겠나 싶어서 두성이의 걸음걸이를 느끼려 엉덩뼈를 안장에 최대한 붙이고 좌골도 턱 내려놓은 뒤 몸에 힘을 최대한 뺐다. 두성이와 나의 다리가 같이 움직이는지 서로의 다리 움직임을 살피면서...


"자, 이제 방향을 바꿔서 우경속보 할게요. 트랙을 오른 방향으로 돌겠습니다."


'아... 진짜 때가 왔다. 우경속보! 땅에서 연습한 만큼 오늘은 잘 될 수 있으려나?'


속보 할 때는 트랙 바깥쪽에 있는 다리가 나갈 때 내가 일어서야 한다니까 이번에 나는 두성이를 트랙 오른쪽으로 돌게 하면서 두성이 왼다리가 나갈 때 일어서면 된다. 아까 왼쪽으로 트랙을 돌면서 왼다리가 나갈 때 일어서는 연습을 했으니, 이번에는 잘 되지 않을까?


긴장되는 마음을 누르고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일어섰지만 역시나 안 됐다. 그때 무언가를 발견하신 듯 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용희 씨, 나 알았다! 왜 안 되는지."


선생님이 기뻐하시니까 나도 덩달아 해결책을 찾은 듯 귀가 쫑긋해졌다.


"쌤, 어떻게 하면 돼요?"


"둘둘 할 때는 말 등에 턱 하니 앉아서 두 박자를 쉬어야 되는데, 용희 씨가 앉아서 쉴 때도 골반을 튕겨서 계속 같은 발이 나갈 때 일어서는 거야."


"아..."


그 뒤로 나는 내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말의 걸음걸이를 느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한 번에 잘 되진 않았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평소에도 오른발로 주로 걷기에 왼발이 나가는 게 완전히 편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미정 선생님이 내게 오셔서 말씀하셨다.


"용희 씨, 괜찮아. 이거 원래 고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많아. 좌절하지 말아요. 하다 보면 다 돼. 그래도 오늘 놀라운 게 뭔지 알아? 다리에만 신경 쓰면서 타다 보니 용희 씨도 모르게 힘을 다 빼고 두성이 잘 탄 거."


"네?"


"그러니까 다리만 보다 보니 몸에 힘이 저절로 빠져서 용희 씨도 모르게 잘 타버린 거지."


이래서 승마는 오래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고 하나보다. 오늘 타깃 했던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지만 얻은 게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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