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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Jul 17. 2024

46. 날개 달린 켄타우로스가 되어볼까요?

주중에 나가지 못하게 되는 날은 가끔 주말반에 출석하기도 하는데, 주말에는 직장인들과 어린이들이 많이 와서 주중반보다는 사람이 많고, 오전 시간은 어린이들이 꽤 많은 편이다. 주말반 어린이들 틈에 끼어 승마를 하게 되면 살짝 뻘쭘하긴 하지만, 승마는 어린이라고 못 타지도 어른이라고 잘 타지도 않기에 그냥 자기 페이스에 맞게 재밌게 타면 된다. 


어린이들과 승마할 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이 반에서는 내가 좀 잘 타는 편이었는지, 평소라면 내게 잘 배정되지 않을 하프링거 말들이 배정된다는 것이다.


하프링거는 오스트리아가 고향인 말로, 체고는 140~150cm 정도 되는데 한라마와 크기가 비슷하며 털색은 황토색, 금색, 초콜릿색 등이 있고 갈기가 풍성하고 길어서 특별하고 멋져 보인다.


성격은 온순한 편이라 유럽에서는 유소년 승용마로 활용된다고 하던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라마 보단 고집이 더 센 편이라 말에 따라 계속 집중해서 기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볼케르가 그렇다. 볼케르는 체고도 쥬디보다 큰데, 힘도 무지 세서 컨트롤이 좀 어렵기도 하고, 약간 간을 보는 타입이라 단호하게 대해야 하는 면도 있다.


예를 들면 잘 가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서고, 마방에 들어갈 때 일부러 냅다 달려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거나 마장에서 정지했을 때 트랙 옆 풀을 뜯어 먹는다거나 할 땐 난감하지만 당황하지 말고, 컨트롤을 좀 해주는 게 필요하다.


"용희 씨, 볼케르는 고삐가 세요."


어느 날 주말반에 출석한 내게 미정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말이 달리면서 고삐를 앞으로 당긴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등자 길이를 최대한 짧게 맸다. 이렇게 하면 무릎이 접혀 있어서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무릎이 좀 아프긴 하지만, 말이 앞으로 세게 달릴 때 코어 힘이 좀 부족해도 등자를 의지해서 힘센 말 컨트롤이 가능하긴 하다.

 

나는 어린이들과 함께 마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에이스 3총사인 쥬디, 스타, 두성이가 총출동했고 입문자 전용 말인 태평이와 양귀비도 있었다. 나는 볼케르를 데리고 선두 말을 서 주시는 선생님 뒤 2번째로 달렸다. 


주말에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선두를 서 주시는 선생님이 따로 계시고, 어린이가 많을 때는 사장님이 직접 마장에 나오셔서 지도 해주시기도 하시는 데, 이날도 사장님은 미정 선생님이 계시는 트랙 반대편에서 지도를 해주셨다. 


어린이들이 많을 때는 선두가 달리는 속도를 많이 높이지는 않는데, 빨리 달리는 것보다 느리게 달리면서 말을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더 어렵다. 속도가 느리다 보니, 나는 경속보보단 좌속보로 선두 마를 따라 달리게 되었다. 


좌속보를 잘하게 되면 구보는 저절로 잘하게 된다고 들었는데, 이참에 좌속보를 제대로 배우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볼케르는 회원들 사이에서 좌속보를 알려주는 말로 유명하다는 데 한 번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나는 볼케르를 타고 나름의 방식으로 좌속보를 시작했다. 내가 지나갈 때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용희 씨, 잘하고 있어요. 꼬리뼈를 안장에 딱 붙이고 절대로 떼지 마세요." 


나는 최대한 꼬리뼈를 안장에 붙이고, 한 바퀴 돌았다. 사장님은 내가 옆으로 지나갈 때 말씀하셨다. 


"용희 씨, 다리는 최대한 말의 움직임을 표현해 준다고 생각하고요. 배치기를 해도 되고, 고관절을 움직여줘도 되고, 골반을 좌우로 움직여 줘도 되는 데, 움직임은 말에 맞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세요. 다만 하체는 멈춘 채 있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말은 부지런하게 타는 거예요." 


평소 사장님은 부드럽고 말수가 별로 없으신데, 강습은 뭔가 문학적인 방식으로 하셔서 상상력을 자극하시니까 더 재미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지금 자전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 번째 바퀴에서 사장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다리는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상체는 새의 날개라고 생각하세요. 새는 날개를 파닥거리지 않잖아요. 우아하게 편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고정해 주세요." 


나는 사장님의 강습을 듣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를 연상했다. 다리는 부지런히 말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상체는 새의 날개라고 생각하면 아마 내 몸이 날개가 달린 켄타우로스가 되면 되는 걸까 싶다. 


나는 사장님의 표현력이 너무도 신기해서 다음번에 기회가 닿으면 또 강습을 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오늘 수업으로 곧 나도 인마일체를 이루게 될 것 같은 상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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