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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Mar 06. 2016

오늘 하루 수고한 나에게
작은 선물을

퇴근한 나에게 고래밥을!

오리온 고래밥. 언젠가부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과자 중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원탑일 수도..)

짭짤하고 약간은 매콤한, 손톱만 한 고래, 오징어, 별가사리, 물고기들을 입에 가득 담고 톡톡 터트리는

그 재미 때문일까.


2015년 9월 추석부터 린나이서비스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감정노동의 대명사 콜센터 아르바이트이다. 지난달까진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 30분에 퇴근했고 이번 3월부턴 동절기가 끝나서 8시 20분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꽤나 긴 근무를 하고 바쁜 날엔 고객 전화를 100개 이상 받는다. (순 통화시간만 5시간이 넘는다.) 특히 추운 날엔 고객들이 예민해져 호통을 치시거나 쌍욕을 나쁜 말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 상담원들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아무튼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는 보통 간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간식하면 자연스레 고래밥이 떠오르고 그래서 종종 집에 가는 길에 다있소 다이소에 들러서 1000원짜리 봉지 고래밥을 사 먹곤 한다. 돈 번다고 하루 종일 감정노동을 한 나에게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이랄까.

어제도 고래밥이 땡기는 날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다이소에 갔는데 봉지 고래밥이 없길래 어쩔 수 없이 4개들이 박스 고래밥을 사갔다. '룰루 고래밥ㅋㅋㅋㅋㅋ신난닼ㅋㅋㅋㅋㅋ' 하고 뜯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종이접기 세트가...

알고 보니 9개의 캐릭터가 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메인 캐릭터인 고래 '라두'가 나왔다. 평소 같으면 손재주가 좋은 친누나에게 만들어달라고 줬겠지만 괜한 흥미가 생겨 직접 만들어봤다. 낑낑대고 있었는데, 종이접기로 유명한 김영만 영맨 아재의 설명 동영상 링크가 있길래 들어가서 보면서 했다. 별로 도움은 안됐다.

완성ㅋㅋㅋㅋㅋㅋㅋ

여자친구 써니에게도 보여주니 이렇게 뭘 만드는 걸 처음 봐서 그런지 당황하면서도 귀여워했다.


라두 만들기를 만족스럽게 끝내고 고래밥도 맛있게 먹었다. 일하면서 쌓인 말로 다 설명 못할 여러 감정이 고래밥처럼 와그작와그작 부서지고 사라졌다. 수고한 나에게 만족스러운 선물이었다.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먹으면서 잠시 생각해보니, 나에게 이러한 소소한 선물을 주기 시작한 게 대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경영학원론이라는 전공과목에서 10개의 비즈니스 에세이를 제출해야 하는데 교수님의 지시대로 수정에 수정을 거쳐 최종 패스를 받으면 야밤에 방에서 음료수 같은 맥주 KGB 레몬맛과 매운새우깡으로 자축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수고한 나에게 소소한 선물 주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낯선 일이다. '선물을 준다'는 행위의 대상이 보통 타인이라 그런지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서일까. 사실 표현이 그렇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걸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 것인데 우리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일에 어색함을 느끼고 심지어 인색하기까지 하다. (한편으론 일상이 너무 바빠 스스로에게 선물을 챙겨줄 여유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고된 하루를 보낸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고 때로는 칭찬해주고 응원해주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지고 계속해서 나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에게 간식거리를, 다른 누군가는 맥주나 와인을, 또 다른 누군가는 늦잠을, 쇼핑을, 영화나 드라마 보기를... 각자 선물하고 싶은 것들을 선물한다. 그렇게 고된 하루의 끝에서 기쁜 마음으로 동그랗고 꽉 찬 마침표를 찍는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물질적인 게 아니라도 괜찮다.

오늘 하루 수고한 나에게 그저 작고 소소한 선물 하나를 주면 어떨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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