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당신이 몰랐던 당신의 기록, 다크데이터

잊혔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by 박항준 Danniel Park


판사와 결혼한 모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패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부부싸움을 하면 누가 이기나요? 남편이 판사니까 논리적으로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나요?" 대답은 "아니오"였다. 아무리 논리적인 남편이라도 말싸움만큼은 아내에게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져준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아내가 말싸움에서 이기는 진짜 이유는 공감 능력이 높은 아내가 남편의 다크데이터를 그만큼 많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1년 전, 심지어 10년 전 남편이 저질렀던 실수, 당시에는 따지지 않았지만 아내를 서운하게 했던 말 한마디나 행동, 명절에 시댁식구들이 무심코 건넸던 말들까지. 남편 본인도 잊은 지 오래인 그 장면들이 아내의 기억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무리 논리가 정연해도 10년 치 다크데이터를 들이미는 아내 앞에서 남편이 말싸움을 이길 방법은 없다.


다크데이터는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는 이것을 '보내지 않는 편지함'이라 불렀다. 자신을 배신하거나 상처를 준 상대에게 쓴 격한 편지를 실제로 보내지 않고 보관해두는 것이다. 순간의 분을 삭이는 동시에, 나중에 다시 꺼내 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장치다. 보내지 않은 그 편지 한 장이 관계를 지키는 다크데이터가 된다.


데이터의 관점에서 다크데이터는 오랫동안 불필요한 짐 취급을 받았다. 블로그에 묻혀 있는 오래된 글들, 수천 장씩 쌓여 있는 스마트폰 사진들, 여행 후기, 댓글 조각들. 저장은 되어 있지만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것들이다. 용량을 차지하지만 활용도는 낮은, 그래서 지워야 하나 망설여지는 데이터였다.


그런데 AI 시대가 열리면서 이 다크데이터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흔적과 단서만으로도 AI는 그 사람의 습관, 패턴, 과거행적, 무의식적인 루틴을 분석해낼 수 있게 됐다. 대량의 다크데이터들을 한데 모으는 순간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행동의 반복, 고쳐야 할 버릇, 잃어버렸던 기억, 에너지가 높아지는 조건까지 데이터가 나를 설명해준다. AI는 다크데이터를 마이데이터로 전환해주는 도구가 된다. 이렇게 고도화된 마이데이터는 개인맞춤형 라이프에 사용된다. 개인의 건강, 관심, 기호, 가치 등을 스스로 인지하게 하고 매칭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크데이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자신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아내가 오래된 기억으로 남편의 허를 찌르듯, 데이터는 우리가 외면했던 자신의 이면을 가장 선명하게 비춘다.

작가의 이전글[박항준 북칼럼] 기술공화국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