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포트극장 앞에서
학교 앞에서 출발한 버스가 잠시 멈추면 집이 근처인 아이들은 땀 뻘뻘 흘리며 내려야 했고
장에서 산 물건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올라타느라
온통 북새통이던 통영 서호시장.
왕복 이차선길에 버스가 잠시 멈춰서면 운전기사는 창문을 열어 맞은편 버스 기사와 무슨 즐거운 얘기를
그리 하는지 웃으며 한참이나 서 있곤 하였다.
버스에서 내렸다.
와글와글하던 서호시장 왕복 이차선은 일방통행이 되어 두 차선 모두 시내 쪽 방향 차들만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학교로 가는 차들은 시장통 한 블록 너머 간선도로로만 다니게 되었다.
두 배는 넓어진 시장통 길에는 심드렁한 사람 몇만 설렁설렁 걸음을 떼고 있었다.
‘임대문의’ 유리창에 크게 붙어 있는 알림판만이 쇠락한 구도심을 안내하고 있었다.
한산한 시장 길목의 고춧집에서 참기름병 하나 사 들고 콧노래 하나 부르며 걷다 들어선 골목 입구에서
나는 기막힌 추억 한 토막을 만날 수 있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이 학기가 시작된 대학가, 검은 모직 코트 깃을 세운 젊은 수컷들이 한껏 멋을 부린채
두리번거리며 다녔다. 오월에 개봉한 영화 한 편이 젊은 거리를 휩쓸었고 그 물결에 청춘들이 넘실댔다.
서울 생활을 갓 시작해 촌뜨기를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름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서야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시골풍 극장 간판에 그려진 그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성냥개비를 입꼬리에 물고 있다가 투~ 뱉어내는 순간 그의 쌍권총이 불을 뿜으며 악인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홍콩 누아르를 이끌었던 주윤발, 그가 주연한 영웅본색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몇 번이나 극장에서 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가 입었던 검정 코트를 한참이나 입고 다녔었다.
건물꼭대기에 그 시절 추억 속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포트극장’ 기억 속 그 간판은 아니었지만 건물 벽의 이름만으로도 나의 이십 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였다.
방학 한 달을 고향에 있으면서 낮이면 낚시도 하고, 남망산에 있는 남해안별신굿 하던 친구가
숙소 겸 연습실로 사용하던 공간에서 의미 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면 포트극장에서 영화 한 프로 보고 그 아래 있던 카이저 호프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초점 없는 이야기들로 새벽까지 부딪히다 집에 들어 가던 그립기도 하고안타깝기도 한 내 청춘의 그림자.
그랬었지 여기서 내가 시간을 보냈었지.
건물 전체가 어둑어둑하고 불 켜진 간편하나 없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점령한 강구안이지만
그때는 뱃사람들이 저녁이면 술 마시고 붉은 거리를 헤매며 두툼한 주머니를 자랑하던 그런 곳이었다.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강구안 넘쳐나던 비린내도 그 비린내를 타고 앉아있던 횟집들도 모두 지나가 버리고
너른 광장과 꿀빵집과 김밥집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만이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햇살 끄트머리, 불 꺼진 극장 하나 옅은 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극장 그림자 너머 ‘영웅본색’ 이후 아이콘으로 살다 십 육 년 뒤 비극으로 사라졌던
배우 ‘장국영‘이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마음 한편 무언가 휙~ 지나가길래 뒤 돌아보았다.
‘그래, 너희들이 아직 살아 있었구나.’
낡은 건물벽에서 ‘말뚝이’, ‘문둥탈’, 울트라맨처럼 변형시킨 ‘홍백양반’ 셋이서
낡은 도심을 내려 보고 있었다.
통영오광대 주인공인 그들은 시대의 양반들을 비판하다 건물 벽에 박제되듯 위리안치圍籬安置 된것일까?
한참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강구안 길목엔 덩실덩실 자유로운 춤사위로 남망산 잔디 공연장을 뛰어다니던 그들이 얼른 지나가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통영 포트극장의 오광대 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