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만 캐면 될 줄 알았다

by 대니보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까이 계신 부모님께 들리고 있다.

운전을 그만 하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려도 팔십 되어가는 부친은 항상 작은 고집을 부리셨다.

차로 한 십 분정도 가는 바닷가의 작은 밭을 빌려 계절 따라 작물을 심고 또 거두어 당신들 드시고

자식들에게 나누는 쏠쏠한 재미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고구마를 캐야 된다고 전화를 하셨다.

몇 해 전 회사가 지방으로 옮겨 사십여분 떨어진 도시로 이사 온

아홉 살 터울의 남동생과도 날짜를 맞추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생때같은 아들들한테 일 못 시킨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고구마를 캐본 기억이 없다.

요즘에야 유치원에서 생태체험으로 별별 경험을 다하지만 장남이라고

궂은일 시키지 않은 어머니의 신념 덕분에 고등학교 때까지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학교생활만 한 것 같다.


선크림을 바르고 등산모자 쓰고 집에서 한 삼십 분 걸리는 밭으로 운전해서 도착하니

아버지와 동생이 먼저 작업을 하고 있었다.

흰 고무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흙바닥에 놓인 호미를 들었다.

작은 밭에 고구마, 배추, 마늘이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호미질로 설렁설렁 흙속에 파묻힌 고구마만 캐내면 쉽게 끝나는 줄 알고 왔더니 착각이었다.

호미보다 먼저 낫을 들어야 했다.

세 개의 밭이랑 위로 고구마 넝쿨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어 고구마를 캐려면

이랑을 덮고 있는 넝쿨들을 먼저 다 쳐내야만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 손으로 움켜잡고 낫으로 슥슥 잘라내길 한참,

밭 귀퉁이에 무덤처럼 몇 덩이를 쌓아놓고 나서야 동생과 나는 호미를 들 수 있었다.

아픈 허리를 몇 번이나 펴고 나서 생각보다 깊숙이 파묻힌 고구마를 캐내기 시작했다.

주먹보다 큰 고구마가 줄기 따라 나와서 기분 좋았다.

그러나 벌레가 파먹고, 또 다 자라지도 못한 작은 고구마도 많아 캐내서 귀퉁이 버리려고 하였더니

아버지는 작은 것이나 벌레 먹은 것도 먹을 만하니 한쪽에 두라고 하셨다.

자식들한테는 이쁜 것들 챙겨서 주고 당신들이 드시려고 하는 마음을 모를 수 있을까?


얼추 다 끝나가서 허리 두드리고 일어나려 하였더니 아버지께서 검은 비닐을 옆 이랑 위에 덮고 계셨다.

마늘이 심긴 곳이었다.

작년에 비닐을 안 덮었더니 제대로 자라지도 않고 또 많이 죽어서

지금이라도 한 번 덮어보려 한다고 말씀하셨다.

비닐로 이랑 전체를 덮고 삐뚤삐뚤 가로줄 맞춰 대충 나 있는 마늘 하나하나를

비닐에 구멍을 뚫고 햇빛을 보게 해주는 작업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앉아서 싹이 나거나 조금 자란 마늘 하나하나를 찾아서 비닐에 구멍을 뚫은 후

그쪽으로 쏙 뽑아 올리고 그렇게 가로 한 줄을 다하면 앞으로 조금 이동해서

앞 줄 아이들도 그렇게 구멍을 통과해서 햇빛 아래로 내보내는 작업을 한참이나 했다.

두 이랑의 마늘을 그렇게 했더니 허리가 끊어지듯 아픈 게 고구마 캐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검은 비닐을 미리 준비해 두신 것을 보면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일일 것인데

이렇게 아들들이 허리 아프다고 했으면 시키지 않았을 텐데,

하기사 고구마 캐는 일에는 고구마 줄기를 먼저 잘라내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얼마나 고된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늘밭 비닐 덮는 일도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쭈그려 앉아 해보지 않은 이상

노동의 강도를 짐작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일들을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말하기 전 몇 해 동안은 하셨을 것이다.

마늘밭에 쪼그려 앉아 구멍을 내고 마늘을 끄집어 올리고 나면 동생이 삽으로 흙을 떠서 검은 비닐을 덮었다.


아버지는 힘들면 쉬었다 하라는 말씀 말곤 별다른 얘기는 안 하셨지만

가볍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내년 봄, 맛있는 마늘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고구마만 캐는 줄 알고 설렁설렁 온 걸음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왠지 가볍기만 하였다.

고구마.jpg

삼부자의 고구마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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