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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Oct 03. 2023

자유공원에서 만난 영웅들

   6.25 전쟁 때 우리나라를 구한 그를 만나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헐떡거리는 숨을 참아가며 여기까지 온 이유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마침내 계단 끝자락에 섰다. 깊은숨 들이쉬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가고 있었다. 처음 와 본 곳이기도 했고 깃발이 가는 쪽이 내가 가야 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리 부는 아니 깃발 흔드는 사나이를 따라갔다.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로 천천히 설명하는 가이드.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삼각의 철판 구조물들이 한곳으로 모이는 기념탑이 보였다.  ‘한미수교100주년기념탑’이었다. 1882년 5월 22일 제물포 화도진 언덕에서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1982년 12월 건립된 것이다. 

   의미 있는 공간에 귀 기울이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아마도 DMZ를 거쳐 이곳에도 들렀을 것이다. 하기야 1945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대한민국만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념비적인 나라가 또 있을까? 진지한 눈빛으로 기념탑을 보고 있는 외국인들을 뒤로하고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며 고동치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을 무렵 팻말이 보였다. 

   1883년 인천이 개항되고 그 5년 뒤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이다. 각국 공원, 서 공원,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가 1957년 10월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얕은 계단 두어 개 올라서니 장군의 모자가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애국가를 부르는 절절한 목소리가 파도치듯 달려왔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목소리를 따라 몇 걸음 더 올라갔다. 흰 머리카락에 빨간 모자를 쓴 노인 한 분이 커다란 태극기를 펄럭이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간절함이 베여 있는 애국가에 울컥, 가슴이 저렸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맥아더 동상 앞에 섰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절체절명의 순간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하여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다. 태극기, 애국가 그리고 노병의 동상을 보며 지난여름 다녀온 동해안 장사리를 생각했다. 2019년에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 개봉된 덕분에 역사의 뒤편에 있던 그들을 회자하기 시작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9월 15일 그날, 경상북도 영덕의 장사 해변.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의 교란 목적과 인민군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는 중요한 작전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본 언론 기사에는 오류들도 있었지만, 작전에 투입된 772명 그들의 평균 나이가 16세인 학도병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한산한 바닷가에 이들을 싣고 왔던 군함 ‘문산호’를 재현한 기념관에서 푸르렀던 젊음을 만났었다. 그렇게 스러져 간 이들이 새겨진 명판. 그들의 이름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확률 오천분의 일인 상륙 작전을 승리로 이끈 명장도 1951년 4월 19일 고별연설을 마치고 역사의 뒷길로 걸어갔다. 열여섯 해 짧은 삶을 통째로 나라에 바친 그들도 명패에 이름 하나 남기고 대한민국의 별이 되었다. 역사에 남겨진 별들을 가슴에 담았다. 펄럭이는 태극기에 실려 온 애국가 한 소절과 백발의 노인도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자유공원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서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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