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 시 삼십 분, 오랜만에 통영 서호 시장에 갔다. 갯내음 담긴 수족관엔 집 나간 며느리들의 원수, 전어 무리가 털어내는 비늘들이 밤하늘 별빛처럼 반짝였다. 반갑게 눈인사하는 생선가게 주인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시장통을 걸었다. 공복감에 바쁜 걸음 옮겼다. 오른편 좌판에서 맛있어 보이는 홍시가 대야에 앉아 손짓하고 있었지만, 서둘러 복국집으로 갔다.
서호 시장에는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복국집 몇 군데가 있다. 여러 복국집을 거쳐 최근 정착한 복국집은 뼈를 다 발라낸 작은 졸복에서 우러난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요즘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우스갯소리로 먹지도 않은 술이 확 깨는 그런 맛이다. 한입에 들어가는 작은 졸복에 콩나물, 미나리까지 다 먹고도 아쉬워지는 맛.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버렸다.
그득한 포만감에 배를 두드렸다. 한 걸음마다 출렁이는 행복감에 웃음이 나왔다. 느릿느릿 길을 걷는데 아까 지나쳐 왔던 홍시가 생각났다. 나는 딱딱한 단감부터 말랑말랑한 홍시까지 감이라면 다 좋아한다. 감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닮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조각조각 기억되는 어린 시절 풍경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 식구가 스무 명은 족히 넘는 큰집에서 살았다. 태어난 지 서너 해 뒤 시내로 이사하면서 아스라한 시골 향기와 멀어져갔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방학이나 제사 때면 큰집에 가게 되었다. 나는 큰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태어난 작은방에서 나는 쿰쿰한 할아버지 냄새도 좋았고, 또래의 사촌들과 산이며 바닷가로 놀러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다.
뛰어다니다 배고프면 너른 집 뒤에 있는 감나무에 올랐다. 덜 익어서 떫은 감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쩌다 먼저 익은 주황색 감을 만나면 어찌나 반갑던지. 그때 먹었던 감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어딜 가든 감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간다. 그래서 10월 중순 딱 이맘때쯤, 대봉감을 주문해서 작은 베란다에 널어놓는다. 발그레한 감이 맛있게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감나무에 올랐던 그 시절, 한번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잘 익은 감 하나가 운 좋게 눈에 띄었다. 따려고 감나무에 오르려는 데 사촌 형이 내 손을 잡아끌고 말했다.
“용과야, 저건 까치가 먹게 남겨 놔야 해.”
까치가 먹게 남겨 놔야 한다니. 아쉽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형 말이니 들을 수밖에. 고개 끄덕이며 입맛만 다셨던 기억과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던 잘 익은 감 몇 개 그리고 선선했던 바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큰집에 가도 까치밥으로 매달려 있던 홍시를 볼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며 가족 모두 도시로 떠나버리고 내가 태어났던 큰집도 보리밭이 되어 푸른 물결만 넘실거린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일까. 잘 익은 홍시를 보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베란다에서 붉은 감이 익어가고 있다. 남겨 둔 까치밥처럼 어른거리는 유년의 기억과 함께 말랑말랑 맛있어지는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