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Nov 29. 2023

서러운 사량도

다시 만난 사량 1화


이선정作  아름다운 시간   oil on canvas


오늘은 날씨가 무척이나 고왔다. 

먼바다의 태풍주의보로 그 고운 엔젤호의 자태는 볼 수 없어도,      


아침에 일어나 물탱크 펌프 전원을 켜고 

온 밤 내 불던 갯바람에 잠 못 들어 지친 내 몸속 김치라면 둘로 채우고 

동네 영감님보다 더 늙은 오토바이 살살 달래서 약수터로 달렸다.     


달려온 바닷바람 얼굴 가득 부딪고 오토바이는 힘든 한숨 내쉰다. 

잠시 산마루에 앉아 보는 섬 너머 파아란 바다. 

’ 산에서 보는 바다는 참 아름답구나.‘ 

재촉하는 바람 소리에 서둘러 약수터 샘물 담아 보건지소로 돌아왔다.     


하루에 몇 안 되는 환자를 기다리며 낡은 컴퓨터를 켰다. 

질병분류표 정리한 뒤 PC통신 클릭 몇 번에

푸른 화면 더디 점멸하는 순간 전화벨 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사량도 끝 마을 돈지의 지리산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연락이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보인다고 지리망산,  

험한 바위산이라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사고가 난다는 그 산. 

등산객이라 했다. 

작은 섬의 치안을 맡고 있는 지서로 걸어 올라 지서장님과 국방색 트럭 타고 

험한 산길 달려 분교에 닿았다.     


교실에 안치된 고인의 얼굴을 들춰 보고 수술 장갑 꼈다.

동공 반사 없고 심장박동 소리 들리지 않았다. 

검지 손가락으로 항문 반사 확인한 뒤 사망 선고를 했다.     


“사망하였습니다.” 

예순의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되었고 가족들은 임종도 보지 못했다고 하니. 

같이 등반한 이의 말론 쓰러지고 나서 채 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허망한 삶이여.     


보건지소로 넘어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낮잠으로 숨 돌리니 어느새 저녁. 

그 사이 망인의 가족과 연락 닿아 차가운 사체검안서 작성하고 한 걸음 나섰다. 

싼판에 가만히 서서 흔들리는 달빛을 보는 선선한 저녁.     


선창엔 태풍주의보로 피항(避港) 온 어선들의 불빛이 가득하고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달빛은 파도 가득 밀린다.


아, 서러운 사량도의 밤이여.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