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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서 나를 만나다
일출을 보고 온 아침 부고를 듣다
by
대니보이
Nov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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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알람 소리에 눈 비비고 일어나
어제저녁 챙겨둔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삼십 분을 달려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에 닿았다.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공기가 부두 가득 깔려 있었으나 부지런한 사람 몇은
벌써 마스크를 끼고 너른 광장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시에 나온 걸까?
기상예보 앱에선 여섯 시 사십일 분에 해가 뜰 거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여
삼각대를 펴고 카메라를 얹고서 유선 릴리즈를 연결했다.
옅붉은 기운이 조금씩 펴 오르길래 핸드폰 카메라와 DSLR 카메라의 셔트를 교대로 눌렀다.
노을보다 더 붉은빛이 항구 앞바다를 새빨갛게 물들여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으나
가벼운 공복감에 얼른 의식을 붙잡고 장비를 챙겨 자주 가는 식당으로 갔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아들은 이 집의 콩나물국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식당에서 먹을 때면 수란을 담은 그릇에 따뜻한 국밥 국물을 부어놓고
날계란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김가루를 가득 뿌려놓고 행복해하는
아들 얼굴을 떠올리며 삼인분을 달라 하여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아침 일곱 시,
식당처럼 김가루는 없어도 막둥이 아들과 같이 먹는 국밥이라
포만감도 좋지만 같이 하는 공간과 시간으로 행복해지는 아침 녘이다.
노곤함과 포만감으로 잠시 눈 붙였다 일어나니 두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새벽에 일어나야 된다는 작은 긴장감으로 잠을 설친 데다
채 네 시간도 못 잤다는 조금은 강박적인 생각이 몸을 더 힘들고 늘어지게 하였다.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가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얼마 전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 보고 싶어
초등학교 오 학년까지 살았던 집 근처에 가보았다.
전화국 옆을 돌아서니 그 넓었던 골목 입구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 보였다.
어린 마음과 체구에 더 넓게 보였을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심해지는 기억의 왜곡이라고 하는 것이
시공간을 뒤죽박죽 헤집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단방구놀이며 사또야 불켜라 소리 지르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뛰어다니던 그 골목이
이렇게 좁았었나?
조금 더 올라가니 솔개 세매 라고 부르든 오래된 우물 하나가 뚜껑 덮인 채 있었다.
두레박이 달려 있어 목이 마르면 서로 먼저 마시겠다고 밀치며
놀이처럼 물을 퍼올려 마시던 아련한 기억 한 조각, 이제는 세월 따라 은퇴하였나 보다.
툭툭 한 번 두드려 본 후 왼쪽 길로 올라가니
더운 여름날 돌 무덩이로 아래를 막고 물놀이를 하던 두어 폭 되던 개울이
이제는 복개가 되어 세월 저너머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추억이 되었다.
이 분 남짓 걸어 올라갔더니 도천동 119번지, 초등학교 오 학년까지 살았던 집이 그대도 있었다.
집 앞 개울에서 한 여름에 물놀이를 같이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불알친구였다.
오늘 새벽에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덤덤하게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엔
세월의 노곤함
이 묻어 있었다.
다리가 저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된 폐암 말기.
같은 모임을 하던 부친에게 말씀드려 친하게 지내던 친구분들께도 알려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아버지께 전화하여 그분이 돌아가셨다 말씀드렸더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 죽었다. 나만 남았다.”
수화기 속에서 아버지의 무거운 음성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아무 말 못 하고 편히 지내시라, 일간 넘어가겠다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에 알람 같이 울리는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을 벗어 버리고
내일
좋아하시는 초밥을 들고 아버지를 뵈러 가야겠다.
항구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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