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개-강아지도 아닌-를 안고 왔다.
구등신에 가까운 몸매에다 덩치는 강아지라고 하기엔 너무 뚱뚱해 보였다.
끙끙대며 안고 있는 그녀는 웃고 있었다.
국민학교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교문 옆 작은 길로 들어섰는데
누런 개 한 마리가 갑자기 달려들어 내 왼쪽 다리를 물고서 으르렁거렸다.
비명에 골목 입구의 어른들 몇 분이 달려오고 나서야 그 사단은 끝날 수 있었고,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놀란 엄마는 밖에 나갔다가 오시더니 개털 비슷한 것을 된장인지 참기름인지를 묻혀
조심스레 물린 자리에 붙여주셨다.
그 뒤론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큰 개가 보이면 멈춰서 돌아갔고 작은 개가 나타나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주문을 외웠다.
‘이쪽으로 달려들어 물려고 하면 오른발로 냅다 질러버려야지’
그런데 여자 친구가 제 몸 반만 한 개를 안고 나온 것이다.
나도 놀라고 개도 놀라서 낑낑대었는데 나의 트라우마를 아는지 모르는지 쓰다듬어 보라고 하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알프라고 해, 이쁘지?”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갈림길에서 선 나는 그녀의 웃는 모습에 다가설 수 있었다.
결혼해서 처가에 가면 알프는 비대해져 제 한 몸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내 앞에서 벌러덩 드러눕고 재롱을 떨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재밌던지 한참을 웃어야 했다.
몇 년 뒤 그 개가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많이 울었다.
만약 그때 내 왼쪽 정강이 상처만을 기억하고 다가서지 않았더라면 알프와의 추억도 없었을 것이고
아내와는 물론 헤어지지는 않았겠지만, 가까워지는데 조금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삶의 순간 작은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반걸음쯤은 앞으로 내디디고 싶다.
나에게 힘을 주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