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위로와 위로가 오가는 곳 , 진료실
“책 보면 안 되죠?”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돌아보니, 환자복을 입은 아홉 살 철이가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병 빨리 나으려면, 공부하면 안 되는 거죠?”
재밌고도 난감한 질문. 천진무구한 얼굴로 눈웃음치는 귀여운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뭐라 말하려는데, 녀석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해맑은 눈동자 아래 보이는 핸드폰엔 제목을 알 수 없는 게임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에라, 이 녀석. 네 맘을 모를 줄 알고. 속이 뻔히 보이는 질문에 웃음이 나왔다.
“지금은 열이 떨어졌으니 공부하는데 문제없어요.”
내 대답에 입술 삐죽 내민 채로 토라지는 귀여운 녀석. 진료실에 돌아와서도 그 표정이 떠올라 한참을 웃었다. ‘맞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무렵이었을 것이다. 다른 방학 숙제는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일기 쓰기가 문제였다. 먹고 자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 가끔 공부도 하는 날들이었기에 딱히 쓸 말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놓치기라도 하면 일기장 위에 해님, 구름, 비 중에서 동그라미 쳐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쓰지 못한 일기가 쌓여가다 개학이 모레로 다가온 그날. 딴에는 숙제를 다 못 해 가면 창피하기도 하고 선생님께 혼날 것 같아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번뜩 떠오른 생각에 집 옆에 있는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 온 전화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처러럭. 처러럭. 뚜뚜. 신호가 두어 번 울리고 동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학교 교무실에 계신 당직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저, 3학년 3반 강용과라고 합니다. 제가 아파서 숙제를 다 못했는데 어떻게 하죠?”
아파서 숙제를 못 했고 특히 아파 누워 있어서 일기를 다 쓰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선생님의 답변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개학 날 대충 숙제를 제출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무슨 마음으로 담임선생님도 아닌 당직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면죄부를 받고 싶어 했을까? 그때의 나처럼 아홉 살 그 녀석도 내가 마음의 짐 하나 덜어주었으면 했을 것이다.
면죄부. 그 단어 하나에, 교과서의 세계사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 시작은 천 년 전, 십자군 전쟁의 경비를 마련해야 했던 교황 우르바노 2세였고, 약 500년 뒤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자금이 필요했던 교황청과 주교직을 돈으로 산 대주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남발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을 끌어내고, 거대한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가. 거기서 한술 더 떠, 돈으로 신분과 벼슬을 샀던 조선 시대의 ‘공명첩’까지 생각이 미치자, 헛웃음이 나왔다.
철없는 소년이 사족 같은 이야기들을 알 리 없지만, 내게 달콤한 면죄부를 받고 따뜻한 병실에 누워 실컷 게임하고 싶었을 녀석에게 면죄부를 팔아봤자 나에게는 아이 엄마의 날카로운 눈초리만 돌아왔을 터인데, 내가 면죄부든 공명첩이든 발행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녀석 덕분에 떠오른 어린 시절 기억 한 토막에 웃음 짓는 하루였으니 다음 진료 때엔 달콤한 과자라도 한 봉지 건네야겠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달콤한 ‘면죄부’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