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f; 숲
"무슨 일이야. 미쳤어. 들어갔어."
아침의 일이다. '약속 있으니까 오늘은 좀 다르게 입어볼까?' 장롱을 열었다. 바지도 한 번 입고 저번에 산 치마도 입어보고 그래도 이 옷엔 짧은 게 어울릴 거 같은데. 뒤져봤다. 몇 년 전에 입던 짧은 치마. 그냥 어울리나 한번 보자. 하면서 두 발을 넣었다. 예전에도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
그리고 허벅지를 넘어가고 골반을 지난다. 살짝 걸려도 오 그래도 좀 수월해졌는데? 하면서 지퍼를 잠가본다. 여기서부터가 관건이다. 몇 년간 지속한 실패 구간이다. 숨을 흡! 참고 지퍼를 올린다. 쭉 쭉.
오잉?
다 올라갔어? 아닌데 종료 2/3 지점에서 막혀야 하는데? 전신 거울을 보고 뒤를 돌아서 정녕 다 올라간 것인지 확인했다.
"미쳤어. 미쳤어." 육성으로 나왔다. 문이 닫힌 게 사실이었다! :)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뒤를 돌았다, 앞을 봤다가 믿기지 않아서 여러 번 만져봤다.
음... 3년 쯤 된 거 같다. 이 치마를 입고 밖을 나간 것이.
마지막은 면접 때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급 면접을 보게 된 직장이 있었다. 나름 나에겐 꿈의 직장이었고 최종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서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준비했다. 하필 그땐 폭풍 같은 12월을 보냈고 그 폭풍을 먹는 거로 풀었던 때였다. 정말로 급 살이 쪘고 맞는 치마는 없고 자신감은 폭풍 하락했다. 이 치마를 아주 힘겹게 입고 자켓으로 가린 후 면접을 봤다.
그게 이 옷과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아주 살짝 셔링이 들어간 이 검정 짧은 치마가 가끔 아른거려 꺼내어 보았다. 블랙 스커트라 어디에나 잘 어울려서 코디 할 때마다 이번엔 맞을까 하면서 혹은 언젠간 맞을까 하면서 종종 찾았다.
그리고 오늘 함께 나갔다. 집 밖을 나와서 회사까지 가는 길이 정말 신났다.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살랑살랑한 노래를 듣고 미소를 머금고 행복해... 하면서 걸었다. 현실은 추운 초겨울, 집 앞은 시끄럽게 공사 중.
많이 쪘다. 현실 부정기를 겪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거울 속 나를 외면했다. 이 모습으로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은 내가 원래 이런 줄 알겠지? 하면서 그냥 씁쓸해도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나를 아는 사람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내 암흑기를 눈으로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거 같아, 왠지 더 자존심이 상하고 슬펐다.
우울했다. 인정한다. 그때 난 내가 우울하지 않다고 했지만. 난 우울한 게 맞았다. 내 모든 스토리를 아는 친한 몇몇 지인만 만났다. 동굴 속에 있었다. 바닥이 난 체력을 키운다고 아주 소극적으로 조금씩 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단체 사진을 찍은 날이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알기는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인 줄은...:D
런데이를 시작했다. 4개월 정도 일주일에 3번씩 뛰었다. 물론 쉰 주도 있다. 그래도 그런 주간은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간헐적 단식을 간헐적으로 했다.
다양한 다이어트를 한 결과, 난 먹는 걸 확 줄이는 방법을 하면 결국 다시 요요로 돌아온다는 걸 배웠다. 운동을 많이 하는 걸 택했다. 체력 문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운동이 우선이었다. 홈트도 했다. 작년 가을부터 런데이 안 하는 날은 유튜브를 보면서 했다. 아주 미세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1월부터 회사에 들어갔다. 혼자 살기 시작했고 런데이는 잠시 뒷전이었다. 홈트는 그래도 1주일에 1~2번씩은 했다. 그러다 가끔 아프거나 입맛이 뚝 떨어지는 순간에 살이 빠졌고 몇 개월은 유지하면서 지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홈트를 꾸준히 했다.
이사를 하고 방이 넓어져서 새로 매트도 사고 아령도 가져와서 열심히 했다. 먹는 건 저녁 약속이 없으면 조금 먹거나 안 먹으려고 노력했다. 대신 점심은 마음대로. 엄마는 운동 많이 하는데 먹는 걸 줄이면 더 빠지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아니다. 나는 식단을 줄여서 빼면 또 돌아가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빼야 한다고 믿었다 :D
그리고 작년과 비교해서 8kg이 빠졌다. 1년에 8kg은 적은 숫자 같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하지만 운동은 꾸준히 하면서 더 찌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몸무게보다 더 중요한 건 근육이 진짜 많이 생겼다. 체력이 정말 늘었다. 물론 지금 풋살 팀에선 체력이 거의 꼴등일지 모른다. :) 그렇지만 2년 전쯤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성장한 거다! 사실 언젠가 살과 운동에 대해 쓰고 싶었다. 버라이어티한 변화를 했을 때 말이다.
살이 찌기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도! 현재가 훨씬 건강하다.
치마가 맞은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내년에도 열심히 운동할 나를 위해 남긴다!
근데 오늘 좀 꽉 맞는 걸 입어서 그런지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