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마을은 어떻게 가능할까.
마을에 불이 났다. 의성마을에서 시작된 불이 무서운 불폭탄이 되어 매서운 서풍을 타고 이곳저곳 옮겨 붙어 온 마을들이 활활 타올랐다. 산들이 타고 집들이 타고, 기력이 쇠한 노인들이, 어쩌면 누군가의 오애순과 양관식들일 지도 모르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이 화마에 어찌할 줄 몰라하다가 참변을 당하였다. 산짐승, 들짐승, 축사에 갇힌 소, 돼지들이 자기들이 저지른 죄도 아닌데 참혹한 벌을 받아 횡사하였다. 꼴랑 문자 몇 자 보내놓았으니 알아서 어디로든 도망을 갔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이들이 변을 당하였다. 그러지 못한 자들이 변을 당하였다. 요놈의 세상은 어찌 된 일인지 누구 하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들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이하나 없다. 힘없고 무력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가 잘했어야 하는데, 미리 대비했어야 하는데, 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좀 더 세심하게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이들을 챙겨 대피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비는 놈 하나 없다. 용서를 청하는 놈 하나 없다. 그 와중에 무슨무슨 권한 대행이라는 자는,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쳐 웃으며 쌍 V를 그려 대고 기념사진이나 박고 있었다. 무슨 요따위 마을이 있나. 무슨 요따위 세상이 있나. 지가 불내지 않았으면 그냥 되는 일인가, 지들 가족이 그리 되지 않았으면 다 괜찮은 일인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무력하고, 대피할 힘이 없는 이들이 불이 나 도망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가슴만 팡팡 쳐대다가 숨이 막혀 희생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2년 중증 장애인 김주영 씨가 집에 불이 났는데 혼자 있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스스로 도망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대책을 세워달라 요구했다. 그래서 알랑하게 나온 것이 '재난약자 행동요령' 매뉴얼이 나왔다. 그러고도 매해 도망칠 수 없는 이들이 불구덩이에 혼자 남겨진 채 목숨을 잃어갔다. 2022년에는 서울 은평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또 어느 곳에서는 전동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하는 집구조 때문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또 그 해에는 서울 관악구에 불이 아니라 폭우가 집안을 덮쳐 도망치지 못한 발달장애인 가족이 변을 당했다. 매 해 전국 곳곳에서 이런 희생들이 쌓여간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미추홀구에서 하지 절단 된 노인지 불이 난 집을 빠져나오지 못해 희생된 것이 불과 한 달 전 25년 2월이다. 우리가 사는 마을들은 언제든 불이 나면 도망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지옥이 된다. 매 번 대책을 세워달라, 안타까운 참변을 막아달라 요청을 하지만 나온 것은 알랑한 '***을 위한 재안 안전 가이드'이다. 언제는 가이드가 없어 도망칠 수 없었나. 그놈의 '가이드'가 불을 막아주나 연기를 막아주나, 불로부터 도망치도록 길을 내어주나. 참으로 알량한 대책밖에 나오는 것들이 없다. 방법이 없는 것일까. 마음이 없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약자들을 지킬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억울한 죽음들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을지 대책을 세우고 정책을 만드는 가이드라도 만들어 높은 자리에 앉아 사진이나 찍을 줄 아는 자들에게 '가이드'를 만들어 던져 주어야 하는 것인가.
이번 산불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역시나 화재의 원인으로 무슨 무슨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불에 잘 타는 소나무가 주범이고, 소나무만 주구 장창 심어대는 산림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번 산불에 대해서 분명한 사실은 산불이 이처럼 거대하게 확산되어 대재앙이 된 것은 기후위기가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언제든 이맘때는 전국에 산불이 잦았었다. 이번 화재와 다른 점은 이 계절에 드문 강한 서풍이 불고 있었고, 예년의 3월에는 보기 드문 25~26도의 높은 기온과 건조한 날씨등 기후의 변화가 화재 확산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한마디로 얼마 전 캘리포니아 산불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재난이 분명하다. 앞으로도 홍수든 산불이든 이런 재난은 계속될 것이다.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약자들과 무력한 자들에게 더 가혹한 형별이 내려지는 것이 재난이다. 그 재난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희생된다.
인류가 지금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연민의 마음이 있어서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려 하고,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남을 도울줄 아는 마음들이 인류를 수많은 멸종의 위기에서 지켜주었다고 한다. 이 번 화재에도 곳곳의 많은 이들이 이웃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였다. 아낌없이 박수 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숭고하고 귀한 마음들이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되게 하는 일이다. 선한 개인들의 마음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의지로 세워내어야 한다.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게 국가가 머리 숙여 사죄하고 가슴 아파하도록 해야 한다. 안전한 마을은 재난이 없는 마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재난이 와도 가장 약한 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
[사진출처] 머릿 사진 20250323 조선비즈 김양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