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심는 날.
꽃샘추위가 꽤나 매섭더니 언제 그랬다는 듯이 포근하다. 이제 의심할 나위 없는 봄이 되었다. 봄햇살이 따스하다. 곤줄박이 한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오르며 노래를 한다. 떼를 지어 날아가는 물까치들의 날갯짓이 경쾌하다. 여기저기 맷비둘기들의 노랫소리가 메아리 진다. 언제 나왔는지 들판 곳곳에 봄나물이 지천에 쏟아 나왔다. 겨우내 얼었던 땅은 이제 완전히 녹아서 푸석푸석하다. 경운기로 땅을 뒤집고 계분 비료를 뿌리고 삽으로 푹푹 떠서 뒤집어 준다. 심심치 않게 나오는 주먹돌은 주워다가 밭 옆 비탈로 던져버린다. 비닐 씌웠던 밭을 파다 나오는 검은 비닐 쪼가리들은 놓치지 않고 따로 버릴 요량으로 작업복 주머니에 쑤셔 넣어둔다.
밭에 감자를 심었다. 먹으려고 샀다가 다 먹지 못해 싹이 난 감자다. 싹이 난 감자를 눈을 찾아 쪼개어 심는다. 감자는 90일이 지나면 수확을 한다. 감자 심기는 마치 봄을 선언하는 행사와도 같다. 감자를 심고 20일을 기다려야 싹이 나오기 시작한다. 한번 싹 쏟아 오르면 그때부터는 쑥쑥 자라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서둘러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간다. 밭농사만 농사가 아니라, 세상 농사가 더 중요한 농사란다. 산천에 벌써 봄이 왔는데 진짜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긴 겨울을 길바닥에서 보내면서도 춘 삼월 전에는 봄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그토록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설마 더 늦게 오는 것은 아닐까. 아님 봄이 오지 않고 다시 겨울이 되어 버릴까. 조바심에 밤잠을 뒤척인다.
아직 오지 못한 봄을 사람들은 애타게 기다린다. 늦게 오는 봄은 그만큼 생명들을 움츠리게 한다. 봄인 줄 알고 싹을 틔우고, 피어난 꽃들은 때아닌 진눈깨비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늦어지는 봄만큼, 사람들의 삶도 위태위태하다. 거리에는 빈가게들이 넘쳐난다. 윗집 아저씨는 12월 이후부터 미국 수출길이 막혀 2달째 월급도 못 받고 있다고 한다. 탄핵을 해서 그렇다고, 얼른 기각되는 것이 해결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그 아저씨.. 그 아저씨의 잘못된 소신을 탓한 들 봄이 빨리 오겠는가.
우리는 자주자주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누비며 봄이 오길 기다렸었다. 지지난 겨울이 끝나고 5월이 왔을 때 우리는 진짜 봄이 온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 봄은 한참 부족한 봄이었다. 왜 봄이 왔는데도 사람들의 삶은 그저 팍팍하고, 일하다 죽는 사람은 늘어가고, 비통한 사람들의 아우성은 멈추지 않았던가. 자식 잃은 부모들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는가. 그 봄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봄이었지만, 그늘진 곳에 살아야만 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가짜 봄이었다.
요번에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봄은 진짜 봄이 되려나. 그늘 진 곳 없이 곳곳이 두루두루 따스한 빛이 내리 쬐이려나. 젊은이들에게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려나. 창졸간에 가족들을 잃은 비통한 사람들의 가슴을 녹여 주려나. 멸종하는 생명들이 생명을 지켜가게 만들어 주려나. 우리가 기다리는 그런 진짜 봄이 오려나.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 이래도, 봄은 오고야 말겠지. 그러니까 지금 감자를 심어야 한다. 지금 감자를 심어야 봄에 키워낼 희망의 싹이 돋아나는 법이지. 한 여름 되기 전에 나누어 먹을 감자를 기다릴 수가 있는 법이지.
남동희망공간 희망텃밭 감자 심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