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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옴 Nov 15. 2019

1. 내가 피곤했던가요?

내가 나를 공격한다

자가면역항체 autoimmune antibody 

정상적인 면역 반응이 외부의 항원에 대비하여 만들어진다면, 자가 면역은 스스로의 기관이나 조직을 공격하는 이상 면역 반응이다. 나는 갑상선 자가면역항체를 가지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주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통해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주인공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갈 때면 긴장되고 걱정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나는 사실 괜찮았다. 결과는 늘 정상이었으니까.     


"항체는 한 번 생기면 없어지진 않아요. 그렇지만 갑상선 기능은 이상 없네요. 1년에 한 번 씩 검사 잘 받으세요."     


평범했던 일상의 하루, '그 날'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정기적인 혈액 검사는 12월에 이미 받았고 우연찮게 3개월 뒤인 2월에 혈액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다. 당연히 이상 없다는 대답을 들을 줄 알았는데 웬걸,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의심되는 수치가 나왔다는 통보를 듣게 되었다. 기가 막혔다.     

'불과 두 달 전에는 정상이었는데 항진증이라고? 어떻게 이래?'     

"갑상선은 예민한 기관이라서 요 며칠 컨디션이 안 좋았으면 그렇게 나올 수도 있어요. 다시 재검사해봅시다."     

담당 선생님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았던가? 평소와 비슷했던 것 같은데...'     

피곤하지 않은 현대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며칠 푹 자고 재검사를 하면 정상 범주로 돌아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재검사를 받았다. 요 며칠 잠을 잘 못 잔 것 같아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만에 하나 수치가 정상 범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다시 돌아오겠지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담당 간호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검사 결과 나와서 안내해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뒷말은 다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는 또 항진.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의심되니 빠른 시일 내에 내과에 가볼 것.     

실망스러웠다. 이번에는 정상 수치로 돌아와 있을 줄 알았는데 내 갑상선은 뭐가 그리 바쁜지 호르몬을 듬뿍듬뿍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항상 이런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보기 마련이다. 원인이 뭘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해서 몸에 부담이 되었을까. 학교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가면역항체 때문일까. 항체는 대체 왜 생겼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결국 나 자신을 할퀼 뿐이었고, 어떤 답도 주지 못했다.     

조금 더 건강하게 먹지 않고, 조금 더 많이 운동하지 않고, 조금 더 푹 자지 못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모든 잘못을 나에게 돌리는 것은 억울했다. 유전적인 문제나 환경적인 문제,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돌연변이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내가 남들보다 운이 나쁜 것일 수도. 결국 무엇이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어디에도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남은 것은 무언가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이른 20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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