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안고, 다시 시작했던 시간에 대하여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서로를 향한 배려가 없는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누구의 편이 되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부당한 일을 함께 견디고, 함께 헤쳐 나갈 마음이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부모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았고,
그 안에서 서운함을 말하는 나는 늘 부족한 사람, 나쁜 며느리로 남았다.
같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마음이 기댈 곳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군인가족 사회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숨 쉬는 삶이 답답했다.
누군가의 계급과 위치로 설명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나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그 선택이 두려움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용기라고 믿으면서.
엄마 집으로 처음 들어가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짐이라고 해봐야 아이들 옷 몇 벌과 작은 이불, 장난감 몇 개뿐이었지만
그날 들고 올라간 가방은 이상하게도 무겁게 느껴졌다.
현관문이 열리고, 익숙한 집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살던 집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있는 곳은 늘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금세 방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웃었고,
엄마는 말없이 물을 한 컵 따라주었다.
“힘들었지.”
그 한마디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이불을 펴고,
그저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처럼 조용히 밤을 맞았다.
아이들이 먼저 잠들고
엄마와 나는 불을 끄지 않은 채 잠시 앉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이 달라질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밤만큼은
견뎌야 할 곳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었던 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더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지쳐 있는 날이 있었다.
큰아이는 배가 고프다 울고, 둘째는 이유 없이 보채고,
나는 부엌과 방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쏟은 물을 닦고,
돌아서면 또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를 안아 달래면 다른 아이가 울었고,
둘을 동시에 안고 있으면 내 마음이 먼저 울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아이들이 겨우 잠들었을 때
나는 부엌 의자에 앉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더 무거웠다.
그때 엄마가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등을 한번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울었다.
그 시절 나는 피부관리실도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챙기고,
낮에는 손님을 맞고,
저녁이 되면 다시 아이들의 엄마로 돌아왔다.
하루하루가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나는 또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책을 펼쳤다.
눈이 자꾸 감겼고, 몇 줄 읽지 못한 채 고개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페이지를 넘겼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장의 삶을 바꾸어 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었다.
낮에는 손님의 피부를 만지고
저녁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밤에는 책장을 넘기던 시간.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참 지독하게도 살고 있었다.
이혼을 했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누군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길을 걸어도
사람을 만나도
괜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세상의 시선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나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예민했고,
그래서 더 쉽게 마음이 상했고,
그래서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날카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다.
그때의 날카로움은 성격이 아니라
견디고 버티느라 닳아 있던 마음의 모서리였다는 것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아이는 어느새 학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둘째는 혼자 신발을 신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참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시간,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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