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을 돌려주기로 했다.

— 용서가 아닌, 선택에 대하여

by 다온홍쌤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버텼던 2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큰아이가 여섯 살이었다. 아직 세상이 아름다운 줄만 아는 나이.
아이는 내 손을 꼭 쥐고 있었고, 나는 그 작고 따뜻한 손이 무너지지 않게 버텨야 했다.
2년 동안 양육비는 한 푼도 오지 않았다.
괜찮다고 했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새벽에 일하고, 낮에 웃고, 밤에 혼자 무너지는 패턴이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늘 "엄마"여야 했고, 엄마는 강해야 했다.


재롱잔치, 그날의 빈 의자

문제는 유치원 졸업 재롱잔치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강당 안은 엄마 아빠의 핸드폰 불빛으로 가득했다.

아이들 얼굴을 담으려는 수십 개의 카메라.

그 사이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건 괜찮았다. 혼자인 건 이미 익숙했으니까.

아이가 무대 위에 올라섰다.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작은 손을 꼭 쥔 채로.

그런데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 아이의 눈이 객석을 훑었다.

엄마를 찾는 눈이 아니었다.

나는 알았다.

아이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

그 눈빛이 객석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멈췄을 때,

아이는 그냥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여섯 살짜리가 배운 그 표정이

내 가슴을 찔렀다.


먼저 손을 내민 건 용서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잠든 뒤,

나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용서한 건 아니었다.

마음이 풀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이의 그 눈빛을 평생 모른 척할 자신이 없었다.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

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묻는다.

가족사진을 그리는 미술 시간, 아빠와 함께 오는 운동회 날, 아버지날에 쓰는 카드.

내가 두려웠던 건 가난이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에 생길 빈칸이었다.

"너네 아빠는?"이라는 말 한마디에 아이가 굳어버릴 그 얼굴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다.

시댁에는 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아내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존재를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유일한 타협이었다.


아빠라는 역할을 다시 쓰는 중
처음 아이들이 아빠를 만난 날,
큰아이는 낯선 듯 익숙한 듯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화해한 부모의 연기가 아니라, 그냥 아빠였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잘못했다고 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를 꼭 안아줬다.
눈물은 아이가 잠든 다음에 흘렸다.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 밤을 향해
이 선택이 옳은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인생의 어떤 결정들은 끝내 정답을 알 수 없다.
다만 오늘 밤, 아이들이 잠든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일은,
때로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일 수도 있다고.
용서는 아직 멀다.
하지만 재롱잔치 무대 위에서 정면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이,
나를 움직였다.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은 그걸로.


다음 화에는 다시 군인 가족의 자리로 돌아간 이야기를 씁니다.
혼인신고도 없이, 아내도 아닌 채로, 그 낯선 자리에 다시 서던 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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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