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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은 남아프리카로 갔습니다

12년차 교사의 특별한 외출

by 다온

보츠와나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부터 타이트한 일정의 오리엔테이션이 4일간 이어졌고 5일째 되던 날 아침, 파견자들은 보츠와나 교육부가 발령을 낸 대로 각 지역으로 이동했다. 수도에서 아주 먼 지역은 항공편이 제공되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해당 교육청에서 이삿짐을 싣고 갈 수 있는 픽업트럭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모두가 떠난 후에도 우리를 발령지로 데려다줄 차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교육부 담당자는 급하게 교육부 관용차를 섭외하였고, 우리는 그 차에 짐을 싣고 수도에서 한 시간 반을 달렸다. "거의 다 왔다"는 기사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차는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아스팔트 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얼마나 고도가 높은지 귀가 먹먹해졌다. 그 지점을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자, 수도에서부터 타고 오던 A10 도로가 끝나고 A2 도로를 수직으로 만났다. 바로 그 지점에 교육청이 있었다. 파견 교사들은 배정받은 지역에 따라 생활의 편의도가 다르고 개별 학교에 따라 근무 형태에 차이를 보이며, 한국의 파견기관과 보츠와나 교육부가 맺은 MOU를 근거로 수업 시수를 부여받는다.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전국 어디라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이제 여기서 어떤 삶을 맞이하게 될까?

이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카니에(Kanye)가 곧 시작되죠

우리 지역은 보츠와나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인 카니에(Kanye)다. 행정구역상 Southern District에 해당하며 수도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져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11개의 지역청을 관할하는 것처럼, 카니에 교육청(Kanye Education Center)은 5개의 지역교육청을 관할한다. 이 하위 지역(Sub Region)은 카니에(Kanye), 로바체(Lobatse), 모슈파(Moshupa), 굿홉(Good Hope), 쟈넹(Jwaneng)이며, 우리 학교는 카니에 지역청(Kanye Sub Region)에 속한다. 카니에 본청은 여러 가지 동물 설치물이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카니에 지역청도 본청 부지 내에 포함되어 있서 나는 일 년 동안 여러모로 교육청에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카니에에 도착해서 첫 2주 동안 교육청 게스트하우스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4시 30분부터는 경호 인력 두 명 빼고는 아무도 없어서 조용하고 안전했다. 그 평온함이 나는 매우 좋았고, 임시거처이긴 했지만 내 첫 공간이었기 때문에 고향 같은 느낌이 들어 교육청은 늘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카니에 교육청에는 15개 정도의 동물 설치물이 있어요

Ketlogetswe Memorial Primary School.


나는 아직도 학교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내가 학교 이름을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철자를 정직하게 읽어보자면 '케틀로게츠왜' 정도인데 사람들의 발음을 아무리 흉내 내본들 나는 세츠와나 특정 혀 굴림 발음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우리는 외국인이 '안녕하세요'를 '아녀하세오'라고 발음해도 다 알아듣는데, 내 발음이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현지인 단 한 명도 못 알아듣는 건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나중엔 어느 누가 물어보더라도 직접 말로 하지 않고 종이에 써서 보여줬다. 그럼 대부분 알아챘는데 초등학교가 여러 개라 간혹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우리 학교 옆에 있는 뜰로모(Thlomo) 중학교를 대면서 '그 옆에 있는 학교'라고 말해주면 사람들은 위치를 짐작했다. 중학교는 몇 개 안되고 학교 이름은 발음이 쉬워서 사람들은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참고로 우리 지역에 고등학교는 1개이고 나와 같이 파견된 컴퓨터 선생님이 거기에 근무하셨다.


우리 학교는 메인 도로에서 한참을 들어가다 마지막에 이르러야 도착하는 곳으로, 2008년에 개교하였다. 외관상으로는 보츠와나 최고의 초등학교라 할 수 있는데, 견고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 넓은 광장이 있다. 이 멋진 하드웨어는 학생들의 손으로 아름답게 채워지고 가꾸어졌다. 학생들은 쓰레기를 줍고 빗자루로 쓸고, 광이 나도록 교실 바닥과 복도를 왁스로 닦고, 풀을 베고 잡초를 뽑고, 파우더 물감으로 학교 이곳저곳을 알록달록 물들였다. 우리 학교에 있는 광활한 축구장은 내가 제일 아끼는 장소였다. 사이즈는 세렝게티 초원의 미니어처에 불과했지만, 수업이 없는 오전 시간에 그곳에 혼자 서 있으면 고요하고 평화로워 감상에 젖기엔 충분했다. 바람이 불어 나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그토록 누리고 싶던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자연에 푹 빠질 수 있는' 특권을 나는 여기서 얻었던 것 같다.


보츠와나의 초등 과정은 7개 학년으로 구성되며, 우리 학교에는 각 학년이 2개 반씩, 총 14개 반이 있다. 인프라 부족으로 유치원인 Reception Class도 초등학교 시설에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 학교는 2개 반을 운영 중이다. 유치원부터 7학년까지 각 반 학생수는 20~30명이고 전교생은 450여 명으로, 이 중 저학년인 1~2학년은 영어 사용이 미숙하고 7학년은 일 년 내내 졸업시험을 준비하므로 나는 3~6학년, 총 8개 반과 수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의 교사는 총 18명으로, 교장선생님과 유치원 보조교사(Assistant Teacher) 1명을 제외한 16명이 모두 학급 담임교사(Class Teacher)다. 교사 외의 정규 직원으로 급식 담당 한 분, 청소 담당 두 분이 계시고, 정부의 실업정책으로 30세 이하 청년들에게 관공서에서 일할 기회를 주는데 우리 학교에도 Volunteer라는 신분의 인원이 7명 배치되어 있었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는 교장(School Head), 교감(Deputy School Head), 부장교사(HOD : Head Of Department, 저 중 고학년의 각 대표)가 참석하는 회의가 교장실에서 열리고, 전 직원회의는 회의실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데 회의는 늘 진지하고 내실 있게 진행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Staff Development Committee'와 'Math and Science' 부서에 소속되었다. 정규 근무 시간이 있고 학교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있지만, 내게 맡겨진 잡무가 없으니 나는 오직 수업만 생각하면 됐다. 빡빡하고 살벌하기까지 한 우리의 직장 문화는 보츠와나에서 전혀 느껴본 적이 없고 오히려 늦거나 틀리거나 달라도 용인되는 범위가 넓어서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이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니 나도 일들을 대할 때 서두르지 않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 이 곳의 흐름에 대해 효율성을 논할 필요는 없다. 일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속한 곳의 상황에 맞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2층 건물이 'ㅁ'자로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 넓은 광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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