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아깝잖아요

솔깃하는 출산 독려책

by 다온

몇 년 전 스승의 날, 중1이 된 남학생 3명이 나를 찾아왔다. 장난꾸러기들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달라지고, 얼굴에 여드름이 나고, 교복을 입고 나타난 걸 보니 졸업한 지 3개월 만인데도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얘길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이 결혼 여부인데 나는 신규 때부터 "우리 집에 너만한 애가 있다"고 말해왔다. 나는 당연히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다들 '그런가 보다'하는 눈치였다. 한편, 학부모 상담을 오신 어머니들 중 몇 분은 꼭 이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결혼 안 하셨죠? 그럴 줄 았았어요"


오랜만에 만난 이 남학생들은 '이제는 진실을 말해달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물었다.

- 선생님, 결혼 안 했죠?

/ 답이 뭐일 것 같아?

- 안 했잖아요.

/ 맞아.

- 빨리 결혼하세요.

/ 왜?

- 빨리 애기 낳아야죠.

/ 힘들게 낳고 길러봤자 누구처럼 말도 안 듣고, 애들도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

- 그래도 낳아야죠.

/ 왜?

- 선생님 유전자가 아깝잖아요.


어떻게 그런 말을 생각해낸 걸까. 그것은 이제껏 내가 학생들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놀라운 표현이었고, 역대 최고의 찬사였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몇 십조를 쏟아부어봤자 저출산 문제가 끄떡도 안 하는데, 의외의 방향으로 접근해보면 성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견고하던 내 생각이 애들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들린 걸 보면 방법이 없지만은 않겠다.


현재 대한민국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보다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대는 게 더 쉽고 그 중심엔 경제 부담이 있다. 그런데 그걸 떠나, 나는 '인간성'에 더 주목하게 된다. 직업상 매일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행복한 순간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순간도 많아 이들이 과연 어떤 사회를 이루어갈지 아찔해진다. 미래를 위협하는 인적, 물적환경이 전방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이때, 어떻게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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