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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은 그저 로망이어라

오스트리아 - 빈(Vienna)

by 다온

클래식 덕후인 제게 비엔나는 로망의 도시예요.

빈 필하모닉도 있고

여름밤엔 시청 앞에서 필름 페스티벌이 열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공연들을 무료로 볼 수 있고요,

중앙 묘지에는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브람스 등이 잠들어있죠.

그렇게 봐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건물들 자체도 다 클래식게 보이고요.


그리고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죠.

저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런 디자인을 생각해냈을까요!

자연친화적이란 게 이런 거군요.

'나는 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임대주택 재건축 디자인 공모 당선작이라고 하네요.

거기서 얼마 걸어가면 그의 미술관인 쿤스트 하우스 빈(Kunsthaus Wien)이 있데 이 또한 좋았습니다.

저는 이런 발상의 전환들을 보면 그저 감탄스러워요.


이뿐 아니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도 름답습니다.

쇤부른과 벨베데레는

건물 색이 제가 좋아하는 노란빛 혹은 아이보리라 좋고

네모반듯한 대형 직사각 구조에

전면에 창문이 규칙적으로 주욱 나열되어있다는 점에서

예쁘고 더 위엄 있게 보였어요.


클림트와 에곤 쉴레로도 유명한데,

오스트리아를 찾았던 20대 초반엔 제가 그분들을 잘 몰라서

작품을 찾아다니지 않았어요.

다시 간다면 세계 최고의 에곤 쉴레 미술관이라 하는

레오폴드에 꼭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비엔나를 여행하는 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죠.

바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입니다.

저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지 않는 편인데

'비포' 시리즈는 n차 시청을 했어요.

선라이즈(1996), 선셋(2004), 미드나잇(2013) 모두요.

나이상 극장에서 관람한 건 마지막 편이 유일하고

가장 많이 본 건 첫 번째 편입니다.

뭐가 특별히 좋았냐, 하신다면

대리만족이라 해야어요.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솔직히, 인천공항을 떠날 때 많이들 꿈꾸지 않나요?

하지만 딱히 이뤄지진 않더군요.

영화는 영화니까요.

그런데 극의 허구를 탓하기 전에

저의 자세를 먼저 탓해야 할지도요.

특히 외국에선, 갑자기 불쑥 치고 들어오는 낯선 이에 대해 가드가 단단히 올라가는 편이든요.

이상과 현실의 갭이 이러니

뭐가 될래야 되기가 어려울 듯요.

그래도, 그랬기 때문에 외국을 혼자 많이 다녀도

아직까지 그런 류의 불미스런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엔나에선 운명의 여신을 한 번 시험해보려던 것이었을까요?

전날 로마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빈에 들어왔던 첫날엔

몇 군데 슬렁슬렁 다녔고

다음날은 아침 일찍 트램을 타고 일정을 시작했요.

프라터(Prater)엔 오전에 들렀어요.

제시와 셀린이 하루 동안 데이트하며 들렀던 그곳이요.


영화에 나온 대관람차가 멀리서부터 보였어요.

오, 저거다!

나에게도 그런 낭만이 찾아올까?

아.. 제발..

그런데 그런 기대를 갖기엔 식적으로 시각이 너무 이르더군요.

정말 운명의 상대가 아니고서야

그 평일 오전에 놀이 공원을 찾을 이가 어디 흔하겠습니까.

실제 그때 공원 내에 어르신 몇 분만 계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글프거나 서운하기보단

그냥, 해프닝이었죠.


오래 기다려왔고 진짜 원하는 것이었다면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아님 말고'가 정신건강에 좋은 외침인 건 맞지만 사실

심혈을 기울인 일에 대해 쿨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특히 저같이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은

큰 결심을 해야 '될 대로 돼라'가 되는 이상,

'네가 그토록 바란다는 비포 선라이즈를 진짜 원하는 게 맞냐'고 지금 당장 누가 묻는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때

차마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진 못하겠네요.

제가 별생각 없이 돌아섰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겠고요.

그래도 여행의 추억 측면에선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하.


저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벤치에 앉아 대관람차를 바라보며

나름의 브런치를 즐겼어요.

그때 찍어둔 한 컷은 지금 봐도 웃겨요.

먹다만 우유가 벤치에 널브러져 있고 몇 번 베어 먹은 바나나를 페리스 휠이 보이게 들어서 인증샷을 찍었죠.

여름 볕을 피해 저 멀리 그늘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이 저를 보셨다면 "쟤 뭐하는 동양 애일까?" 하 않으셨을까요.


그곳은 조용하고 잘 다듬어진 곳이라 머무는 동안 즐거웠어요.

그랬으면 됐죠.

한 번에 하나씩만 바라면 되죠.


사랑이야 뭐,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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